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s, 인공지능, 그리고 국가안보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 2018.03.19 17:4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디지털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이 경구는 넷스케이프(Netscape) 창립자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이 2011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제목이다. ICTs(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는 “정보를 처리하고, 인간 행위자 간, 인간과 전자시스템 또는 전자시스템끼리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디지털 최선진국인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 정책 결정이나 국민 여론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은 누구나 실감하고 있다. 지하철 승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신처럼 모시며, 검색하고 대화하며,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익숙한 정경이 된 지 오래다.

이 같은 ICTs의 확산 현상을 국제정치와 안보의 수준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또 다른 흥미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역사적으로 기술의 발전은 국방이나 노동시장 등 여러 분야에 긍정·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는데, ICTs 역시 테러, 급진주의, 범죄와 같은 파괴적 목적에 이용될 여지 못지않게, 행위자 간 정보의 이용성을 높이고, 갈등적 이슈나 사회구조의 변용에 기여하며 위기 방지와 조기경보라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1992년 4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벌어진 국제적인 무력충돌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분쟁 당시(이 전쟁 여파로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었으며, 11만여 명이 사망)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양측 간의 갈등적 태도, 행동 그리고 이슈를 변용하는 데 기여한 것이 그 한 예다.
반면에 1983년 7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장기내전(스리랑카군과 타밀일람 해방호랑이, 양측 합계 5만여 명 사망)을 겪은 스리랑카는 내전에서 승리한 정부진영이 소셜미디어를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낙인 찍고 통제를 강화했다. 라자팍사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질병(disease)’이라고 비난했을 정도다,

ICTs가 이같이 개인 간의 소통 차원을 넘어 국제정치와 국가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AI 즉 인공지능의 발전은 국가안보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의 창을 동시에 열어주고 있다. AI에 기반을 둔 ‘무인자동화 기술’은 적의 방공망 및 탄도미사일 사거리 내에서 인명 피해가 없고 비교적 손실이 적은 작전을 가능하게 하며, 인간의 판단 필요성을 최소화하여 공방 양자가 모두 ‘장거리 정밀 타격’이 가능한 전자공간에서 ‘결심 속도의 우위’를 제공할 수 있다. ‘결심 속도의 우위’란 전쟁에서 ‘시간의 경쟁우위’를 의미한다. 과거의 전쟁은 ‘거리의 경쟁’을 기반으로 했으나, 현대전에서는 전쟁 개시와 더불어 상대방보다 빨리 결심해서 타격하여 상대 전력을 조기에 마비시키는 일이 승리의 핵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자동으로 전 세계 방대한 수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바이러스를 한꺼번에 보낼 수 도 있다. 감염된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시스템 파괴가 가능하다. 특정 조직의 시스템 결함을 조사하거나 금전 탈취를 위한 표적을 찾을 수도 있다. AI는 딥러닝(심층학습)으로 공격기술과 수법을 스스로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는데, 이미 중국과 러시아 등이 이런 기술을 확보했다. 

중국은 한발 더 나아가 핵잠수함에 AI를 동원하여 인간 지휘관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한다. 핵잠수함에 적용되는 컴퓨터는 민간 기업 등에서 사용하는 첨단 컴퓨터에 한참 뒤진다. 이는 잠수함의 특성에 기인한다. 잠수함은 전투 발발 시 초래되는 충격과 열, 전자기 방해 등에 대해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emotion)이 없는 AI는 잠수함 지휘관의 약점 보완도 가능하다. 잠수함 함장은 수개월간 깊은 바다에 있으면서 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 

이는 지휘관뿐만 아니라 승조원들에게도 스트레스를 유발하여 전투의 결정적 순간에 오판과 실책으로 연결될 우려도 크다. 그래서 잠수함의 능력은 스트레스 관리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미국은 경쟁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최첨단 기술국이란 이점을 바탕으로, AI를 이용한 응용기술이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대응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AI와 국가안보’라는 전략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국의 우월한 기술적 리더십 유지 △평화적이고 상업적 이용 지원 △재앙적 위험 완화 등 3가지를 기본 목표로 설정했다. 

AI의 딥러닝 기술을 적용하면 위성사진 분석과 사이버 방위와 같은 노동집약적 업무에 대해서는 자동화의 물결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국가안보와 연관된 기술인 핵무기·항공분야·컴퓨터·바이오테크 분야를 뒤바꿔 놓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는 전략, 전쟁을 위한 기구, 우선순위 등에 의미 있는 변화를 유발하고, 안보기관의 자원 배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군사적, 정보적, 경제적 우위성’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한다. 

‘군사적 우위성’의 경우, AI-enabled 기술(예, 장거리 드론 배달)은 비국가 행위자(테러집단 등)에게 장거리 정밀 타격 능력을 제고시킬 것을 염려한다. ‘정보우위성’의 경우,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 그리고 데이터 창조능력을 향상시킬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 AI-generated forgeries(AI가 양산하는 거짓말)가 증가되어 신뢰 기반을 흔들 수 있음도 걱정한다. ‘경제적 우위성’은 AI가 4차 산업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인구 규모가 국력 잣대 중의 하나였으나, 향후에는 소국도 AI 기술을 가지면 강대국과 맞설 능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한다. 

이런 예측 하에서 미국은 AI에 초점을 맞춘 워 게임에 착수하고 AI 연구지원금을 늘리며, “AI 대응능력counter-AI” 배양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동시에 AI가 가져올 재앙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방부와 정보공동체 중심으로 ‘AI 안전조직’을 세우고, NSA(국가안보국, 감청전문기관) 주축으로 AI가 양산하는 거짓정보에 대응하기 위한 기반기술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하루 9만 개 이상의 페이스북 포스트를 분석하여 IS의 테러 위협을 예측하고 있다. 전투원과 기계의 협업적 의사결정 방법도 개발하고 있다. AI와 무인자율체계 기술도 접목한다. 예컨대 무인 잠수정을 통해 식별된 표적 분석을 이지스함의 전투체계와 연동함으로써 지휘관 또는 전투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일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위원회가 출범하여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방 차원에서도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방위산업’ 육성을 위해 첨단무기의 전략적 기술 기획과 연구개발에 진력하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우려되는 점은 혁신에는 군이나 안보정보기관이 결코 앞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직 특유의 보수성 때문에 사안이 터지고 나서야 허겁지겁 뒤따라간 것이 지금까지의 행태였다. AI가 중심이 된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시각과 방식의 군사혁신, 정보혁신 그리고 안보체제 혁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미래의 변화를 내다보는 천리안적 혜안이 절실하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이라도 조직과 그 성원이 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지 못한다면 기대했던 성과를 얻기 어렵다. 19세기 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전쟁 당시 철도 기술과 우편 같은 당시의 첨단기술을 경시했던 오스트리아가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에 패배하고 유럽의 패권을 넘겨준 교훈은 오늘날에도 절실하고 유효하다.

이일환 교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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