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출렁이는 이유

안민호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대 안민호 교수 2018.02.01 18:1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안민호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고공 행진을 하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가 출렁인다. 조사 기관에 따라 많게는 최고점 대비 20%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온다. 정부 출범 이래 최저 지지도라고 하니 정권차원에서는 위기감을 느낄만하다. 

대통령 혹은 여당(與黨) 지지도 조사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다음 네 가지 중 하나다. 첫째, 여당이 좋아서 여당을 지지하거나 둘째, 야당(野黨)이 싫어서 여당을 지지하거나, 셋째, 야당이 좋아서 야당을 지지하거나 넷째, 여당이 싫어서 야당을 지지하는 경우다. 앞의 두 가지 선택을 합한 것이 여당 또는 대통령 지지도고 뒤의 두 선택 합이 야당 지지도다. 

여론 지지도라는 것이 믿을 바 못되고 항상 변한다고는 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좋아서하는 긍정적 지지는 상대적으로 잘 변하지 않는다. 마음은 갈대가 아니다.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전략적 선택이다. 두 번째와 네 번째 유형인 경쟁세력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한 대안적, 부정적 지지가 바로 그런 전략적 선택이고 그것은 경쟁구도나 정치 상황변화 등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속성을 가진다. 

정치 환경이 안정적이고 양당제(兩黨制)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의 선택비중이 높고 그래서 여론이 상대적으로 덜 출렁인다. 반면 10년 가는 정당이 드물고 이리저리 이합집산이 빈번한 우리 정치 환경에서는 두 번째와 네 번째 유형의 지지 비중이 높다. 대상 자체가 계속 변하니 유권자들의 선택 역시 전략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지지율 하락은 결국 시간의 문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역시 첫째와 둘째 선택을 합한 것이다. 어느 쪽 비중이 더 큰지는 분명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경쟁자였던 구여권에 대한 대중의 반대와 분노가 커질수록 문재인 대통령 지지도는 높아진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렇다. 문제는 그것이 매우 유동성 높은 지지유형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유형의 지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하락 할 수밖에 없다. 여야가 교체된 상황에서 과거 여당에 대한 반대는 갈수록 의미를 잃는다. 대통령 지지도가 높아질수록 경쟁자는 더 위축되고 그럴수록 그들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도 줄어든다. 결국 시간의 문제다. 줄어드는 것을 넘어 어느 시점에, 어떤 일이 촉매가 되어 그 분노가 문재인 정부를 향할 수도 있다. 높은 기대가 큰 좌절이 될 때, 새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그렇게 된다. 이런 판단의 준거, 척도가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난 대통령 탄핵과 선거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졌던 화두(話頭), 좀 고상하게 표현하면 이른바 시대정신이라는 것들이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도 시대정신과 만나면 큰 의미로 증폭되고 변화의 전기(轉機)가 된다.

“공정한 사회, 안전한 나라”에 대한 열망

두 가지가 핵심적이다. 첫째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구성원들의 권리에 관한 사항이고 둘째는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의무에 관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것도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에 대한 열망’이라는 시대정신과 연관되어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건과 무책임한 정부, 최순실의 국정농단, 정유라 입시부정, 김기춘과 조윤선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큰 틀에서 이 두 가지 의제로 수렴한다. 생명을 경시하는 안전하지 않은 나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공정한 나라, 이게 나라냐 라고 외치는 분노한 국민들에게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맹세하고 출범했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도 공정하고 안전한 나라에 대한 약속이다.

갑작스런 남북 단일팀 구성과 연이은 화재 참사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갑작스레 추진됨으로써 우리 선수들이 입을 피해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으레 있는 비판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사실 이정도로 문제가 될지 몰랐다. 기성세대는 개인보다 국가를, 민족을, 공동체를 우선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있다. 선한 목적이 절차적 정당성 보다 중요했다. 진보 보수 모두 그렇다.
젊은이들은 달랐다. 애국심을 떠나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피해 정도가 크지 않고, 대상자가 소수라도, 그것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일이라 하더라도,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땀 흘려 노력한 개인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공정함은 목적이나 결과가 아닌 수단이고 절차적 가치다.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하나의 목적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목적은 개인마다 다르다. 구성원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절차에 동의한 것이다. 그 어떤 선한 목적이더라도 정부는 그것을 구성원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촛불 정신이다. 

잘 이해되지 않으면 2016년 여름 이화여대 시위사건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정유라 입시부정 사건의 전주(前奏)였고 촛불의 시작이었던 사건이다. 시위의 발단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단과대학 신설이었다. 정규 입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장인들을 별도로 선발하려는 특혜조치에 대한 반대였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입학한 학생들의 땀과 노력을 무시하는 일방적 행정에 대한 분노였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는 이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목적이 선하고 결과가 옳으면 공정한 경쟁과 같은 수단적 가치는 어느 정도 양보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같다. 정부 주도로 급하게 추진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같은 정책들을 보면 그렇다. 그래서 위태롭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하는 이번 정부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져간다. 우리를 비통하고 불안하게 하는 참혹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제천에서 29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포츠센터 화재가 발생한지 한 달여 만에 밀양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39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를 포함하면 수백 명이 사상한 큰 사건들이다. 이런 참사들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이해와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이런 비극적 사건이 계속되면 문재인 정부 집권 기반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적폐청산은 중요하다. 범죄를 처벌하는데 시간을 정해두고 할 것이 아니다. 예외도 있을 수도 없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정부의 시대적 책무는 적폐청산을 넘어 “공정한 사회,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적폐청산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구정권의 적폐청산을 통해 손쉽게 얻어지는 높은 지지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죄인의 모습으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모습을 국민들은 분노와 참담함을 느끼며 보고 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는 이런 감정의 반영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하고 제발 잘 해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 말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에게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크다. 대통령은 취임 연설에서 ‘위대한 국민’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위대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분명하다. 변덕스러워서 더 무섭다.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h2y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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