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김정은 불러낸 건 북한 주민들”

[인물포커스]북미 싱가포르 합의문, 아쉽지만 ‘3항’ 보면 희망적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8.07.10 09:1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사진=더리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을, 지난달 12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이 외교활동을 시작하자 각국 정상들에게 러브콜을 받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김 위원장을 찾는다. 전 세계적인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 무엇이 김 위원장을 변하게 했을까.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을 변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연구를 위해 북한 이탈 주민 150여 명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그가 면담을 진행한 북한 이탈 주민들의 공통된 의견은 ‘북한 주민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이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인식이 변했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당이 시키는 대로만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퍼졌다고 전했다.

또 한국 드라마, 가요 등 문화적인 요소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삶을 드라마나 다른 문화로 접하고 있다. 한국에 가지는 관심이 크다고 밝혔다. 북한은 비핵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우리나라는 을지훈련을 잠정 중단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사회문화와 인권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김 교수에게 급변하는 북한 상황을 묻기 위해 지난달 18일 이화여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위원장이 변했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나
지난해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까지만 해도 평화를 이야기할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SNS에 올리는 글들을 보고 ‘어느 순간 엉뚱하게 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격의 없는 대통령이지 않나. 궁금한 이야기, 혹은 물어보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트위터에 알린다. 독특한 구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을 보면서 북한과의 관계도 엉뚱하게 풀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문에 대해 평한다면
1, 2항은 나온 이야기다. 흥미로운 점은 3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주어가 북한이다. 북한과 남한, 혹은 북한과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 노력한다고 선언했다. 사실 처음엔 CVID가 포함되지 않아 실망했다. 그래도 3항을 보고 뚫고 나갈 여지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합의문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했다. 합의문은 짧은 문서이기 때문에 모두 담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2년 반 안에 비핵화를 가시적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거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열리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만남이 생중계되고 있다./사진=머니투데이 이기범 기자
-8월 한미 을지훈련(UFG훈련)이 잠정 중단됐다. 이를 어떻게 보나
지금 을지훈련을 일시적으로라도 중단하는 것은 불안하다. 만약 이번에 중단하게 되면 언제 재개할 것인가. 훈련이라는 게 중단하면 재개하기가 힘들다. 다시 모여보자는 추진력을 얻는 것은 힘들다. 아직은 불안한 게 사실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도 액션이 있어야 할 텐데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는 굉장히 의미가 있지만 검증도 필요하다. 학자들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폭파했는지, 또 저렇게 한다고 폭파된 것인지, 안에 있던 핵은 뺀 것인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많다. 이런 의혹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검증을 거친 후에 훈련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게 아니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여기까지 오기는 참 힘들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의혹에 대해서 검증을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김 위원장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좋은 지도자가 아닐 것이다. ‘실패한 지도자’다. 인민을 굶겨 죽일 정도로 나라를 운영했다. 김 위원장이 그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사람들이 ‘굶어 죽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놀이공원이나 스키장을 만들고 원산도 정비했다. 김 위원장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지난해 6차 핵실험한 것을 볼 때 북한이 상당히 위력적인 핵을 만들었다고 예상된다. 김정은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핵무기를 손에 쥐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2017년부터 중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시진핑이 진짜 통제를 한 듯하다. 밀수 배가 움직이지 않고 북한을 상대로 운영하는 중국 기업이 당시 어려워졌다. 중국이 북한 제재에 동참한 것이다. 북한에서 물가가 갑자기 뛰어올랐다. 김 위원장에게는 다른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주민의 폭동을 걱정할 상황이었다. 폭동으로 가만히 앉아 죽는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국제 사회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북한 주민을 대하는 지도부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졌나
2014년 평양에서 고층 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조선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고위급 간부가 주민들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최부일 인민보안부(경찰청에 해당) 부장 등이 나와서 주민에게 사과한 것이다. 고위급 간부의 사과는 그들이 스스로 결정해서 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지도부가 북한 주민에게 고개를 숙인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은 소통은커녕 주민들의 생각은 신경도 안 썼다. 주민들이 지도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떤 불만이 있는지 등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항의’라는 게 없었다. 북한 장마당에서 안전원이 물건을 뺏어 가면 주민들이 ‘왜 뺏어 가냐’, ‘영장 봅시다’라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안전원은 우리로 치면 경찰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한번은 밤길에 보안원이 각목으로 뒤통수를 맞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북한은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깜깜하다. 또 보안원 부인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벽돌을 맞은 사건도 발생했다. 그렇게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항의도 하고 스스로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못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주민들이 변하니 김 위원장이 ‘위대한 인민’이라는 발언도 하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분노가 표출되니까 그것을 달래기 위해 이례적으로 사과도 한 것이다.

