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석 별무리농장 대표, 감자밭에서 보물을 캐는 어린왕자

[농어촌은 지금, Jump-up]젊은 세대 유입 위해 정부 차원 다양한 후계농 육성책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05.15 17:3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아홉 번째 주인공은 충남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에 위치한 별무리농장의 이영석 대표다. 별무리농장이 위치한 지역명이 ‘방문리’라 그런지 편리한 교통과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누구나 방문하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세종특별자치시와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젊은 농부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별처럼 빛나는 청춘 이영석 대표는 감자 밭에서 보물을 캐듯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고되고 힘든 일이라 여겨 많은 사람들이 회피하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활짝 웃는 그를 보니, 어린왕자가 지구별에 와서 농사를 짓는 다면 꼭 이런 모습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하는 내내 마치 어린왕자와 대화하는 착각을 들게 한 이영석 대표를 소개하기 전에 어린왕자의 말을 나누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에요. 별이 아름다운 건 보이지 않는 꽃이 있기 때문이에요. 꽃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정성을 들인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에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중에서-

이영석 대표 /사진=가현정 제공
-이영석 대표 소개
▶농사 규모도 크지 않고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될 만큼 이루어놓은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농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무척 민망합니다. 그럼에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제 이야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응원이 된다면, 아니 반면교사(反面敎師)라도 된다면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제가 경험한 일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할 수 있고, 제가 실수하고 실패했던 부분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분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리란 믿음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충남 공주에 있는 별무리 농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초보 농사꾼입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한다니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요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 회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동안 많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가족의 반대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제 자신과의 내면적인 갈등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농촌생활을 동경해왔던 터라 처음부터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평생직장 시대가 아닌 요즘에 가장으로서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업종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은퇴 귀농이 대세인 상황이라 그런지 젊은 나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은퇴 후 보다는 젊을 때 귀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업으로서의 농업에 종사하려면 아무래도 젊을수록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귀농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데 노년층보다는 젊은 사람들을 중점 지원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귀농을 생각하신다면 오히려 한창 일할 나이에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별무리, 농장이름이 무척 독특합니다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별 무리 없이 잘 지내냐고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제가 운영하는 농장 이름을 가지고 놀리는 것이기도 하고, 워낙 농사일에 문외한이었던 제가 무리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입니다. ‘별무리’는 단어 그대로 별이 무리지어 있다는, 별이 모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별을 좋아했던 저는 지금도 캄캄한 밤하늘에 총총 박혀 빛나는 별을 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 어떤 값비싼 보석보다도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잿빛 하늘에서는 볼 수 없는 별을 농촌의 밤하늘에서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별은 어려울수록 캄캄할수록 더욱 빛나는 소망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라서 참 좋습니다. 힘들었던 하루의 농사일도 빛나는 별을 바라보노라면 고됨 또한 쉽게 해소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농장이름도 별과 관련되도록 지은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농업인들 모두 별무리와 같이 빛나는 희망이자 밝은 미래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충남 공주에서 농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고향이나 연고가 있는 곳을 귀농지로 선택하곤 합니다. 지금 농사짓고 있는 충남 공주는 제게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입니다. 공주를 선택한 데는 사실 조급함이 한몫했습니다. 귀농을 하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상황에서 당장 가능한 지역을 선택한 탓입니다. 귀농교육을 함께 받은 분들을 따라서 결정하다보니 제 형편에 맞는 농지 조건을 신중하게 따지지 못했습니다. 성급함이 앞서다보니 신중함이 부족한 결정이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이 없었더라면 저 혼자서 고민만 하다가 아직까지도 귀농을 하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감자싹 /사진=가현정 제공
-농업을 선택해서 좋은 이유, 농부라서 즐거운 이유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족들과 가까운 곳으로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농부가 되고 나서는 주말이면 농장에서 일도 하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 놀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아내도 농사일과 농촌 생활을 힘들어하기 보다는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로 여겨주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일과 놀이의 구별이 없이 조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까요? 지금은 자녀들의 교육 문제로 세종시에 살면서, 공주에 있는 농장으로 제가 출퇴근을 하고 있습니다. 막힌 길을 뚫고 커다란 회색 빌딩으로 출근하던 때와는 정말 다릅니다. 이른 새벽에 집에서 나와 농장으로 출근하는 길이 아직까지 설레고 즐거운 걸 보면 귀농하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작물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할 중요한 사항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저에게 농부로서 타고난 근성을 가진 것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제가 오늘에 오기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귀농하신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꿈에 그리던 농촌생활을 시작했음에도 얼마 못가 적응하기 힘들어 고생했다고 합니다. 저는 다른 분들에 비해 훨씬 더 힘든 시기가 빨리 왔습니다. 귀농을 시작하고 농사일을 한 지 정확히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요. 아마도 귀농인들 중에서 순위권을 다툴 만큼 빨리 포기하고 싶었던 사람일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랬냐고요? 무더운 한나절 동안 비닐하우스 속에 조성된 밭에 퇴비 20포 나르기로 농사의 첫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귀농학교 졸업하고 실제로 귀농을 해서 잘 버텼다는데 뿌듯함을 느낍니다.
작물을 선택하는 것, 무엇을 농사지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합니다. 제가 처음 농사 시작한 작물은 오이와 토마토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깻잎을 농사지었고, 지금은 감자 농사를 하고 있습니다. 오이는 육묘를 직접 할 정도로 애정을 갖고 열심히 농사지었던 작물입니다. 호박에 접붙이기를 통해 튼튼한 오이를 정식하면서 자신감과 자부심도 싹 틔웠습니다. 그런데 오이는 병충해가 너무나 심해서 작물보호제를 굉장히 많이 사용해야 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자 귀농했던 저에게 과도한 약품처리를 요하는 작물은 굉장한 부담이었습니다. 오이 농사를 그만두고 깻잎 농사를 시작한 처음에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따면서 명상과 사색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매일 일정량의 깻잎을 따야 하는 노동으로 인해서 단 하루도 휴가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이 힘들면 오래 지속할 수 없습니다.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었던 감자가 살아나다, 부활감자 이야기
▶마지막으로 선택한 작물인 감자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채소인데다가 병충해도 적어서 친환경 농법으로 어렵지 않게 농사지을 수 있습니다. 강인한 생명력 또한 큰 장점인 작물입니다. 작년 겨울에 동해를 입어서 수확을 앞둔 감자가 모두 얼어 죽었습니다.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갈아엎고 새로운 작물을 심어야하는데도 어찌해야할 바를 모른 채 지냈습니다. 날이 좀 따뜻해진 것 같아 밭을 갈려고 하는데, 죽었던 감자가 살아났습니다. 잎이 다시 나고 뿌리가 싱싱하게 살아난, 그야말로 부활감자가 되었습니다. 부활감자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주문을 해줘서 수확량 전부를 소매로 조기 완판을 했습니다.

