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 “동물권 운동, 그만하는 세상 왔으면”

인간위주 세상에서 사회적 최약자를 위한 운동으로 바라봐 주길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 2018.03.15 10:42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함께 더불어 사는 시대. 상생을 위해서는 서로 발 맞추고 나누는 따뜻한 마음의 이웃이 필요하다. 빡빡한 세상에도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18년 새로 시작하는 ‘이 시대의 숨은 리더를 만나다’에서는 나눔과 희생으로 주변을 밝히는 리더를 만나본다. / 편집자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사진=더리더
최근 고양시의 한 PC방 업주가 상습적으로 동물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고양이의 목을 졸라 기절시키고,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로 발로 밟는 등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가했다. 동물권단체는 고발했고, 법원은 PC방 업주에게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구약식 벌금 700만원을 판결했다.

벌금 700만원은 국내 ‘동물권’ 역사상 최고액의 벌금 판결이다. 일부 동물권 단체는 이를 두고 과거 학대나 방치로 인한 심각한 사건에 가벼운 처벌을 받았던 것을 언급하며 사법부의 동물권 인식이 한 단계 올라왔다는 반응이다.
반려동물이라는 한층 더 친숙해진 이름으로 천 만 시대를 맞아 ‘동물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양지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사회 약자를 위해 일하는 많은 사람 중에도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동물권 운동.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구조활동을 하고 있는 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는 동물권이라는 말조차 생소했던 시기부터 외침을 계속해왔다. ‘사람부터’라는 명분에 외면당했던 동물들의 권리가 박 대표에게는 처음부터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시대의 숨은 리더 코너 주인공으로 만난 그는 눈빛이 따뜻했다. 언제까지 동물권 운동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정말 그만하고 싶다”고 바로 답한다. 그가 꿈 꾸는 세상이다.

-이 시대의 숨은 리더로 선정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동물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도 어떤 리더라고 생각해 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된 것 같아서 기쁘다. 내가 이런 리더로서의 자격이 있나 스스로 되물어보게 된다. 남보다 앞서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선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한다.”

-동물권을 주장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동물을 너무 좋아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잠이 많은 아이였는데 ‘TV에 동물 나온다’ 하면 깰 정도였다. 어른들이 처음에 사주는 게 동물 인형이고, 동물로 의인화된 동화책을 보면서 동물은 사람과 모습만 다르지 똑같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면서도 고기는 정말 잘 먹었다. 고기가 어떻게 밥상에 오르는지는 잘 몰랐다.
어느 날 엄마가 학교에 바래다 주는 길에 정육점 앞을 지나다 천장에 매달린 고기에 다리가 붙은 모습을 봤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았던 게 생각난다. 그때 통곡하면서 ‘어른이 되면 너희들을 도와줄게’ 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고기를 못 먹었고, 이후로는 굉장히 괴로웠다. 동물을 보면 좋기만 했던 마음이 소에는 왜 코뚜레가 뚫렸을까, 소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고통스러웠다. 휴가철에 땡볕에 묶어 놓은 개들이 안쓰러워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중학교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다가 해외에서 멋있게 동물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됐다.”

-동물권단체 케어를 만들기 이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
▶“뮤지컬 배우 활동을 9년간 했다. 난타 초창기 멤버였고 마지막 작품도 난타였다.
우연히 명동을 지나다 개고기 사진이 붙은 피켓을 걸고 서명을 촉구하는 사람을 봤다. 서명을 하고는 이끌리듯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그 후 계속 생각나 전화를 했다. ‘왜 혼자서 이런 일을 하세요’ 라고 물으니 함께 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라고 답하더라.

그때부터 자원봉사에 뛰어들었다. 사설 보호소의 실태를 파악하러 다니고 동물들을 구조하다 보니 이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이것만 끝나면 음악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땐 관련법도 없고, 후원금도 전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발로 뛰느라 되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젊은 나이에 동물권 운동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두렵지 않았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선택했지만 동물들의 비참한 상황을 제일 먼저 봐야 했기에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일하다 지쳐 잠드는 생활을 반복했다. 직원도 없고 한두 명이 구조부터 홍보, 입양까지 모든 일을 하느라 잠도 아껴가며 살았다.
‘왜 이렇게 힘들게 지내야 하나’ 이런 생각보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내 성격처럼 ‘내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경험을 하나’ 싶었다. 내 고통보다 동물이 처한 상황이 비교할 수가 없어서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후원 없이 계속 일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맞다. 1000원이 없어서 김밥을 못 사먹기도 하고 추운 겨울 차에서 자기도 하는 등 거의 8년을 무급으로 4시간씩 자며 버텼다. 되돌아보면 병적으로 일했다. 잠시 스트레스를 풀고자 영화를 보는 순간에도 죄책감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육체적인 고통은 컸지만 동물들이 조금씩 나은 환경으로 옮겨갈 때 뿌듯함이 컸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니라 동물을 대하는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며 힘든 것이 상쇄됐다.
사실 정말 힘든 건 동물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었다.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한 루머를 만들어 내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힘든 고비가 있었다.
지금은 잘 극복했고, 동물권단체 케어를 2002년 설립해 조직적으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4년에는 포천에 보호소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충정로에 사무실을 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케어는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의 고유한 존엄성을 확립하기 위해 적극적인 실천력으로 실태를 정확하게 우리 사회에 알리고, 이 여론을 바탕으로 제도를 개선해 나가는 데 가장 주력하고 있다. 동물들을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오용, 남용, 과용하고 그것을 방치하는 모든 인간 위주의 권력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성숙하고 인도적인 시민의식을 새롭게 형성해 나가고 있다.

