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여성운동이 과격하다고요?”

[기관장초대석]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여성성’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 없앨 문화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8.07.10 09:15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전화기 두 대’가 우리나라 여성 인권운동의 시작이었다. 1983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상담전화인 한국여성의전화가 개통됐다. 개통된 지 한 달 만에 541통이 넘는 신고 전화를 받았다. 여성 인권운동의 시초다.


2018년 여성 인권운동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미투운동’이다. 여성의전화와 다른 점은 피해자가 직접 신분을 공개하고 나와 신고한다는 점이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익명으로 신고하지 않고 신분을 밝히는 것은 ‘스스로 문제에 대해 해결하겠다’는 능동적인 입장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대변인이나 단체를 거치지 않고 본인이 문제를 직면하는 것이다.


또 이전에는 성추행이나 폭행에 대해 신고해도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미투운동은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어떻게 수사하고 처벌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스트’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유별나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2016년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한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는 ‘별난’ 것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여성 장관을 30% 이상 채우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페미니스트를 자임하며 성평등계약제를 도입할 것이라고 내세웠다.


전화기 두 대로 시작한 우리나라 여성 인권운동, 우리는 지금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변 원장에게 해답을 듣기 위해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올해 초 우리나라에 불었던 미투운동을 어떻게 지켜봤나
미투운동 이전에 ‘여성의전화’가 있다. 가정폭력을 당했거나 성폭력, 데이트폭력 등 여성폭력에 대해 상담하고 신고하는 기관이다. 여성의전화로 신고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는다. ‘미투’는 자기가 누구인지 얼굴을 드러내면서 폭로한다. 특정 단체가 피해자를 대변하는 게 아니라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여성이자 개인이 말도 안 되는 차별이나 피해를 본 것에 대해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당했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여성이 주체적인 선택으로 폭로하는 것’이라고 본다. 미투와 함께 ‘위드 유(with you)’ 운동이 퍼지면서 여성들이 연대해서 움직였다는 점도 인상 깊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미투운동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추행과 강간은 조금 다르다. 강간이 더 치명적이다. 폭행과 협박이 없으면 강간이 아니었다. 권력형 성폭력에서도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권위에 의한 간음이다. 만약 폭행과 협박을 입증할 수 없으면 강간 피해자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신고한 피해자가 ‘혹시 내 잘못은 아닐까’라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이전부터 쌍방 합의에 의한 성관계 이외에는 분명 강간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 전 지사 사건의 경우 폭행과 협박을 입증하지 않았지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 간음) 혐의를 받고 있다. 이전에는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면 ‘간음’이 아니었지만 그 혐의를 받고 있다. 미투운동 중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고 본다. 법은 이후에 혐의가 있다고 판단할지, 없다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의미가 있다.


-폭행과 협박은 어떻게 입증해야 하나
미국 판례에서는 ‘비동의 간음죄’에 대해 ‘쌍방이 합의했다고 하지 않는 모든 것’은 강간이라고 나와 있다.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강간인 것이다. 한국은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사실 멀었다고 본다. 쌍방 합의에 의한 성관계 이외에는 분명 강간의 여지가 있다. 법이 바뀌어야 처벌이 가능한데 우리 사회 문화가 아직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반영이 느리다. 어느 쪽에서는 사회가 급진적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직까지 법이나 문화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법이 바뀌면 문화가 바뀔까
법이 바뀌어야만 문화가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법이 바뀌어도 문화가 여전한 것도 많다. 이를테면 친고죄다. 친고죄 폐지는 피해자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받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사할 때 피해자에게 처벌을 원하는지 등을 묻는다. 그에 따라 감경되기도 한다. 친고죄가 폐지됐지만 인식은 여전한 것이다. 법과 문화, 인식을 변화시키는 여러 가지 작업들이 다차원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진흥원에서도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간혹 남성 피해자도 있다. 그 가해자도 남성인 경우가 많다. 결국 문제를 만들어내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분석하기에는 권력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권력이 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 이를테면 ‘때리는 것’, ‘부당한 이유로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 것’, ‘누군가를 해고하는 것’ 등 이런 것들은 권력이 작용한 것이다. 이렇게 작동하는 권력 중에서 ‘성적인 권력’ 문제가 왜 발생할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취약한 것은 성적인 문제다. 여성을 단순히 폭행하는 것보다 강간을 통해서 권력을 작동시키면 더 말할 수 없다.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권력을 작동시킨 것이다. 성 문제가 결합된 권력이 더 문제가 큰 이유다.