부활 감자 /사진=가현정 제공
-별 무리 없이 농사짓는 방법에 대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제가 세운 3원칙이 있습니다. 1) 안전한 농사 2) 맛있는 농사 3) 재밌는 농사입니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별 무리 없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습니다. 먹을거리이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없는 안전한 농사를 지으면서 맛있는 농산물을 생산해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농사짓는 재미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운영 가능한 별무리 농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작한 오이 농사는 이 세 가지 원칙을 지켜내기 힘들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선택한 깻잎은 병충해에 강해서 안전한 농사를 짓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매일 일정량의 깻잎을 쉬지 않고 따야 하는 노동집약적인 시간조차 처음에는 명상을 하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10시간 종일 깻잎만 따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왔습니다. 혼자서 일하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감자는 병충해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농부에게 큰 수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가뭄에 강하기 때문에 물을 주어야 하는 간격도 길어서 편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감자요리라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별 무리 없이 농사짓는 방법의 핵심은 유기농법을 활용하고, 화학비료를 절대 금지하는 데 있습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아 땅의 힘을 살리고, 맛 좋은 생산, 농부에게 힘 덜 들이는 일등 공신은 유기질비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출신인 사람들은 어릴 적에 농사경험이 없다보니 쉽게 건강에 무리가 옵니다. 특히 무릎 관절이나 허리 질환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했다가는 농사로 소득이 되는데도 건강상의 이유로 귀농을 포기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라! 제가 아내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입니다. 일 욕심에 쉬지 않고 일하는 행동은 정말 위험합니다.
시골에 대한 동경과 현실은 다르기에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여 농사지은 농산물을 제 값을 받고 판매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국가 차원의 농업 지원책이 생산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농산물을 생산하느라 고생하는 농부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고, 지원정책을 세울 때 판매와 유통 부문에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감자를 캐는 이영석 대표 /사진=가현정 제공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성공의 길에 농업이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40대에 독립시기가 오는데 마냥 두렵기만 했습니다. 독립을 위해 약 5년간 준비하면서도 주변에 성공한 롤 모델을 찾을 수 없으니 더 막막했습니다. 어느 순간 오기가 생겨서 아예 내가 해보자! 나 스스로 성공한 롤 모델이 되도록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기왕이면 남들이 피하는 농업분야, 그럼에도 분명 미래 산업이자 생명산업으로 필수 산업인 농업분야에서 성공을 하고 싶었습니다. 농업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으로 귀농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현실이라 해도 과정이 참 중요한 농사일을 하는 지금, 성공으로 가는 길에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도 감자를 캐는 것이 아니라 밭에서 보물을 캐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가현정 객원기자 gana0504@naver.com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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