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북한 비핵화 의지가 회담의 열쇠”

남북·북미 정상회담,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계기 될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8.04.09 09:3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최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 특사단의 종횡무진 행보는 일련의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이뤄냈다. 역사적으로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질 한반도는 지금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특히 이번 남북·북미정상회담의 의제는 이전과 달리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어떤 방식으로 비핵화가 이뤄질지,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 것인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상회담에 앞서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를 만나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 및 남북·북미정상회담 개최의 의미와 이후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무엇일지 물었다. 

/사진=더리더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인한 일시적 남북 평화 유지라는 예상을 깨고 특사단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성사라는 결과를 낳았다. 어떻게 봤나
▶올림픽을 계기로 국면 전환 모색 과정에서 한국과 북한, 미국 3국 사이에 조화점이 찾아졌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우선의 한반도 정책’을 유지하며 올림픽 기간에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북한과 신뢰를 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대 압박’이라는 관점에서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이 대화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든 측면도 있다.
김정은 정권은 신년사에서 올해로 70주년을 맞는 정권 수립일을 평창올림픽과 함께 민족적 대사로 규정하고 다같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걸 계기로 선수단과 대표단을 보내면서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다.
이번 경우는 외교라인보다는 정보라인이 동원돼 평창 또는 서울에서 3국 정보기관들이 밀접한 협의를 했다. 국가정보원 서훈 원장, 북한 통일전선부 김영철 부장, 미국 중앙정보국(CIA) 마이크 폼페이오 국장이 올림픽 기간에 심도 있는 접촉을 통해 남북·북미정상회담까지 이어지는 사전 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톱다운 방식이 이번 정상회담 성사의 특징이다. 김 위원장이 친여동생인 김여정을 보내 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했고, 정 안보실장과 서 원장을 포함한 특사단이 갔을 때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정상회담 카드를 북한이 먼저 사용한 것이다. 과거에는 비밀접촉과 많은 밀고 당기기 끝에 이뤄졌는데 이번엔 달랐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대화의 문을 사실상 북한이 열었다고 본다.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리면서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남측에 오게 됐는데 어떤 의미일까
▶앞서 두 차례는 북한 평양에서 열렸고 대규모 대표단을 꾸려 2박3일 머물면서 협상했다. 이번에는 사실 북이 남측으로 내려오는 게 맞는데, 여러 사정으로 내려오기 어려운 조건이다.
그래서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하기로 했다.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자, 정전 체제의 상징이다. 결국 평화의 집에서 회담을 한다는 것은 정전질서를 평화질서로 바꾸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60여 년 동안 청산하지 못한 전쟁을 종결짓고, 평화보장의 체계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다.

-남북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올 핵심 의제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정상회담 준비위원회 1차 회의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이 밝힌 대로 비핵화와 평화정착, 남북관계의 담대한 전환이 주의제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나 북핵문제를 의제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사 교환 과정에서부터 핵이 주의제로 다뤄졌다. 이번 회담이 단순히 남북관계가 아닌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판이라는 것을 북한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연결돼 있고, 잘된다면 남북미 3자간 정상회담 가능성도 있다. 당사국들 사이의 종전선언이나 평화선언이 이뤄지면, 그 다음은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조치로 4자회담이나 6자회담으로 확대될 수 있다.
남북관계는 여러 번 합의해 왔지만 사문화됐다. 좋은 합의들은 이미 그 안에 있다. 그중에 지금 시대에 맞도록 재구성해서 새로운 합의서를 채택하는 방법이 있다. 당장 채택이 안 되면 원칙에만 합의하고 추후 총리회담을 통해 남북기본협정을 만들기로 한다든지 하는 정도가 될 것 같다.

-과거 두 차례 회담과 달라질 점은 무엇일까
▶1994년 북미제네바 합의,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은 대체로 동결 대 보상 방식이었다. 핵을 더 이상 진전시키지 않는 ‘동결ʼ이라는 조치를 취하면 거기에 따른 경제적 ‘보상ʼ을 했다. 경수로를 지어준다든지, 에너지 지원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이런 안보 대 경제 교환 방식이 비핵화를 막지 못했다.
이번 경우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두 가지 전제가 있다. 군사적 위협을 가하지 않고, 체제안전 보장이 담보될 때 북한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했다. 만약 협상이 시작된다면 과거 방식과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은 안보 대 안보의 교환이다.

