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北關) - 함주시초(咸州詩抄) 1

[박미산의 맛있는 시읽기]

서울디지털대학 박미산 교수 2018.03.23 16:2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그림=원은희 제공
- 백석 

명태(明太)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비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 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음식은 곧 어머니의 맛이다. 어머니의 맛이란 대대로 물려준 조상의 맛이고 문화이기도 하다.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때우는 기능을 넘어 조상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시인은 북관 지방을 여행하면서 시 ‘북관’을 썼다. 북관 지방은 함경남도와 평안북도 일대인데 ‘함주시초’라는 부제를 보아 함경남도 함주를 말한다.
 
그는 창난젓에 막 칼질한 무를 고춧가루에 비벼 익힌 섞박지를 먹으며 ‘여진의 살냄새’와 ‘신라 백성의 향수’를 생각한다. 함경도가 한때는 여진의 땅이었고, 또 한때는 신라의 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시큼하고 퀴퀴한 음식을 통해서 그 나라의 향수를 감지해낸다. 여진과 신라가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시인은 그 나라의 흔적이 면면히 내려오는 음식을 통해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백석 시인이 살던 시기는 일제 식민지 시대였다. 

조국을 상실하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 떠도는 그에게 음식은 어머니의 맛이자 바로 조국을 의미한다. 얼큰하고 비릿하고 구릿한 이 맛 속엔 우리의 조국이 담겨 있다. 

따라서 그는 음식 앞에 저절로 무릎을 꿇고 그것을 음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늘 창난젓으로 섞박지를 칼칼하게 담가봐야겠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백석을 생각하면서.

박미산 교수
서울디지털대학 초빙교수 
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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