-주민들은 어떤 계기로 변했나
150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과 면담을 진행했다. 그들에게 물었더니 ‘고난의 행군’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1990년대 중•후반에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시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한 구호가 ‘고난의 행군’이다. 당시 죽은 사람들이 많이 생길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 이탈 주민은 고난의 행군을 이렇게 표현한다. ‘고난의 행군 시절에는 여우와 늑대만 살아 남았는데, 상황이 험악해지니까 늑대가 여우를 잡아먹었다’고. 그만큼 살기 어려웠다. 그 시기를 겪으면서 ‘당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저렇게 비참하게 죽는구나’, ‘내 힘으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사진=더리더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기도 했는가
통신기술이 발달한 영향도 있다. 북한 내부보다 외부 세상의 통신이 발달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통신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 그 영향이 북한에도 미쳤다. 북한은 1990년대에는 ‘까벨선’이라고 해서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줬다. 2000년 들어와서 광케이블이 깔리고 버튼식 전화가 늘었다. 2008년부터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추정하기에는 휴대전화가 400만~500만 대 정도 쓰이고 있다. 북한의 인구는 2500만 명이다.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4~5명에 1대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휴대전화를 주로 어떤 용도로 쓰나
어떤 기삿거리를 찾아보거나 삶의 질을 생각하는 이런 차원과는 다르다. 북한에서는 위안화나 달러를 많이 쓴다. 달러 환율이 매일 달라지니까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본다. 사실 북한 화폐는 돈으로써의 가치가 많이 없는 편이다. 북한 돈보다는 옥수수나 담배 등 물건이 더 가치가 있는 수준이다. 화폐라고 하는 게 외국 돈이니까 매일 확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손해 본다. 그렇게 돈 시세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가 보급됐는데, 그것으로 ‘트럼프랑 김정은이 만났다더라’, ‘남한에 재밌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더라’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힘든 고난의 행군으로 정신을 차렸고, 그 뒤에는 도구가 생긴 셈이다. 내 생각을 전달하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손에 쥐여진 것이다. 거기에다 K-드라마, K-팝, K-뷰티 등의 콘텐츠 파급력도 엄청나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손 안에 도구가 생겼고, 그 안에 콘텐츠까지 생긴 것이다.

-콘텐츠는 어떻게 유통되나
예전에는 CD를 구웠는데 요즘에는 USB에 담아서 교환한다. 중국에서 MP3, USB에 담아서 정기적으로 북한 내부로 들인다. 불법 영상물의 인기가 많기 때문에 당에서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인기 있던 드라마로는 ‘추노’ ‘천국의 계단’, 최근에는 ‘태양의 후예’가 있다. 북한이탈주민과 인터뷰할 때 ‘태양의 후예’ 이야기는 계속 나왔다.

-한국 드라마나 콘텐츠를 보고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나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알려주는 것은 드라마만큼 적나라한 게 없다. 남녀관계가 동등한 것에 대해 굉장히 충격을 받는다. 여자가 혼자서도 살 수 있는 것, 또 혼자 운전을 하는 것 등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여자가 혼자 운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 북한학을 연구하는 학과가 적은데 앞으로 많아져야 할까
교육은 백년지계다. 투자한다고 바로 눈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북한학’에 대해 우리나라 대학들은 투자를 많이 하지 않는다. 적어도 국립대학들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는 처음에 북한학 협동과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2013년에 대학원으로 만들어졌다. 이화여대는 여성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땅에서 최초로 시작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받았던 혜택을 북한에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북한학과가 나와야 하고 이 학문에 대해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現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대학원 교수
미국 조지아대학교 사회학 박사
통일부 통일교육원 조교수,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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