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우 무등산체험영농조합 대표, “쌀값 상승 아닌 회복, 물가주범 아냐”

[농어촌은 지금, Jump-up] 술이나 음료, 과자에 국산쌀 활용하도록 하는 지원정책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03.09 14:3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간척지논 /사진=가현정 제공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일곱 번째 주인공은 무등산체험영농조합 김명우 대표다. 반짝 추위로 봄의 길목을 막아서고 있는 동장군(冬將軍)의 기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1812년 나폴레옹의 60만 대군을 무찌른 러시아의 동장군을 이겨낸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추위도 잊은 채 한걸음에 그를 만나러 갔다. 무등산체험영농조합 법인을 이끄는 김 대표를 취재하는 내내, 주위에 따뜻한 봄기운이 가득 퍼짐을 느낄 수 있었다. 쌀 소비 저하와 지속적인 쌀값 폭락으로 벼농사를 점점 줄이는 추세에 김 대표는 오히려 비중을 더 늘릴 것이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나폴레옹의 변명1)이 와전되어 만들어진 동장군이라는 허상의 기세에 눌려 제대로 봄을 맞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봄의 전령사와 같은 김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한민국 농업에도 드디어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떠올랐던 그를 닮은 한 편의 시를 소개한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 정호승-
봄의전령사 복수초 /사진=가현정 제공
-김명우 대표 소개 부탁합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4대 독자였기에 큰 어려움 없이 성장했고, 결혼도 일찍 해서 자녀들 모두 장성했습니다. 각자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안정적인 삶을 꾸리며 잘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저의 끊임없는 도전과 창조를 보면서 4대 독자로 귀하게 자라온 사실을 알고 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전과 창조는 결핍에서 온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만, 풍부하게 넘쳐날 때 귀한 줄 모르고 이렇게도 사용해보고 저렇게도 사용하다 보면 다양한 궁리들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쌀 귀한 줄 모르고 자라서인지 일찌감치 쌀이 주식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주식으로서의 쌀이 그 지위를 잃은 지 오래인데 여전히 쌀 소비를 아침밥 먹기 운동이나 집밥 먹기 같은 것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합니다. 이제는 쌀 한 톨이 귀하던 시대가 아님을, 쌀을 아끼지 말고 마음껏 먹어야 하는 시대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벼농사의 비중을 늘리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며칠 전 장을 보러 나갔다가 쌀값이 비싸졌다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2017년에 쌀값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워낙 계속 하락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상승한 게 결코 아닙니다. 쌀값 상승 때문에 벼농사의 비중을 늘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은 대한민국 농업의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 탓입니다. 제가 농사지은 쌀은 전량 ‘뻥튀기 과자’의 원료로 사용합니다. 나락으로 판매할 때도 언제나 최고가를 받았지만 과자로 가공하여 판매하는 수익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밥맛이 좋다고 우리 집 쌀만 고집하시던 고객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벼농사 경작 면적을 넓히더라도 계속해서 과자의 생산원료로만 사용할 생각입니다.

무등산체험영농조합 법인 김명우 대표(가운데) /사진=가현정 제공
-쌀값 ‘상승’이 아닌 쌀값 ‘회복’이 맞는 표현입니다
▶요즘 들어 나오는 뉴스를 들으면 쌀값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양 호도되고 있어 속상합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 장관이 올해 쌀값 목표를 17만5000~18만원으로 제시했고, 농식품부 스스로 최근의 쌀값 상승을 ‘주요 농정 성과’로 홍보해왔습니다. 게다가 ‘상승이 아닌 회복’이라고 강조해온 농식품부는 쌀값이 급등하지 않는 이상 정부 쌀을 방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산지 쌀값이 오르긴 했지만 쌀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는 5.2에 불과합니다. 한 가구가 1000원어치 소비지출을 할 때 쌀 구매에 드는 돈은 고작 5.2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언론에서도 지나치게 사실과 거리가 먼 ‘폭등’ 이나 ‘상승’이라는 표현을 자제해주었으면 합니다.

-소비자들은 통계적인 수치보다 체감 물가에 민감하거든요
▶지역 농협에서 오랫동안 이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자꾸만 통계나 객관적인 자료 등을 중심으로 설명하게 됩니다. 상승한 쌀값이 결코 비싼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 가장 쉬운 상황을 말씀드릴까요. 간척지 사업이라고 들어 보셨을 겁니다. 예전에는 쌀이 곧 돈이었기 때문에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바다를 메워 육지로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공사비가 들어가겠습니까. 그런데도 간척지를 만들어 벼농사를 지으려 했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지금 소폭 상승했다 하더라도 쌀값 회복은 아직 멀었습니다.

