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 “미투 운동은 남녀간 권력 문제”

[인물포커스]"성평등은 복지, 여성 정치인 역할 중요…사회 구조적으로 바꿔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홍세미 기자 2018.03.14 09:3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사진=더리더
‘#미투’, ‘#위드유’.


‘나도 그렇다’는 의미의 미투(Me too) 운동은 사회 전 분야를 막론한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검찰, 문단, 방송, 영화계, 연극계 등에서 미투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미투운동은 여성들이 주도한다. 성희롱과 성폭행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는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의 문제라고 말했다. 미투운동이 젠더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희롱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짚었다.

정치학 박사인 김 교수가 여성가족부 모임인 성평등 보이스 단장을 맡았다. 그에게 성평등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물으니 “우리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뤘지만 과연 정치는 발전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가 오히려 1987년 이후 퇴보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친 것은 아닐까”라며 “그게 성평등이다”는 가설을 세웠다. 정치 선진국을 살펴보면 대부분 성평등을 이뤘다고 분석했다.
정치 발전,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성평등이 필요하다는 김 교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달 12일 광화문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나라에서 미투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어떻게 지켜봤나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미투운동이 시작됐다. 폭로한 이후 ‘8년 전에는 뭐 했느냐, 왜 지금 폭로하느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왜 8년 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사회 구조 때문이다. 미투운동은 단순한 성별 문제가 아니다. 상하관계에서 나오는 권력의 문제다. 검찰 조직 내에서 여성 검사는 30%로 구성됐다. 그러나 고위 간부는 얼마나 되나. 조희진 검사가 2015년에 첫 여성 지검장이 돼 화제가 됐다. 그 이후로는 없다. 고위급에 여성이 없다는 것은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된다는 의미다. 조직에서 성별이 한쪽으로 쏠리고 불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지면 성폭력이나 희롱은 항상 나올 수밖에 없다. 문학계나 영화계 등 사회 곳곳에서 미투운동이 벌어지는 것은 각 분야에서 권력구조가 한쪽으로 쏠렸다는 의미다. 미투운동은 단순하게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의 조직문화의 문제다. 여성을 사실 ‘사회적 약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승진이 되지 못하고 남성이 받는 임금보다 덜 받는다고 알려졌다. ‘여성이 남성보다 지위가 낮다’고 연결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다.

-고위급 인사에 남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은 결혼하고 출산하면 경력단절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하면서 남성에게 뒤처진다. 대학교 같은 경우에는 여성교수가 10%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 국공립 대학은 여성 교수 비율이 30% 정도 된다. 여성할당제를 지키는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는 여성할당제를 잘 지키는 모양이다
▶그렇다.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여성할당제를 지키지 않으면 예산을 깎아버린다.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가야 한다. 국공립대학교의 경우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예산을 깎으면 된다. 여성할당제라는 것을 영원히 시행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일정한 기간 동안 시행한 다음, 여성 비율이 높아지고 전체적으로 바뀌면 할당제를 없애면 된다.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현 구조를 고착화하겠다는 주장이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규율만 정해놓고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시행하면 안 된다. 국가에서는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 어느 나라든 불평등 구조는 있을 수 있지만 개선하려고 하는 의지와 시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성평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어떤 문제 제기를 해야 하나
▶사람들이 성평등에 대해 착각하는 게 있다. 이미 우리가 성평등을 이뤘다는 것이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왔고 여성들이 수석졸업 한다는 것을 예로 든다. 이것은 착각이다. 공기업이나 사기업의 고위급 간부에서 여성 비율이 얼마나 되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성평등은 공공재라고 생각한다. 성평등이 이뤄지면 여성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성평등 정책 중 하나인 ‘일가정 양립’이 어떻게 여성들에게만 좋은 정책인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정책은 부모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성평등이 해결되면 국가경쟁력이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청렴한 나라로 불리는 스위스와 핀란드 같은 국가를 보면 우리와 다른 점이 성평등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성평등이 대한민국 발전과 전혀 관계 없는 게 아니다. 성평등은 복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사진=더리더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를 바꾸는 게 정치다.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정치권 상황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20대 국회 여성의원 비율이 17%다
▶더 큰 문제는 지역구 여성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 비례대표다. 경쟁력이 생기기 쉽지 않다. 여성 후보와 남성이 같이 경선을 치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기기 쉽지 않다. 여성 후보에게 가산점 제도를 두지만 크지 않다.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해서는 전략공천이 필요할 수 있다.

