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봄의 향기 두릅나물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8.04.09 12:5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제 바야흐로 봄입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이 소생합니다. 온 산 그득히 봄 내음이 물씬합니다. 주말에 등산 가는 길 재래시장을 지나다가, 할머니 한 분이 시장 모퉁이에 조그맣게 쌓아놓고 파시는 두릅을 발견합니다. 보기 드문 야생두릅나무의 순, 참두릅입니다. 멈추어 서서 한참이나 들여다봅니다. 참 길었던 겨울이 지났구나, 그래 이제 봄이구나, 생각합니다. 소설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을 쓴 소설가 김도연의 첫 산문집 '눈 이야기'의 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저의 종교는 눈, 그중에서도 폭설입니다. 사원은 폭설로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저는 주지와 사미 겸 목사이기도 하고 기꺼이 신도가 되기도 합니다.” 폭설에 갇혀 강원도 산간에서 한겨울을 보낸 고독한 소설가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봄이 온 거지요.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살고있는 이 작가는 "봄에는 두릅을 따고 여름에는 농사일, 가을이면 산열매를 채취하며 지낸다”고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맘때 봄에는 두릅을 따야 합니다.

길고 긴 겨울을 보내고 나면 우리 몸은 자연히 나른해집니다. 꽃소식과 함께 찾아오는 불청객인 춘곤증[春困症]은 봄소식을 전하는 봄의 전령사입니다. 봄이 되면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 나른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졸리는 경우가 많지요.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가도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지면서 눈이 스르르 감기기 일쑤고, 운전 중에 뜬금없이 깜박 졸다가 사고를 낼 뻔 하거나, 컴퓨터를 조작하다가 엉뚱한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동을 한답니다. 이런 춘곤증은 봄이면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봄나물들이 그 해결책으로, 봄이 되면 겨울 동안 떨어진 면역력을 회복하고 춘곤증을 이기기 위해 제철나물인 봄나물을 먹어야 합니다. 특히 봄에 새로 나는 어린 싹들 대부분은 약한 쓴맛을 갖는데, 이런 약한 쓴맛은 열을 내리고, 몸이 나른해지면서 무거운 느낌이 드는것을 치료하며, 없어진 입맛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는 겁니다.

두릅을 아시나요. 대개 두릅나무의 순을 참두릅, 엄나무의 순을 개두릅이라고 부릅니다. 두릅은 땅두릅과 나무두릅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흔히 보는 두릅은 대개 땅두릅입니다. 땅두릅은 4~5월에 돋아나는 새순을 땅을 파서 잘라낸 것이고, 나무두릅은 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하는 거지요. 땅두릅은 밑부분이 하얗고 가시가 없으며 쌉싸름하고 향이 강하답니다. 봄맞이 산행을 다닐 때 잘 들여다보면 주위에 초록색 굵은 싹의 두릅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자연산 두릅의 채취량이 적어서, 산에서 야생두릅나무의 가지를 잘라다가 비닐하우스 온상에 꽂아 재배하기도 합니다. 덕택에 두릅을 추운 한겨울에도 맛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두릅의 본 맛은 봄 산에서 갓 따온 야생 두릅이 제격일 것이지요. 두릅은 잎이 모여서 핍니다. 일단 잎이 퍼지기 시작하면 세져서 먹기 어려운 상태가 된답니다. 두릅 순이 갓 필 때는 표면에 옅게 솜털이 있고, 조금 자라면 잎줄기에 가시가 생기게 됩니다. 두릅의 어린 싹은 독이 없어 특별한 손질 없이 식용으로 먹어도 됩니다. 4월이 제철입니다.

두릅은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것이 그 고유한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데친 두릅을 된장에 무쳐 먹는 것도 그 풍미가 대단하지요. 두릅은 손질해서 데치면 원래보다 연둣빛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데친 두릅에서는 아릿한 풋것의 냄새, 달달한 봄 향기가 물씬 납니다. 분명한 향기이지만 손에 잡힐 것 같지는 않은, 묘한 매력의 이 두릅향은 우리에게 진짜 봄을 선사합니다. 먹고 나면 하루쯤은 그 향기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훌륭한 향기입니다. 한 입 베어물면, 입안에 씹히는 맛이 사각거리고 상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입니다. 입안에서 풋것, 새것, 여리여리한 봄 것의 맛이 어울려 춤을 춥니다. 상쾌하면서 부드러운 감미입니다. 역시 봄나물중에 으뜸은 두릅, 그래서 산채의 여왕이라 불리웁니다. 이제 진짜 봄이구나, 감미롭고 향기로운 봄 소식, 새봄에 두릅나물을 먹는 이 신선한 느낌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일러스트=박유하


개두릅나물 장 석남

개두릅나물을 데쳐서/활짝 뛰쳐나온 연둣빛을
서너해 묵은 된장에 적셔 먹노라니
새장가를 들어서/새 먹기와집 바깥채를
세 내어 얻어 들어가/삐걱이는 문소리나 조심하며
사는 듯하여라/
앞산 모아 숨쉬며/사는 듯하여라

아시나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삼이 두릅나무과입니다. 그래서, 두릅의 효능은 인삼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두릅에는 홍삼뿌리보다 더 사포닌이 많아 몸에 좋다고 합니다. 피로회복, 간기능 강화, 열량이 낮아서 혈당을 낮추어 준다고도 하네요. 한방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두릅의 뿌리껍질과 나무껍질을 자노아(刺老鴉)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글자 그대로 “노인을 자극하여 젊게 만든다”는 뜻이지요. 그만큼 두릅이 몸에 좋다는 뜻입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유난히 두릅을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주위의 임시정부 요인들에게 “두릅은 비록 가시가 비죽거려 못생겼지만, 그 새살은 얼마나 부드럽고, 향기로운지 모른다”하시면서, 춘삼월이 오면 선생의 출가 사찰이며 일제 강점기 은거하셨던 공주 마곡사 뒷산의 두릅나무 이야기를 자주 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가시돋친 두릅나무의 순을 좋아하신 것은 선생의 험난했던 삶 때문이었을까요.

흠. 저 보기드문 참두릅 한 무더기를 사기로 합니다. 직접 봄 산에서 따 가져 왔노라 큰소리도 좀 치고요. 오늘 저녁에 하산후에, 저 향기나는 두릅을 잘 데쳐서, 연하다 연한 연둣빛 두릅된장무침에 막걸리 한 잔 해야겠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제 몸과 마음이, 두릅의 달달하고 알싸한 향기에 진짜 봄을 깨달을 수 있게요. 좋은 봄 되시길.
jungmy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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