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위대했고, 위대한 국민이 세상을 바꾼다

[영화로 보는 정치]5월의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정진우 기자 2018.05.15 08:3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1979년 10월26일, 18년간 대통령에 재임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이었던 김재규의 총에 암살당했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갑자기 끝나고 서울의 봄이 올 것이라 국민들은 기대했다. 그러나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1979년 12월12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며 경찰과 검찰을 모두 장악했다. 반란에 성공한 전두환은 정권을 잡았고, 또 다시 독재정권이 시작되자 국민적 분노가 시작됐다. 

민주화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1980년 5월 초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이르자 전두환은 5월 17일 밤 12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국회를 해산시키고, 모든 학교에는 휴교령을 내렸다. 광주에서는 18일 아침 전남대 교문 앞에 대학생 200여 명이 모였는데 군의 과잉 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광주 도심으로 옮겨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무자비하게 살상됐다.

-영화 택시운전사(2017, 장훈 감독 작품)

홀로 어린 딸을 키우고 있는 서울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은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에 갔다가 서울에 돌아오면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영문도 모른 채 손님을 태워 광주로 출발한다.
그가 택시에 태운 손님은 광주 민주화운동 소식을 듣고 진실을 취재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피터)(토마스 크레취만)였다. 광주가 군에 의해 폐쇄돼 일반 도로로 진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만섭은 월세를 갚을 10만 원을 벌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광주 진입에 성공한다. 피터와 광주에서 만난 구재식(류준열)과 함께 광주를 돌아다니며 만섭은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보게 된다.

군사독재정권을 유지하며 1980년대 후반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탄압은 극심해졌다. 1986년부터는 본격적인 대통령 직선제와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던 중 1987년 1월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중이었던 박종철이 체포됐고 경찰의 폭행과 고문으로 사망했다. 
1987년 6월9일 연세대 학생들은 6월10일 예정된 국민대회를 위해 하루 앞서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날 정문에서 시위 도중 이한열 열사가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다음날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본부 주도하에 전국 22개 도시에서 24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그러자 1987년 6월29일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직선제와 제반 민주화 조치를 시행하는 개헌을 약속하는 6·29선언을 한다.

-영화 1987(2017, 장준환 감독 작품)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 박종철이 사망한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박 처장(김윤석)의 주도하에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담당 검사인 최 검사(하정우)는 이를 거부하고 부검을 하도록 한다.
언론에서 사망 원인을 묻자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며 단순 쇼크사라고 거짓 발표를 이어간다. 그러나 계속되는 의문에 사건을 취재하던 윤 기자(이희준)는 ‘물고문 도중 질식사’인 것을 알아내고 박종철사건 보도금지 지침을 무시하고 보도하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다.
한편 교도소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는 한병용(유해진)은 사건 축소를 위해 구속된 조 반장(박희순)과 박 처장의 면회 현장에서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이를 수배중인 재야인사 김정남(설경구)에게 전하기 위해 조카 연희(김태리)에게 부탁한다.

정치부 기자들의 영화 톡톡 (더300 정진우 기자, 더리더 편승민 기자 이하 정, 편)

닮은 듯 다른 영화
: 영화 ‘택시운전사’와 ‘1987’은 내용과 시대적 배경이 이어지는 것 같네요.
: 네 맞아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고, 1987은 7년 후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대해서 다루고 있어요. 
: 두 영화는 똑같은 정권(전두환) 하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배경인 1980년은 정권 초기였고, 1987년은 정권 말기였죠.

: 두 영화 모두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을 그린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어요. 제가 본 차이점은 두 가지 일이 가져온 결과인 것 같아요.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분수령이 됐다고 한다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실질적 결과물인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되는 개헌의 계기가 됐죠.
: 그렇죠. 소프트한 시각으로 두 영화의 차이를 본다면 택시운전사는 관객수가 1200만 명을 넘었고, 1987은 700만 명을 좀 넘었다는 건데요. 단순히 재미를 떠나서 같은 주제를 가진 비슷한 영화가 왜 그렇게 차이가 났을까 하는 데서 메시지를 찾고 싶어요.

: 저는 1987을 먼저 보고 택시운전사를 나중에 봤는데 택시운전사가 저 같은(?)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좀 더 스토리적으로 재미의 요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 택시운전사는 문재인 정부 초반에 개봉했잖아요. 당시 적폐청산의 흐름이 이어지던 때였고, 1987은 올해 문재인 정부 2년차때 개봉했었죠(2017년 12월27일 개봉해 실제 상영기간은 대부분 2018년 초였다).
택시운전사를 볼 땐 시기적으로 사람들이 열광할 요소가 많았지만 1987은 이미 적폐청산이 한참 진행됐고 어느 정도 피로감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실제 젊은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생들이 본 택시운전사는 정말 재밌는 영화였고 1987은 약간 지루한 영화라는 평가도 많았어요. 1987은 86세대를 위한 영화란 평가도 있었고요.

