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과학 발전을 위한 비율, 30%”

[기관장 초대석]“여성 과학기술인 많아져야 시너지 창출… ‘공감과 현장성’ 갖춘 정책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8.06.07 10:0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사진=더리더
최소한의 비율, 30%.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여성 장관을 30% 이상 채우겠다고 공약으로 제시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 1기 내각의 27%를 여성으로 채웠다. 각 정당은 여성 공천에 대해 30% 이상 채우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왜 30%일까.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소장은 어느 성별이든 30% 이상 돼야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과학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WISET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 기술 연구개발인력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19.3%였다. 이 중 정규직 인력은 14.9%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각 정당은 비례대표 1번을 모두 이공계 출신으로 배치했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 신용현 국민의당 의원이다. 각 정당이 이공계 출신을 1번으로 정한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메시지’다. 여성 과학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까. <더리더>는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WISET 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WISET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다. 각 분야와 영역이 경계 없이 융합하고 연결되는 디지털 혁명 시대의 핵심 가치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과학기술인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도 이런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나라 이공계 분야의 여성 인력은 전체 20% 미만이다. 비정규직과 경력 단절 비율도 높다. 어떤 조직이든 소속 구성원 비율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여성 장관을 30%로 늘리겠다거나, 여성 정치인을 늘리기 위해 30% 이상 공천을 하겠다는 것처럼 한쪽 비율이 30%정도는 돼야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과학기술인력 채용목표제’의 여성 비율을 최소 30%로 설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WISET는 여성 과학기술인 누구나 그 자질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과학기술 생태계를 구현하기 위해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13년 법인으로 설립됐다.

-남성에 비해 유명한 여성 과학인은 단번에 떠올리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 과학인에 비해 유명한 여성 과학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역사적으로 과학은 ‘금녀의 분야’였다. 1901년에 제1회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 이래로 117년 동안 노벨상을 받은 여성 과학인은 17명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공동 수상이다. 그만큼 여성의 독립적인 연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대표적 여성 과학인인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받았다. 1910년에 파리왕립과학아카데미 입회 추천을 받고도 1979년에야 비로소 정회원이 된 것만 봐도 과학계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 과학인이 많아지면 과학계가 어떻게 변할 것이라고 보나
애덤 그랜트 와튼스쿨 교수가 쓴 <오리지널스>란 책에 ‘최고의 독창성을 보여준 사람들은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 사람들이며,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낼수록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낸다’는 구절이 나온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할 때 시너지가 생겨나고 창의성이 발휘된다. 창의 역량이 중요한 과학기술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성비 불균형을 해소하고 다양성이 갖춰져야 한다. 인적 다양성이 연구 개발 성과와 기업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다양한 의견은 과학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본다.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사진=더리더
-여성 과학인을 많이 양성하려면 이공계에서 여학생들의 비율이 높아져야 할 텐데

이공계 여학생들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06년 이공계에 입학한 여학생 비율은 31.1%였다. 2016년에는 33.4%를 기록했다. 이공계 분야로 진학하는 학생은 늘었지만 취업 현장을 살펴보면 상황이 다르다. 이공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20대보다 30대가 크게 떨어진다. 이유는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꼽을 수 있다. 그 후에 경력복귀가 사실 힘들다. 연구 현장에서 30~40대 한창 일할 나이의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남녀 전체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력 중에서 비정규직 종사자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2배가량 높기도 하다.

-우리나라 주변국을 살펴볼 때 여성 과학인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일단 중국은 최근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여성 과학인이 많이 늘었다. 반면에 일본은 오히려 우리나라를 부러워할 정도다. 일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사정이 더 나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는 NGO단체 정도지, 체계적으로 정부에서 법으로 제도화한 나라는 많지 않다. 물론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 비해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 정책이 다소 뒤늦게 추진됐지만 빠른 기간 내에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는 국내외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과학인 양성 제도가 언제부터 시행됐는지 설명해준다면
2001년 WISE(Women Into Science and Engineering) 사업이 처음 시행됐다. 이공계 여학생의 이공계 진출을 돕는 사업으로 여성 과학기술인과 여학생을 이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2002년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본격적인 여성 과학기술인 양성이 궤도에 올랐다. 법에 근거해서 2004년부터 5년마다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을 수립해 이행하고 있다. 제1차 여성 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차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3차는 2014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됐다. 3차 기본계획이 올해 종료된다. 우리는 내년에 시행될 제4차 기본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WISET는 여성 과학인 지원에 대해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WISET는 여성과학인-기업-정부-지역사회 사이에서 링커(linker) 역할을 맡고 있다. 일자리가 필요한 미취업•경력단절 여성에게는 기업과 연구소를 연결해주거나 아이디어는 있지만 인력과 공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협동조합과 창업이라는 대안을 제시해주고, 마땅히 지원받을 곳이 없는 비정규직 박사에게는 국내외 연구네트워크를 이어주기도 한다. 여학생 동기가 없어 외로운 공대 여대생들에게는 행사를 열어 선배•동료와 함께 네트워킹할 자리도 마련한다.

