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 없는 사회를 꿈꾼다

황규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탈시설 정책, 장애인 권리보장 체계 구축하는 게 우선”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임고은 기자 2018.04.19 08:2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우리 주변에서 언제부터인가 장애인들이 사라졌다. TV에서도 장애인들은 그 모습을 접하기 힘들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등록된 장애인 수는 251만1000명이다. 20명 중 1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 수에 비해 사회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977년 ‘특수교육진흥법’ 시행 후 장애인 복지는 장애인을 ‘보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사회와 격리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경제 성장만을 바라는 사회에서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의 사회적 위치는 그만큼 낮을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 인권 향상의 흐름과 함께 장애인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장애인을 격리•수용하는 시설에서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른바 ‘탈시설화’가 요구됐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장애인의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지원 환경 조성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장애인복지계에서 정책 실현을 위한 무조건적인 탈시설은 경계해야 한다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긴 세월 동안 격리•수용에 맞춘 법률과 정책, 지역사회 환경을 뒤로하고 급격하게 추진하면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와 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리더>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장애인 복지 환경과 이에 따른 노력,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를 알아보기 위해 황규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을 만났다. 

장애인 복지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36년간, 장애인 복지를 위해 헌신해 온 황 회장은 “탈시설은 시설 이용 장애인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시설과 동시에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 자립에 대한 시스템이 함께 동반돼야만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올해 4월 20일은 서른여덟 번째 장애인의 날이다.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지
▶장애인의 날이 지정된 까닭은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정부 정책과 제도를 가다듬어 장애인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 목표는 아직 달성되지 못했다. 38회째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며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내 바람은 ‘장애인의 날’ 없이도 모든 장애인이 꿈을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날이 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사회 인식 개선 등 우리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장애인 복지 관련 일을 시작한 계기는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장애인 복지에 깊은 뜻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사회복지기관에 잠시 근무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기관장이 큰 도움이 됐다며 같이 일해보자고 권유했다.
제안을 받았을 당시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던 터라 많이 고민했다. 유아교육은 대학에서 전공하고 전문적으로 해온 일인 데 반해 사회복지는 생각지도 못했고 전문성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가족들의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나를 필요하다고 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대부분 발달장애인이다. 실제 나이가 10대, 20대라도 정신연령은 5세 수준인 경우가 많다. 5세이면 유치원 아이들 정도다. 내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해왔던 교육 방식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 하는 일이 이제껏 공부했던 것과 전혀 다른 분야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시작은 타인의 권유에서 비롯됐지만 ‘일을 계속해야겠다’는 의미는 스스로 찾은 셈이다.

-‘장애인복지시설협회’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장애인 복지시설의 발전과 장애인 권익 향상을 위해 장애인 거주시설 관리를 하고 있다.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은 3만2000여 명이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주 업무다.
시설 운영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문제점을 취합해 정부와 협의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협의 활동을 통해 대안,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좋은 정책을 제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해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즉, 협회는 현장과 정부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협의 주체로, 장애인 거주서비스의 변화를 견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협회장으로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있었다면
▶현장에서 느끼는 시설의 문제점을 고치고 직원 근무 조건도 조금씩 개선해왔다. 긴 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서 해왔던 일이 협회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아무도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2004년에 장애인인권실천 기준을 정한 것이 반향을 일으켰다. 국가 인권위원회나 사회에 전반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것 같다.
지난해 이전 협회장이 갑작스럽게 퇴진하면서 협회의 추천을 받아 출마했다. 처음에는 너무 큰 자리라 사양했으나 이제까지 받아온 신뢰에 대한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게 됐다.

-출마 당시 공약사항과 현재 이행 정도는
▶출마를 결심하고 내건 공약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시설 이용 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현장과 소통하는 체계를 강화한다는 것. 이는 홈페이지에 ‘고충민원’ 페이지를 신설해 대응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느낀 어려움이나 요구 사항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 협회에 전할 수 있도록 했다.
둘째, 소규모 시설 운영기준•직원 처우 개선을 위해 현실적인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 아무래도 집단 수용 시설보다는 소규모 시설이 이용 장애인을 꼼꼼하게 지원할 수 있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단기거주시설과 그룹홈과 같은 소규모 시설은 국가가 아닌 지방으로 이양돼 일괄적인 접근이 어렵고, 운영상 불리한 점도 많다. 협회는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지침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장애인복지법 하위 법령 개정에도 힘쓰고 있다.
셋째, 장애인복지시설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회가 앞장서서 어젠다를 개발하고 제도화에 노력하는 것. 근로기준법 강화와 초과근무 특례제한 등으로 시설 직원들의 근로 조건은 어느 정도 향상됐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인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이용 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질의 하락과 안전이 우려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무 체제를 3교대로 하는 안을 제시하는 등 정부, 사회복지 단체와 협의하고 있다.

