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죄, 우리의 죄

안민호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대 안민호 교수 2018.03.06 15:3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달포 전만 해도 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감옥까지는 가겠나 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올림픽도 있고, 나라 잔치 후에 험한 일이 부담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니 잘못된 판단이었다. MB는 곧 검찰에 불려 나오고, 아마도 기소될 것이다. 그리고 법의 심판대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MB가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시중의 장삼이사들이 보기에도 그는 욕심 많고 거짓말을 쉽게 하는 인물이었다. 내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주위 사람들도 사석에서는 도곡동 땅이나 다스가 MB의 것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부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히 그의 것이고, 다 그런 것인데 그게 뭐 그리 문제냐 하는 정도였다. 내외가 살 집 한 채만 남기고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태연히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렇다. 대통령 말에 신뢰가 없으면 리더십도 없다. 그것이 상식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았다.

MB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현실적 계산 때문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MB가 그런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직에 도전했을 즈음부터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스스로 밝히는 동영상을 앞에 놓고도 주어가 없다며 그의 거짓을 덮었다. 당연히 그가 훌륭해서도 아니고, 그를 존경해서도 아니었다. 현실적인 계산이었다.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은 그가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줄지 모른다는 우리 스스로의 지극히 현실적 계산 때문이었다. 욕심과 거짓,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출세 지향은 도리어 그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고 우리의 허튼 기대를 충족시키는 요소들이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MB는 우리를 속이지 않았다. 아니 속이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속은 사람은 없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득이 될 것 같아 그랬을 뿐이다. 그래서 큰 배신감도 없다. 있다면 기대만큼 부자로 만들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지 쓰라린 배신감은 아니다. 그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다른 점이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MB
사실 MB는 우리네 보통사람 같은 이미지가 있다. 금수저도 아니고, 서울대 출신도 아니다. 어렵게 공부하고 힘들게 직장 생활하는 우리네 모습과 그 출발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도덕적 근엄함도 없고, 지성적 까칠함도 없다. 좋은 게 좋고, 적당히 가식적이고 적당히 문화적이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행동은 엉터리고 돈에는 양보가 없다. 우리가 감추고 싶은 속물성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우리보다 크게 잘날 바 없어 보이는 그가 재벌처럼 돈도 많이 벌고, 서울시장도 되고, 대통령까지 된 것이다. 그이처럼 되고 싶었다.

우리 세속적 욕망의 화신, 아이돌과도 같은 그를 감옥에 보낼 수 있을까? 그러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MB는 특별히 악한 인물이 아니었다.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많은 이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랬다. 경박했지만 그만큼 인간다워 보이기도 했다. MB에게 대통령직은 사익을 위한 비즈니스였다고 흥분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도의 차이이지 공적 직책을 사적 이익에 이용하는, 공사가 분명하지 않은 이들은 우리 주위에 차고도 넘친다. 경험적으로 보면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을수록, 깨끗한 척할수록 더 그렇다. 이것이 보수, 진보 같은 특정 정파나 별난 개인만의 문제라고 인식한다면 현실을 잘 모르는 소치다. 대개는 그렇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특별한 소수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중대한 혐의가 하나둘이 아니다. 서로 연관된 혐의도 있고, 전혀 별개의 것들도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혐의가 공개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고 다양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중 일부만 사실일지라도 사법적 단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라서 봐줄 수 있는 수준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 전직 대통령이기에 더 엄격히 다루게 될 것이다. MB를 옹호 또는 보호하려는 목소리도 매우 미약하다. 그에게 투표했던 보통사람들은 물론이고 뿌리가 같은 보수 야당들도 적극적으로 반발하지 않는다. 측근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이미 버린 카드처럼 보인다. 결국 MB는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놀라울 것이다.

결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도 도덕적 잣대는 높은 사회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우리 사회의 속살이 MB를 정죄할 만큼 깨끗하지 않다고만 생각했지, 겉으로는 누구보다도 높은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결코 도덕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잣대만큼은 높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우리 사회의 특성이다. 높은 도덕적 잣대의 용도는 자기 행동의 준칙이 아니라 이른바 ‘마녀사냥’이다. 마녀사냥은 공동체의 단합과 유지를 위한 오래된 사회적 제례다. 우리 내면의 어둡고 악한 측면을 투사해 특정인을 악마화하고 희생으로 삼아 정죄함으로써 남은 자신들의 죄를 세탁하려는 의식이다. 흠이 많고 숨길 게 많으면 많을수록, 없으면 없을수록 적극적으로 마녀사냥이라는 집단적 공모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의 단합으로 승화된다. 모두가 죄를 지었다고 그 모두를 처벌할 수는 없다. 처벌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마녀가 필요하다. MB가 결백한 순결의 희생자가 아니기에 전형적 마녀사냥은 아니지만, 그와 우리를 분리하고 세상에 없는 악인이 된 그에게 소리 높여 죄를 묻는 우리의 모습은 분명 마녀사냥의 느낌을 갖게 한다. 

마녀사냥으로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지 못해
그래서 마음이 무겁다. 마녀사냥으로는 공동체를 개혁하지 못한다. 도리어 개선되어야 할 문제를 감추고 희석한다. MB를 변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치보복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문재인 정부가 치밀하게 기획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더 근원적이고 구조적이다. 소수의 악마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다, 마녀사냥은 2009년에도 있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때와 판박이다. 전혀 다른 정부와 대통령인데도 방식은 똑같다. 검찰은 혐의 사실을 실시간으로 흘리고 언론은 엄청난 특종인 것처럼 양념하고 포장해 대중에게 전달한다. 민심의 재판정에 세워진 혐의자는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난도질당한다. 대중은 분노하고 정치인들은 위대한 국민이라며 아부한다. 

이래서는 미래가 없다. 우리는 마녀사냥의 공범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했던 대로 MB에게 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MB는 다르다. 우리는 문 대통령이 탐욕스럽지 않고, 선한 인품의 소유자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검찰이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언론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기(公器)로 거듭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적폐 청산에 앞장서는 그들이, 또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남에게 떠넘기는 것은 아닌지, 경쟁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공의를 외치고 속으로는 이권을 탐하는 속물이 아닌지 저어해야 한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이것이 바로 적폐의 본산이다. 그것을 바꾸지 못하면, 비극은 반복된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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