-한 소장은 여성 과학인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여성 코어 그룹 육성’을 제시했는데
유입된 인재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위에서 30~40대 코어 그룹 후배 여성 과학인이나 엔지니어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결혼과 출산 등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거나, 경력복귀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출되는 인재가 상당히 많다. WISET는 기관으로도 경력단절을 예방하고 복귀를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며 코어 그룹 육성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시범 시행에 이어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대체인력 지원사업은 원활한 육아휴직을 지원해 경력단절 예방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R&D 경력복귀 지원사업과 취업지원교육을 통해 코어 그룹이 R&D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한 소장은 ‘과학기술인 협동조합’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2018년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분절된 세계에서 공유의 미래창조(Create a Shared Future in a Fractured World)’였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융복합이다. 협력과 상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적인 화두다. 협동조합의 민주적이고 유연한 운영방식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연구산업 혁신성장전략’을 발표했다. R&D 생산성을 높이고 과학기술 분야의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과학기술인 협동조합 창업 활성화를 통한 공공기술 창업 촉진’을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선정했다. 협동조합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과학기술 자원을 융합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연구산업을 성장시키는 방안인 동시에, 고(高)경력자의 경험이 다양한 세대와 함께 융합될 수 있는 ‘사회적 경제’ 가치를 실현하는 모델이다.

-한 소장은 화학을 전공하고 환경 분야에 몸 담았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과학인으로 활동하는 건 어땠나
유학시절에 환경 연구를 주로 했고, 이후 한국에 들어와서도 환경 분야에 대해 연구했다. 24년 동안 대기오염과 에너지, 기후변화 등에 관련된 환경을 연구했다. 유학시절에 ‘워킹맘’으로 고충을 겪었다. 박사과정을 거치고 연구원 시절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했다. 다행히 당시 지도교수 부부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일•가정 양립을 잘 실천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들어와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었다. 연구원에 들어가기 전에 몇 년간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연구원 생활도 했었다.

과학기술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전공과 연구 분야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게 되고 자신감이 없어지게 된다. 여자로서 일과 삶의 균형을 갖고 자신의 역량과 실력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시간 안배가 힘든 부분이었다. 특히 가족의 배려와 지지가 큰 힘이 됐다.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사진=더리더
-정부가 여성 과학기술인에 대한 정책을 지원할 때 가장 염두에 둬야 할 게 있다면

▶일단 제가 염두에 두는 것은 ‘공감’과 ‘현장성’이다. 기술 발달과 산업 변화에 따라 취업, 세대 간 가치 격차, 위킹맘의 일•가정 양립, 직장 내 성차별 등 그동안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수면 아래에 묻혀 있던 가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하는 것이 첫째다. 현장에 뿌리를 내린 해결책을 고민해서 실현해나가는 것이 현장성이다.

사실 현장의 의견이 정책 사업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책은 실효성을 기반해야 한다. 대체인력지원 사업의 경우 육아 휴직제도가 있어도 쓰기가 힘들다는 연구자, 대체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기업의 의견을 반영한 사업이다. 전문적이고 세분화된 과학기술 분야에 대체인력 지원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지난해 시범 사업을 통해 세부적으로 사업을 정비해 올해부터 추진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기관이 바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 과학기술인 누구나 그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과학기술 생태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현재 국정과제로 수행하고 있는 ‘여성과학기술인 대체인력지원사업’ ‘R&D 분야 경력복귀 지원사업’ ‘지역 이공계 여성인재 육성 사업’의 성과는 물론 여성 과학기술인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과학 생태계 조성에 더욱 노력하려고 한다. 특히, 여성 과학기술인 코어그룹 육성을 위해 노력하겠다. 국내외 과학기술, 인문사회 등 융복합 분야와의 통합적 협력 네트워크를 제안해보고 싶다. 기존 여성 유관단체와의 협력뿐만 아니라, 기술 중심, 타 학문, 해외 학회와 다양한 방식의 허브로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화진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1959년 출생
고려대학교 화학 학사•석사
UCLA 대학원 화학 박사
산업자원부 국가에너지자문회의 위원
대통령실 환경비서관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부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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