달콤한 무기

[박미산의 맛있는 시읽기]

서울디지털대학 박미산 교수 2018.07.16 15:3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그림=원은희
-김지헌

미세스 샤넬5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엉덩이 흔들며 사라지네
늘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그녀
종일 여기저기 웃음 흘리며
치맛자락 팔랑거리고 다닐 것이네

엘리베이터에 남아있는 그녀의 체취에서
적의가 묻어나오네
집을 나서는 순간 수많은 적의와 싸울 준비하듯
샤넬5를 총알처럼 장전하고 달리네
나 또한 나만의 무기를 내장한 채 달리네

전쟁터 같은 광장에서 그녀의 무기는
얼마나 달콤한가
얼마나 평화로운가
광장에서는 맨주먹이라는 무기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네
씨줄 날줄로 부딪는 혀들이 수시로 전복을 꿈꾸는 세상에서
순한 바람 같은 샤넬5 정도면 꽁꽁 여민 목련의
치맛자락이라도 펼쳐 보이겠네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겠지만
멀미 날 것 같은 무기가 도통 마음에 안 들지만
나는 또 세상과 비껴가며 나의 무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무기로
한여름 고집스런 땡볕을, 이 세계를 흔들어댈 것인가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하는 길에 그녀와 마주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녀가 내렸는데도 샤넬 넘버 5의 향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샤넬 넘버 5’는 1921년 5월 5일에 처음 선보인 향수입니다. ‘샤넬 넘버 5’는 메릴린 먼로가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물음에 “샤넬 넘버 5 다섯 방울뿐”이라고 말해 더욱 유명해진 향수입니다. 그 향수는 당시 세련되고 대담한 향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지금도 30초에 한 개씩 팔려나가는 인기상품입니다. ‘샤넬 넘버 5’는 모든 여성들이 동경하는 향수입니다. 전쟁터 같은 세상의 광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무기를 지녀야 합니다. 이러한 살벌한 세상에 그녀의 무기는 ‘샤넬 넘버 5’입니다.
그 향은 순한 바람으로 꽁꽁 여민 목련의 치맛자락을 펼쳐 보이기도 할 정도로 위력적입니다. 그 향은 천연의 향기와 인공적인 향기가 완벽한 조화로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그녀는 천연의 달콤한 향기와 평화로운 그녀의 인공적인 향기의 조화로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녀의 무기는 얼마나 달콤하고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그 향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나는 멀미 날 것 같은 그녀의 무기가 도통 마음에 안 들지만, 나만의 무기를 휘두를 수밖에 없습니다.그렇다면 당신은 한여름 땡볕을 어떤 무기로 물리칠 겁니까?
고집스러운 이 세계를 무엇으로 흔들어댈 것인지요, 당신은?

박미산 교수
서울디지털대학 초빙교수
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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