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댓글이 만드는 사회적 현실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 2018.05.03 09:2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드루킹 일당의 포털 댓글 조작 사건에 대한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최근 들어 남북정상회담 이슈 때문에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많은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쉬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여기에 몇 줄 덧붙이는 것이 폭포에 물 한 바가지 보태는 것처럼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이 문제를 정치적 공방이나 포털 배싱(때려잡기) 차원에서만 다루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쯤은 사회 소통과정의 원리적인 부분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포털이 우리 사회의 ‘의견과 사상(思想) 시장(市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던 바다. 중요한 역할을 넘어 뉴스 유통 생태계를 지배한다고 할 정도의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여기서 질문은 포털 뉴스, 네이버 뉴스에 달리는 댓글들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답부터 말하면 매우 중요하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포털의 비즈니스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여론과 현실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reality)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첫 번째 측면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미 다른 지면에서 충분히 지적하였기에 여기서는 골자만 언급하겠다. 먼저 포털 입장에서 보면, 뉴스에 달리는 댓글과 댓글에 달리는 공감 정도는 바로 이용자의 방문횟수와 체류시간을 의미하고 그것은 비즈니스 수익과 직결되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수익을 내든, 전자상거래나 게임을 통해 수익을 내든, 그 밖의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든 간에 ‘체류시간’이 곧 포털의 가치고, 수익의 원천이다. 여기서 댓글이 중요한 것은 사용자 관여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작성한 댓글과 그에 대한 타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데 놀라우리만큼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믿기 어려우면 직접 댓글을 작성하고 자신의 행동을 관찰해보길 권한다. 참여는 관여도를 높이고 방문횟수와 체류시간을 늘린다. 포털이 블로그나 커뮤니티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유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과 대댓글, 공감, 비공감들은 포털 입장에서는 매일 수천, 수만 개의 커뮤니티가 새롭게 만들어짐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여론과 현실의 구성(構成) 측면에서 댓글의 중요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은 진지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언뜻 생각하면 기사가 중요하지 기사에 달리는 댓글이 무어 그리 중요할까 할 수 있다. 실은 댓글이 기사만큼, 어쩌면 기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현실’이 구성된다는 말은, 우리가 아는 현실이 인식(認識) 이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개개인들의 사적이고 심리적 현실들이 상호 소통하면서 하나의 ‘사회적 현실’을 구성한다.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사회 소통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심리적 현실, 재현된 현실, 사회적 현실
사회적 소통은 크게 세 개의 층위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A라는 정치인이 기자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펼쳐 보이려는 자리를 마련하고 질의, 응답 시간을 가졌다고 하자. 이것은 어떤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진 하나의 이벤트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각각에게는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현실이 된다. 이것이 사회 소통이 발생하는 첫 번째 층위다. 정치인과 기자들을 포함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얼굴을 맞대고 언어적, 비인어적 정보들을 교환하고 상황과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특정 경험을 공유한다. 현장 경험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A 정치인과 기자들 간의 대화가 신문기사나 방송물 또는 SNS 게시물로 재현(再現)되고 그것이 독자나 시청자, 팔로어들에게 전달되는 층위다. 기록하는 사람들, 즉 기자(記者)들에 의해, 또 다양한 매체의 매개를 통해 현실은 재현되어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전달된다. 동일한 기사, 재현된 현실을 접한 이들은 앞서의 경험 공동체처럼, 특정 현실을 공유한 독자·청자 커뮤니티를 구성한다. 그 규모는 현장 경험적 공동체에 비해 획기적으로 확대되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A 정치인의 회견은 미디어의 현실이지 아직은 우리의 ‘현실’이 아니다. 

세 번째 층위는 ‘현실’이 구성되는 사회 소통의 마지막 단계다. 여기서는 해석과 의견의 공동체, 여론의 공동체가 관여한다. 미디어의 현실 재현은, 특정 이벤트의 시공간 제한 너머로 경험의 범위를 확장하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재현된 현실이 공통의 사회적 현실로 구성되기 위해서는 의견과 해석들이 전파 공유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A 정치인과 기자들의 대화라는 사적(私的) 현실은 미디어를 통해 재현되고, 그것에 대한 여러 의견과 해석들이 경쟁하면서 주도적 해석이 폭넓게 공유될 때 비로소 사회적 현실로 인식된다. 여기서는 정치인과 기자들 간의 대화와 기사를 예로 들었지만 이런 사회 소통 과정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기록한 플라톤,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바울,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편집한 여러 제자들의 사례에도 적용된다. 옛 성현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나 뉴스와 같은 매일매일의 역사도 이런 과정을 거쳐 구성된다. 나는 이것을 ‘사회 소통과 현실 구성의 일반모델’로 이해한다. 

알고리즘이 구성하는 현실
포털의 댓글·공감 알고리즘은 현실을 구성하는 해석과 의견 공동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두 번째 층위가 현실 구성 과정에서 중요했고 주도적이었지만, 현재는 세 번째 층위가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두 번째 독자·청자 공동체와 세 번째 해석·여론 공동체가 시공간 차원에서나 그 규모면에서 분명히 구분됐다. 현재는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읽고 듣고 쓰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구분이 전혀 무의미하다. 이것은 현실 구성의 주도권이 세 번째 층위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기사가 댓글과 공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현실이다. 많은 댓글과 공감을 얻어야 대중에 노출될 수 있고 그러지 못한 기사는 존재가 부정당한다. 그것이 알고리즘이다. 다수의 해석과 의견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에 지식과 명망을 갖춘 이들이 담당하던 해석자의 역할을 포털에서는 공감을 많이 받은 댓글들이 담당한다. 그런 댓글과 공감이 기계로 벽돌 찍듯이 제작되어 유통된다고 하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의 생각이 현실은 아니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현실은 아니다.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다. 사회 소통 이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관점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 ‘상징적 상호작용론’의 기본 명제다. 공감도가 높은 댓글이 여론이고, 현실이라는 관점과 부합한다. 여론(Public Opinion)을 누구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월터 리프먼은 그 여론을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여론과 현실은 그렇게 불분명하다. 불분명하니 조작(造作)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다. 언어학자면서 여론과 정치문제에 집중해온 촘스키는 자신의 저서 <동의(同意)의 생산(Manufacturing Consent)>에서 여론과 사회적 동의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같다고 오래전에 갈파한 바 있다. 미국 정부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했던 그의 지적이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울림이 된다. 정치권력과 거대 자본뿐 아니라 일탈적 댓글러와 불법 프로그램까지 걱정해야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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