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뜨거운남도의겨울바다맛, 매생이굴국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 2018.02.04 07:5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어제저녁퇴근후후배들과간단히한잔한다는게조금과했다싶었는지, 아침에일어나니숙취로머리가조금아프네요. 쯧쯧, 잔소리하던아내가속을달래라며김이폴폴나는매생이굴국을끓여줍니다. 해장과보양을한번에할수있는, 제가제일좋아하는해장국, 매생이굴국입니다. 이음식은사시사철먹기어렵고추운겨울에만먹을수있어서더귀하게느껴집니다. 참기름에살짝볶은생굴을다시마육수에넣고끓이다가, 펄펄물이끓어오를때매생이를넣으면매생이굴국완성입니다. 숟가락으로살짝저어보면, 짙은초록색매생이가비단올풀리듯이스르르풀어집니다. 바다에서갓따온듯한이짙은초록색이마치바다가그릇에담긴것같습니다.

한수저떠먹어봅니다. 곱게빗은처녀머릿결같이풀어진매생이, 한올한올가늘게풀려입안을돌아다니는미묘한질감, 뜨거운데도시원하고자극적이지않은, 속을편안하게해주는담담한감미입니다. 착한감칠맛이라고할까요, 후후불면서국물을들이키면, 어제고생한속이매생이처럼풀어지는것같습니다. 뱃속뿐만아니라마음까지행복해집니다. 편하고착한느낌의바다가입안에가득밀려들어옵니다. 여기에사르륵씹히는굴, 굴이가진풍부하고탱글탱글하며비릿한이맛과향기. 바다수산물을특히좋아하는저는, 이보다더바다스러운음식을알지못합니다.

요사이매생이는 ‘바다의귀족’이라고도불린다고합니다. 물이맑고청정한곳에서만서식하는대표적인무공해식품이라서요. 매생이는한랭성바다이끼종류여서아주추운겨울, 바다온도가영하로떨어지는 1~2월에만잠깐나옵니다. 바다가오염되면희한하게잘자라던매생이도녹아버린다고합니다. 특히조류가완만하고물이잘드나드는전남의장흥, 강진, 완도, 고흥지역에서우리나라생산량의대부분이나옵니다.

매생이가원래남도음식이라는이야기입니다. 매생이는유기산에매우약해서김, 파래같은다른해조류처럼생으로무쳐먹지못하고국이나전처럼열을가해서먹는데, 그래서그런지제생각에는해조류보다는이끼와가깝게느껴집니다. 이런매생이에단백질과칼슘, 철분, 비타민이풍부한겨울철대표건강식품인굴을넣게되면최고의보양식이되는거지요. 나폴레옹이너무사랑해서매일엄청먹었다는굴을잔뜩넣어끓이는겁니다. 아, 그리고굴이질겨지는걸막으려면굴을마지막에넣어한소끔더끓여야합니다.

▲일러스트=박유하

매생이는저같이술을자주마시는사람들에게는참고마운식품입니다. 현대인들은음주와흡연으로신체가산성체질로되는경우가많은데, 매생이는강알칼리성식품으로산성화된체질을중화시켜성인병을예방하는데아주좋은효능을지니고있다고합니다. 또매생이의성분들은혈액내알코올도중성화시켜술안주로도좋답니다. 매생잇국은아스파라긴산이콩나물보다 3배나많이들어있어숙취나해장에그만이라고도하니, 우리같은애주가들이사랑하지않을수가없는음식인겁니다.

매생이는옛문헌에도많이등장하는존재감있는음식입니다. “諭全羅道觀察使金永貞曰山擇其味好者多封進(전라도관찰사김영정(金永貞)에게유시하기를 ‘맛좋은매산을가려많이봉해올리라’하였다).” 연산군일기중 1504년 3월 29일의기록입니다. 꽃샘추위도거의끝났을 3월말에특별히왕실에서매생이를찾을만큼별미였음을짐작케하는대목입니다.

남도지방에는 ‘미운사위에매생잇국준다’는속담이있습니다. 매생잇국은아무리끓여도머리카락보다가는매생이에열이갇혀서, 김이잘나지않아뜨거운줄모르고먹다가, 입안에온통화상을입기가쉽기때문이라합니다. 후후잘불어가며먹어야하지요. 옛날사위가딸에게잘해주지않으면친정어머니가말로는하기힘들고, 밉기는하고, 그래서미운사위에게매생잇국을끓여주었다는거지요. 겉으로김이나지는않지만, 매생잇국은속으로펄펄끓고있는겁니다.

매생이- 정일근
다시장가든다면목포와해남사이쯤
매생이국끓일줄아는어머니를둔
매생이처럼달고향기로운여자와살고싶다. (중략)
남쪽에서매생이국을먹어본사람은안다
차가운표정속에감추어진뜨거운진실과
그진실훌훌소리내어마시다보면
영혼과육체가함께뜨거워지는것을.
아, 나의아내도그러할것이다
뜨거워지면엉켜떨어지지않는매생이처럼
우리는한몸이되어사랑할것이다.

시인은매생이와같은여자와살고싶다고노래합니다. ‘차가워보이지만뜨거운진실을감춘, 매생이처럼달고향기로운여자’를말이지요. 오늘같이추운겨울날, 시원하게탱글탱글한통영굴넣어끓인매생잇국한그릇어떠신지요. 혹시눈이라도내려준다면, 얼마나근사한음식이될까요. 바다향기그윽한굴과, 뜨겁고열정적인매생이와, 그리고이모든음식을만들어준눈내리는겨울바다에건배.

대전고 졸업
서울대 /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KPMG 근무(한국 공인회계사)
SBS 기획팀, 제작본부 근무
SBS USA General Manager
SBS i 총괄상무
SBS USA 대표이사
2008년 SBS 연기대상 제작공로상 수상
2013년 아시아소사이어티 5주년 기념 공로상 수상(드라마를 통한 한류 확산 및 외교 기여)
前 올리브나인 미디어 대표이사
現 아우라 미디어 대표 프로듀서
現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 교수

▶본 칼럼은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jungmy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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