유기, 학대, 모피 등 전체 동물 대상으로 동물구호활동을 전국에서 제일 활발하게 하는 시민단체다. 조금씩 단체가 발전할 때마다 사무실보다는 보호소를 먼저 만들고, 번듯한 홈페이지를 만들기보다 입양센터를 먼저 세우는 등 동물들의 고통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써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사진=더리더

-박 대표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실 결혼을 못할 줄 알았다. 완전한 비건(채식주의자)이라 공통점이 없으면 사람 만나기 어려운 데다 여자가 동물운동을 하니까 최악의 며느리 감이었다. 당연히 부모님도 선보라는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우연히 개고기 전국 실태조사를 하다가 마음이 맞는 미국인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내가 1971년생인데 2012년 말에 결혼했고, 아이를 44세에 낳았다. 지금은 42개월 된 아이가 있다. 말도 빠르고 고집 센 말괄량이 딸이다. 나이 많은 엄마라 체력이 달린다.(웃음)
가족 모두 비건이고 분유랑 이유식도 맞춰서 하고 있다. 알레르기나 아토피도 없고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아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일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
▶“동물보호법 첫 개정의 단초를 마련했던 2006년 ‘장수동 개 지옥사건’이 기억난다. 인천의 한 개 농장에서 잔인하게 방치된 채로 100마리가 남아 매일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법도 없어 뺏어 올 수 없고, 구할 명분도 없는 상황이었다. 50마리는 주인을 설득했고 나머지 50마리는 무단으로 훔치다시피 구출했다. 우리는 구했다지만 사실 절도였다. 절도죄를 무릅쓰고 활동가들이 야밤에 데리고 와서 광화문에 모였다.

동물보호법의 문제점을 알리며 피난권이나 압수권 중 어떤 것이라도 달라고 외쳤다. 그 사건으로 법의 사각지대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동물보호법이 개정됐다. 20만원이던 벌금이 500만원으로 올랐고 동물에게 피난권이 주어졌으며 동물보호 감시관제도가 도입되는 등 많은 변화를 이끌어냈다. 15년 만에 동물보호법 개정을 이뤄냈다.
또 학대당한 말을 구조하면서 꽃마차로 이용되는 오락동물들의 학대를 알리고, 인조모피 패션쇼를 통해 모피 대체 패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자면 어떤 것이 있나
▶“구제역 생매장 돼지들의 절규를 영상에 담았던 게 기억난다. 구제역이 한창이었으니 출입이 쉽지 않았던 곳까지 산속의 눈밭을 헤치고 찾아내 영상을 찍었다. 실제 상황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일 잔인한 3D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초등학교 정도의 크기에 돼지들을 가득 쌓아 생매장을 하는데 찍다가 통곡을 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와서도 한 달간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효과적으로 퍼뜨릴 방법을 고민하고 전체 종교단체와 연대해 천도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 자리에서 영상을 상영했는데 전 세계로 5분 만에 퍼지면서 그 해에 가장 많이 본 동영상이 되기도 했다.”

-이 일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정말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이 시대의 리더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일깨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사람이 리더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전체 생명에 확산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진보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2018년 계획은
▶“올해 우리는 2018년을 개 식용 종식 원년의 해로 정하고 집중하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캠페인을 펼쳤고, 폐막식에도 간다. 개고기는 이제 끝났다고 보고 그 시기를 앞당기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본다. 개고기를 유통하는 사람들이 이제 보상받고 끝낼 수 있는 시기라고 보고 총력을 다하고 있다.”

-정부에 당부할 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고유의 훌륭한 문화와 좋은 음식들이 많고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요소들이 많다. 소수가 먹는 개고기로 인해 국가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또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이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지 않는 음식이라면 이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됐다. 개고기 위생관리 합법화는 15년 전 일이고 이미 어렵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다. 언젠간 없앨 생각이라면 이번 정권이 결단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동물운동의 영역을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지 말고 사회 약자를 돕는 운동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인간 위주의 세상에선 동물이 최약자다.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 동물에 대한 학대나 폭력적인 행동은 동물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발전되면서 사람한테도 발현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폭력이다. 사회 안에서 동물권에 대해 같이 고민해 줬으면 좋겠다. 이 세상은 모두 연결돼 있다. 동물의 집단전염병이 살처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처분된 땅의 환경이 파괴되고 거기서 자란 음식과 물을 또 사람이 마시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現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
1971년 출생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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