뻥튀기 옆 쌀자루 /사진=가현정 제공
-바다가 육지라면, 그때 그 시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 정책에 의존하는 쌀값의 회복만을 바라보며 농사를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국산 쌀 소비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방식으로는 반짝 효과만 볼뿐 지속적인 쌀 소비 증가를 이뤄낼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에게는 아침밥을 안 먹는 것이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이론도 나오고 있는 시대에 ‘아침밥 먹기 운동’이라는 방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 대신 쌀을 주원료로 하는 술이나 음료, 과자 등에 국산 쌀을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밀가루 과자보다는 쌀 과자가 더 좋다는 인식이 있어 쌀 과자 소비가 늘어가는 현상은 참 고무적입니다. 그런데 막상 시판되는 과자를 집어 들면 대부분이 수입 쌀을 원료로 만들었다고 표시돼 있습니다.

-쌀은 주식이 아닌 간식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 합니다
▶실제로 쌀로 만든 간식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찾아보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쌀은 주식이라는 생각에 매여 있습니다. 쌀은 주식이 아니라 간식이라는 인식 전환이 가장 시급합니다. 인식하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의 결과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와 과자에 쌀을 함유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이들이 많이 먹고 좋아하는 떡볶이만 하더라도 이제는 밀가루 떡볶이보다 쌀 떡볶이가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산 쌀로 만든 떡볶이 떡은 상상조차 못 하는 실정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가격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용돈으로 사 먹는 대표 간식인데, 가격을 비싸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값싼 재료를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판매자나 소비자 개인에게 국산 쌀을 애용하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 쌀값을 조정하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말고, 국산 쌀 떡볶이의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책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면 모두 웃을 겁니다.

-국산 쌀을 원료로 만든 제품임에도 가격이 싼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산 쌀을 원료로 하는 단순 가공품만이라도 충분히 가격을 쉽게 안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드는 100% 국산 쌀로만 만든 뻥튀기 과자의 가격을 알고 나면 다들 놀라곤 합니다. 아무런 첨가제 없이 쌀로만 만들었는데도 이렇게 맛있느냐면서 놀라고, 그다음에는 가격에 두 번 놀라죠. 싼 가격과 달콤한 맛에 100% 쌀로만 만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지금은 아예 매장 판매대 옆에 쌀자루와 뻥튀기 기계를 두고 생산하는 것을 직접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그 어떤 수입 쌀 과자 제품도 가격을 두고 경쟁한다면 제가 만들어 판매하는 쌀 과자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제가 직접 농사지은 쌀을 원료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생산자가 가공까지 겸하기 때문에 중간 마진을 더 줄일 수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농가의 가공품에 대해선 규제 완화가 중요합니다.

-국산 쌀 가공과 관련해서 규제가 아닌 지원이 필요합니다
▶국산 쌀 가공과 관련해서는 규제가 아닌 지원이 필요함에도 최근에 발표한 정부의 ‘식품안전개선 종합대책’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농축산물에 대해 ‘진흥에서 안전으로’라는 기본 방침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원과 육성에서 규제 강화로 방향을 바꾸겠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세부 내용을 보면 GAP와 축수산물 HACCP 관리, 학교급식, 원산지표시, 잔류농약과 동물 약품에 이르기까지 농식품부 소관 업무를 식약처로 대거 이관해오려고 관계 법령 개정 계획까지 치밀합니다. 식약처는 농축산업에 관여하는 기관 중 가장 규제에 특화된 기관인데, 이렇게 되면 농축산업 생산과 가공 전반에 큰 규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갖고 농축산업 생산 전반을 지배하려 하는 모양새라는 지적도 많습니다. 농업 분야 비전문기관인데다 규제업무 특화기관인 식약처가 농업생산 관리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농업계의 현실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농식품부에 ‘식품안전청’을 신설해 식품안전관리 업무를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이나 되는 프랑스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했으나 러시아 군대는 별 저항을 하지 않았고, 나폴레옹 군대는 쉽게 모스크바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도시는 텅 비어 있고 러시아 황제는 항복은커녕 보이지도 않자 추위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한 나폴레옹 군대는 결국 후퇴를 했다. 그런데 그해 겨울은 다른 해보다 따뜻했고, 그 유명한 러시아의 추위는 막판에야 몰려왔음에도 나폴레옹은 추위 때문에 진 거라고 둘러댔고, 병사들도 막판에 겪은 추위 이야기를 생생하게 주변에 전하다 보니 추위가 후퇴의 원인인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일로 러시아의 추위를 대단하다 생각했고, 나폴레옹 군대마저 물리친 ‘동장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가현정 객원기자 gana05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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