-미투운동이 잠잠해진 이유는 2차 피해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진흥원에서도 2차 피해에 대해 포럼을 열기도 했는데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나 폭로를 하지 않은 이유는 부끄러워서, 수치스러워서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해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법은 사실 스스로 나온 여성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명예훼손을 당하거나 무고로 고발당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다. 법무부 수사 지침에는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없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해자들은 바로 대응한다. 온몸을 던져도 녹록지 않은 것이다.


-최근 여성 운동을 어떻게 봤나.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혹자는 ‘그렇게까지 강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왜 저럴까’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여성 범죄 혹은 젠더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강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이러지 않았다. 소위 말해 ‘조신’했다. 그런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조금은 과격할 수도 있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기존의 여성성에 대한 통념과 가치체계가 흔들린다. ‘스스로 조금 조심하고, 노출하지 않고, 밤늦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 자체가 얼마나 성차별적인가. 여성들이 밤에 늦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범죄를 당하거나 무섭다면, 그 가해자인 남성이 돌아다니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남성들에게 새벽에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고 할 것이다. 역지사지를 해야 한다. 그만큼 여성에게 ‘조심하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체화된 여성성 탈피 위한 ‘탈코르셋 운동’


일각에서는 페미니스트 운동에 대해 조롱과 비판을 하기도 한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변 원장은 그런 시각에 대해 “이제까지 여성에 대해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문화와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전했다.


▶여성으로 수십 년 살면 여성성이 체화된다. 지하철에서 보면 남성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지만 여성들은 그러지 않는다. 여성들의 자세, 생각은 이미 우리 안에 체화돼 있다. 법체계 너머에 있는,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사회적으로 가둬 놓은 통념 속에서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 있다. 왜 여성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다소 과격한 운동을 왜 진행할까. 그런 사회통념에 온몸으로 반대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다.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에 대해 귀기울였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비판한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왔고, 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최근 몰래카메라를 비롯한 불법촬영 범죄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진흥원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는데 상담 신청은 어느 정도 들어오나
지난 4월30일에 개소했다. 두 달도 안됐는데 전화상담과 게시판상담 합쳐서 어제까지 지원한 건수가 3000건이다. 493명 정도가 피해자로 신고했다. 그중에 상담지원만 861건이다. 주로 사이트 삭제지원을 요청하는데, 2241건이다. 너무 놀랐다. 예상을 못했다. 이게 말이 되나. 1명이 1건을 삭제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 있으니까 삭제 요청 건수가 많은 것이다.


센터 직원들의 업무량이 많이 늘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인터넷의 특성상 유포는 계속된다. 우리들의 속도가 인터넷의 유포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현재 법도 문제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는 지울 수가 없다.


-어쩌다가 불법촬영이 사회 범죄로 이어지게 됐을까
일단 그런 불법 촬영을 하는 범죄자들이 문제지만, 2차적으로 디지털 성범죄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사람도 문제다. 동영상을 다운받거나 유포, 소비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는 것이다. 그런 소비가 범죄를 만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성도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까 누군가가 계속 찍어서 올리는 것이다. 다운받는 것, 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혜정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사진=더리더
現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1964년 5월18일 출생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석•박사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성폭력문제연구소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여성연구소 연구교수
서강대학교 성평등상담실 상담교수
충청북도청 여성정책관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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