-여성 의원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은 지방의회에서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여성이 지방의회에서부터 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국회로 가거나 공기업이나 사기업으로 이직해야 한다. 정치용어로 이야기하면 ‘단계적 성취형’이 많아져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지방(local)부터 시작해, 주(state), 지역(field)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 국회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봐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자면
▶우선 여성 보좌관을 많이 고용해야 한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다. 의원 1명이 1명씩의 보좌관을 둬도 300명이다. 이들이 트레이닝 받아 지방의회, 공기업으로 가서 경험을 쌓으면 우리 조직 문화가 바뀔 수 있다.

-여성 유권자가 절반인데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를 변화시키고, 유리천장을 깨고, 생각해 변화를 주려면 여성이 남성보다 리버럴해야 한다. 여성 유권자에 대해 연구를 해봤더니 여성이 남성보다 보수적이었다. 지난 18대 대선 때 결과를 보면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3.6%p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2030세대는 문 후보에게, 5060세대는 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대체적으로 박빙이었지만 승부를 결정지은 세대가 40대 후반 여성이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20대 여성이 달라졌다. 이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리버럴하다. 진보적인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다. 이들이 생활 어젠다인 육아, 보육, 일가정 양립 쪽에 관심이 생기면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투표에 영향력을 행사하면 정치인들이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세우고 정책을 만들 것이다.

-여성 지도자가 많아지면 세상이 바뀔까
▶미국에서 50개주를 대상으로 여성 친화적인 정책 상관관계 연구가 진행 된게 있다. 여성 정치인이 많아질수록 여성 친화적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도 여성 의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바뀌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주도는 여성 정치인들이 해야 한다.

-이대로 바뀌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나
▶폭로하고, 조사하고, 끝나버리면 지금의 미투운동 전개는 의미가 없어진다. 조사는 조사대로 해야 하지만 조사는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처벌이 강하게 내려지더라도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도 성폭력과 희롱 문제가 있었는데
▶아무리 문제가 발생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고 해도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한 번 문제를 제기하고 말 게 아니라, 근원적인 쪽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전개돼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사진=더리더
-문재인 대통령이 진정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장관 30%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겠다고 말했다. 굉장히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이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장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 여성 정책이 부처마다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성 정책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가 총괄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부장관을 여성 부총리로 임명해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권한이 한곳에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정책이 실현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정책에 대해 예산을 밀어줘야 한다.

-김 교수는 정치학 교수다. 성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이뤄졌다. 원전 기술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 ‘정치만 바뀌면 좋을 텐데’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모든 정치인들은 정치를 바꾸자고 이야기한다. 대통령 선거 때 정치혁신 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7년 이후 과연 우리 정치가 발전했을까. 오히려 퇴보했다고 본다. 이유를 찾아야 한다. 수많은 개혁을 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혹시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이제껏 우리는 정치혁신이라고 하면 정당개편, 선거제도 개편 등을 얘기했다. 하드웨어만 바꿨지 소프트웨어는 바꾸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 정상화는 이제 성평등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평등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거꾸로 정치개혁이 되지 않았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여줘야 하지 않나. 성평등을 이루는 것은 여성에게만 좋은 정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 발전을 이끄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여성 정책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성평등 보이스 단장으로 참여했다.

-성평등은 젠더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사실 남성이 여성 문제에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성평등 문제에 남성들이 동참하지 않으면 힘들어질 수 있다. 유엔에서는 ‘HE FOR SHE’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참여가 나비효과를 가져왔으면 한다. 작은 몸짓이 대한민국 전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액션프로그램이다. 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現 김형준 명지대학교 교수
1957년 출생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 계량정치학 박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정치학회 이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한국선거학회 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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