: 제가 1985년생인데요. 하나는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고, 하나는 제가 태어난 이후에 일어난 일인데 제 입장에선 그 당시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광주를 아예 군인들이 막고 폐쇄해서 못 들어간다든지, 대학생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 것도 지금으로는 상상도 안 되니까요.
: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두 영화가 개봉하기 이전에 촛불혁명이 있었어요. 결국 두 영화의 배경들이 2016년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거라고 봅니다. 30여 년 전 국민이 피를 흘려 만들어낸 민주화가 우리 국민의 삶 속에 내재화됐고, 결국 그 민주화 열기가 촛불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정치로 읽는 영화
: 두 영화는 정치부 기자들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 아마도 두 영화 모두 기자들이 영화의 중요한 뼈대를 제공하고 있어서 그럴거예요. 택시운전사는 외신기자가, 1987은 내신기자가 중요한 역할을 했죠.
: 맞아요. 기자가 그 당시엔 정말 ‘사회의 목탁’이라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요즘 기자에 대한 평가를 생각해보면 다소 씁쓸해지는 대목이기도 해요.

: 그런데 택시운전사에서 우리 기자들이 찾을 수 있는 메시지는 뭘까요?
: 저는 김사복과 외신기자, 그리고 광주 대학생이 택시를 타고 광주 광장으로 가는데 시민들이 주먹밥이나 먹을 것을 서로 나누면서 하나가 되는 장면이랑 주유소에서 부상자들의 발 역할을 하는 택시들은 무료로 기름 넣어주는 장면에서 큰 메시지가 있다고 봐요. 뭉클한 느낌도 받았는데,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은 보잘것없지만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 서로 힘을 북돋우는 의미라고 봤어요.
: 저도 비슷해요. 감독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국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 정치를 보면서 말이죠. 앞에 나서서 싸우는 사람도 국민이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도 국민이란 것이죠. 결국 국민은 하나로 이어지고, ‘국민 앞에 독재 권력은 이길 수 없다’는 정치적 메시지가 있다고 봅니다.

: 혹시 또다른 메시지가 있을까요?
: 영화 마지막 부분쯤에 택시가 광주에서 나오려다가 군인 검문검색에 걸리잖아요. 거기서 검문하던 군인(엄태구)이 그들이 누군지 알고도 놔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군인이지만 또한 국민이었던 내부자. 그 장면이 주는 정치적 메시지도 컸습니다.
국정농단이나 적폐세력 사이에서도 양심이 살아있는 내부자들, 혹은 권력 안에서 부당함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사람들 얘기입니다. 우리 정치가 그렇게 막장이었음에도 민주화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런 내부자들의 공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1987과 연결지어도 마찬가지예요. 검사 역(최환 전 공안부장)을 맡았던 하정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당시 그 검사가 화장을 허락했으면 박종철 열사의 죽음은 그냥 묻혔을 거고, 민주화 운동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 1987의 경우는 기자 역할이 더 많이 부각된 것 같아요. 두 영화처럼 요즘도 언론과 기자들이 그런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병원에서 의사가 얘기하는 거 듣자 마자 공중전화로 기자들이 달려가던 게 인상에 남아요. 지금은 단독 보도나 클릭 수에 혈안이 된다면 그때는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달리는 느낌이랄까? 
제가 1987에서 가장 인상깊게 봤던 장면은 동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 분)이 보도지침이 내려왔는데 칠판에 적혀 있는 지침들을 다 지워버리면서 가서 기사 쓰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어요.
: 기자라면 그 장면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겁니다. 감독이 언론의 반성 지점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치가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그런 메시지였던 것 같습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찾아보면 개헌(헌법개정)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호헌 철폐를 외친 그들의 노력이 민주화로 이어졌고, 바로 지금 30여년 만에 개헌 기회가 왔지만 우리 정치권은 그 타이밍을 놓쳤어요. 지난 30여 년간 우리 정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부 기자로서 매우 안타까운 지점입니다.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우리 헌법은 30여 년 전과 똑같으니 말이에요.

: 지금 정쟁이 계속되는 상황이 답답한 면은 있어요. 하지만 1987년에 민주항쟁과 같은 노력이 없었다면 대통령 직선제가 아주 늦게 됐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때 아주 큰 걸음을 했다고 봐요.
아직 87년 이후로 개헌이 되지 않았고 당연히 돼야 하겠지만 정쟁때문에 미뤄지고 있을 뿐이지 국민들은 개헌의 분위기나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완전히 됐다고 생각해요.

: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화가 그때 노력의 결과이고, 당시엔 국민을 위한 개헌이란 생각이 확고했는데 지금 정치권은 결국 자기들의 잇속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죠?
: 네, 맞아요. 저는 두 영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개인적으로 재밌었어요. 영화 보고 나서 당시 사진이랑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 두 영화 엔딩 장면에 당시 사진이랑 영상을 보여주는 게 그런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마치 ‘우리 국민은 이런 노력을 했는데, 정치인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 같았어요. 정치부 기자로서 역시 뼈아프게 반성하는 대목이기도 했습니다.

정 기자 & 편 기자의 한 줄 영화평

택시운전사
정 : ‘5월 그날이 다시 와도’ 진실은 국민의 편
편 : 촛불혁명은 그날의 광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987
정 : 30년전에 외친 광장의 함성, 촛불 되다
편 :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기도 하더라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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