-시설 복지 변화를 직접 경험해왔다. 일을 시작했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36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천지개벽 수준의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과거 시설 복지 수준은 정말 열악했다. 한 건물에 많은 장애인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에 이용 장애인은 과밀화됐다. 장애인 거주시설을 지원하는 정부 예산은 최소한의 복지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비참할 정도다.
예를 들면 당시 부식비는 세 끼 합쳐 150원이었다. 지원되는 쌀도 해묵은 정부미였다. 간식으로 요구르트 하나 사주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 정부는 아이들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정도만 지원했다. 영양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허기를 채우는 데 급급했다. 어쩔 수 없이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 자체의 노력이나 지역 주민들의 자선 활동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도 일반인 식비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그 대신 수당이나 개인 후원 연결로 대부분을 충당할 수 있게 됐다.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시대에서 영양 과다로 ‘날씬이 교육’이라는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할 만큼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인식의 변화가 가장 크다. 1980년대, 90년대에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다. 정신이 박약한 사람이란 뜻으로 ‘정박아’라고 낙인찍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자유롭게 밖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장애인이 거리를 돌아다니면 ‘잡아가라’고 신고 전화가 오곤 했다.
지금은 인권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워졌다. 특히 청소년과 학부모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 장애 학생도 내 자녀와 함께 교육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 물론 아직도 특수학교 설립을 배척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사실 복지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만족할 만큼의 발전은 아니다. 여전히 내 집 옆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데에는 거부감을 보인다. 협회에서 관리하는 그룹홈이 16채인데 한 채 늘려갈 때마다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주민 설득에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그룹홈은 어떤 시설인가
▶장애인 4명과 교사 1명이 함께 생활하는 소규모 거주시설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 일반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가정생활•사회활동 등을 익히고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반 가정과는 다르지만 대규모 집단생활을 하는 것보다 일반 시민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이 오히려 장애인을 격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장애인들이 따로 모여 살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와 격리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시설도 지역사회 안에 위치한 공공•사회주택의 하나이기 때문에 사회에 속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부가 시설 소규모를 넘어 ‘탈시설’ 정책을 추진 중이다
▶탈시설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보건복지부도 지난 3월 12일 ‘커뮤니티케어(Community Care)’ 추진을 선언했다. 커뮤니티케어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자택이나 소규모 그룹홈 등에 살며, 개인의 욕구에 맞는 사회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탈시설이라는 용어로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긴 시간 동안 노력해온 방향이다. 장애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주거 지원방식을 선택하고 우리 이웃처럼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할 계획이다.
다만 탈시설 정책을 위한 탈시설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협회의 입장이다.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무조건 장애인들을 시설 밖으로 보내는 것은 안 된다. 지역사회에 나가서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지금 상황에서 탈시설이 강제된다면 사는 집만 달라지는 모양이 된다. 직업도 없고 어울릴 사람도 없다. 장애인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사실 정부의 추진 의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추진 의지는 예산 규모로도 드러나는데, 장애인 거주시설 관련 커뮤니티케어 예산은 불과 몇십억 원에 불과하다. 30인 거주시설 1년 운영예산 정도밖에 안 된다. 정부는 지난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도 이와 비슷한 정책이 있었지만 현실화하지 못했다.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시찰 장소에서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을 요구했다. 그 내용은
▶국회는 지난 2011년 2월 장애인 거주시설 소규모화에 합의하고, 같은 해 3월 장애인복지법 제59조 3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특수한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대통령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시설 정원은 30명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이후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이 개정되지 않아 소규모 시설 운영이 기존 대규모 시설에 비해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2015년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국고보조사업 환원에서 제외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정을 경험했다.
당시 양승조 국회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게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고 장애인 소규모 시설에 유리한 인력 및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일부를 개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시설 이용 장애인의 인권 보장과 개별 삶 지원을 위한 정부 지원이 강화돼야 한다는 뜻도 전달, 복지위의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약속받았다.

-장애인등급제 폐지가 큰 이슈로 떠올랐다. 장애인 거주시설에는 변화가 있나
▶이제까지 장애인 거주시설은 장애인복지법의 규정에 따라 1~3급 장애인이 우선적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이용 자격 판단 기준이 어려워졌다. 별도로 장애인복지법 제60조 2항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이 신청자의 이용 적격성 여부를 심사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장애인등급 폐지와 관련해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적격심사도구를 제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한 끗 차이다. 나도 지금 쓰고 있는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운전을 못하는 것은 물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일도 하나하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내가 장애인으로 구분되지 않는 이유는 안경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장애 구분은 이렇게 가변적이다. 현재 장애로 보이는 것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언제든지 비장애로 바뀔 수 있다. 장애는 조건의 차이일 뿐이다.

황규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現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 회장
카톨릭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 
교남소망의 집 원장
서울특별시 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임윤희, 임고은 기자 yunis@mt.co.kr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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