4월말 예정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알려진 판문점 인근 남북출입사무소에 전광판이 가동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경제부처가 제외됐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의 의지가 지금은 경제보다는 안보 대 안보 교환이라는 관점에서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 문제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문제는 앞으로 별도의 회담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미 남북고위급 1·9합의에도 긴장완화조치를 위한 분야별 회담을 하기로 하는 등 몇 가지 합의 사항이 있다. 세부적 경제협의는 꺼낼 수 없고 합의한들 이행할 수도 없다. 안보리 제재 결의를 벗어나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거기서 힘을 뺄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도 파격적이었다. 외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협상가(negotiator), 외교 천재(diplomatic genius)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문 대통령은 얼마나 역할을 했다고 보는가
▶어떤 사람들 말로는 스트롱맨들 사이에 젠틀맨이라는 말도 한다. 물론 누구 하나의 힘만으로는 성사될 수 없는 문제이지만 그동안 한미 간의 긴밀한 협의와 공조가 이뤄져왔고, 북한과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올 수 있는 데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컸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지난 보수정권 10년 동안 한반도 문제를 거의 우리가 주도하지 못하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전략적 인내를 하는 데 그쳤다. 그렇게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면서 주도력을 발휘하지 못해 결국 핵미사일 개발을 막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북미 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운전대를 잡은 것이다.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일까
▶북한이 3대에 걸쳐 고난의 행군까지 하면서 만든 핵을 만들자 마자 폐기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우선 현재 미국의 입장은 미국을 타격할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완성은 막겠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북한이 핵을 개발할 동안 미국은 전략적 인내를 하면서 통제 가능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접 타격이 가능한 ICBM만 완성되지 않으면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트럼프가 협상에 응한 것도 그런 의미일 게다. 완전한 비핵화는 정권을 당장 내놓으라는 뜻이기 때문에 힘들다. 북한의 2차 공격 능력을 막는 조치를 취하는 정도로 동결시켜놓고, 장기적으로 비핵화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자는 의미라고 해석된다.
우리나라 입장 역시 동결조치를 먼저 취하고 출구전략을 통해 비핵화한다는 것이다. 선 비핵화 방식은 북한 핵의 고도화를 막지 못하고 완성까지 가게 했다. 좀 늦었지만 지금 단계에서라도 ICBM완성과 대량 생산을 막으면서 어느 정도 통제하는 범위 안에서 협상을 끌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즉, 북한이 현재까지 개발해놓은 핵은 체제안전이 담보될 때까지는 전쟁 억제로 쓸 수 있게 해주고 그 다음부터 해결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중국 모델이다. 중국이 1960년대에 양탄일성, 즉 수소탄, 원자탄, 인공위성 개발을 한 다음 70년대 미중수교로 데탕트(긴장완화) 시대를 열어 오늘날 고도성장을 이룬 것처럼 핵을 인정받고 중국식으로 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핵폐기에 대해서 미국의 목표는 CVID, 북한의 목표는 CVIG다. 두 가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입구론과 출구론 차이다. 미국은 선 핵폐기를 하라는 것이고, 북한은 후폐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미국은 “너는 흉기를 갖고 있으니 정상국가가 되려면 문으로 들어오기 전에 흉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발가벗고 들어오라”는 것이다. 북한은 “우리에게 계속 위협을 가하니까 우리는 안전을 위해 흉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고 체제안전을 보장한다면 나갈 때 최종적으로 버리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과거에 스스로 안전보장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양보해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한국전쟁을 끝내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 의회에서 안전을 담보하는 북미 간 조약이나 합의를 비준하는 방식으로 하고, 유엔에서도 결의를 통해 보장조치를 취하라는 것까지 협의에 포함할 것이다.”
*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
*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 for Peace process) :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보장

대북특사단이 3월 6일 오후 서울공항으로 귀환했다. (왼쪽부터) 김상균 국정원2차장, 서훈 국정원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천해성 통일부차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미국 외교수장인 국무장관이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전격 교체됐다. 북미 대화에 끼칠 영향은 얼마나 될까
▶우려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폼페이오는 CIA에 있으면서 이번 협상 성사를 주도했다. 오히려 트럼프 정부가 북미 대화를 효율적으로 끌고가기 위해 손발이 안 맞는 틸러슨을 교체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 맥매스터 후임으로 온 존 볼턴 역시 가장 강경한 대북정책 인사이기 때문에 우려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좋게 보면 역할분담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 폼페이오를 데려와서 대화를 하겠다고 한 상황이니까 대화를 추진하고 잘 안 될 때를 대비해서 볼턴을 내세워 최대압박으로 가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한마디로 폼페이오와 볼턴이 굿캅(good cop)과 배드캅(bad cop)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강경파니까 정상회담이 잘 안 되는 거 아니냐 하고 속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북메시지 측면에서는 협상력을 높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패일 수도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어디에서 이뤄질 것인지 상당히 많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장소가 대화의 주도권을 좌우할 수 있어서 그런 것인가
▶북한은 평양을 원할 것이다. 워싱턴에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 정권이 나라를 오래 비우는 데 부담이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판문점이 제일 좋다고 보고 있다. 3자회담까지 판문점에서 함으로써 분단의 상징인 곳에서 담판을 짓고, 평화협상을 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판문점 남한측 평화의 집이든 북한측의 통일각이 되든 상관없이 어쨌든 판문점에서 하는 것이 상징성이 있을 것이다.

-남북·북미정상회담 후에 궁극적으로는 6자회담 성사가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이후 어떤 후속조치들이 이뤄져야 하는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북정상회담 하나만 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잘되면 남북미 3국 정상회담까지 연계된 문제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이해당사국들의 내용이 잘 반영돼야 한다. 어려운 과정이지만 처음부터 가시적 성과를 바라기보다는 욕심 부리지 않고, 우선 깨지지 않게 유리그릇 다루듯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제도화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루아침에 북한의 비핵화를 완성하기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본도 이미 북한에 정상회담 제안을 했고 우방국들 역시 정상회담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을 점차 국제화, 개방화시키고 점진적으로는 민주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現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1957년 4월25일, 경북 문경 출생
現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장
現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기획조정분과위원회 위원장
現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 분과위원장
동국대학교 정치학 학사
동국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박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자문위원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소장
북한연구학회 회장
통일준비위원회 위원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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