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시루봉 딸기영농조합 곽승만 배진영 부부, 딸기밭서 찾은 달콤한 미래 희망

“젊은이들 귀농 장려 위해선 획기적 장기 저리융자 지원을”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8.02.23 10:0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월산시루봉 딸기영농조합 곽승만 배진영 부부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여섯 번째 주인공은 월산시루봉딸기영농조합 곽승만 사무국장과 배진영 씨 부부이다. 곽승만 사무국장이 서른 즈음에 귀농하였으니 부인 배진영 씨는 그야말로 꽃다운 20대 나이에 시골에 와서 농부가 된 셈이다.
올해로 귀농 13년차를 맞이하는 부부의 표정에서 힘든 기색을 찾아볼 수 없어 내심 놀라웠다. 저성장 시대인 오늘날, 힘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지만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일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인터뷰 내내 안정감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미래 산업이자 생명 산업인 농업에서 희망을 찾는 부부를 통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임신 중인 아이가 다섯 번째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딸기밭에서 찾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본 것 같아 무척 기뻤다.
딸기의 제철이 봄에서 한겨울이 된 지 오래다. 새콤달콤한 향 가득하고 아늑한 비닐하우스 딸기밭 한가운데서 인터뷰 내내 겨울 찬바람을 잊을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사진 촬영 제의에 잘 익은 딸기처럼 붉게 물든 부끄러운 표정을 짓다가도 대한민국 농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할 때는 강단 있는 목소리였다. 농업선진국으로 가는 걸음이 한층 가벼울 수 있음을 알게 한 곽승만 배진영 부부를 달콤한 딸기 향과 함께 만나보자.

-곽승만 배진영 부부 소개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우리 부부도 남들처럼 직장을 구해 도시에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농업인으로 살아온 13년이 언제 지나갔나 싶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고,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늘 곁에 있는 지금의 행복한 생활은 도시에서 회사를 다녔다면 결코 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앞섭니다.
가정을 꾸리고도 가족 구성원들 각자 생활에 바쁜 나머지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음을 봅니다. 부부도 각각 자신의 직장에서 일하느라 바쁘고, 자녀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가야하고 밤늦게 귀가하기 일쑤니까요. 아이들을 위해서도 귀농을 선택한 것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의 행복은 아내가 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어서임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귀농 결정에 선뜻 따라나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남편이 무엇을 하든 믿고 따르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남편이 장남이었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따라 언젠가 농사를 지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죠. 다만 이렇게 빨리 농사를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차라리 젊을 때 농업에 종사하는 것이 여러모로 잘한 것 같아요.
농사는 육체노동이 필수라서 젊은 사람이 더 유리한 측면이 많거든요. 무엇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도시 보다는 자연을 가까이 하며 살아갈 수 있는 농촌 생활이 더 좋은 환경이라 생각해요.
인구가 밀집되어 살아가는 도시는 옆집 아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까지 영향을 받게 되는데, 시골은 훨씬 자유롭고 여유롭게 아이들의 적성을 고려할 수 있어요. 도시처럼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우정은 숫자가 아니니까 도시 친구들을 부러워할 이유는 없겠지요.”

-귀농을 하겠다고 제일 먼저 손을 들다
▶“아버지께서 어느 날 4남 1녀인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제안을 하나 하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사를 이어받을 사람 누구 없냐고 의향을 물어보신 거죠. 아버지가 아직 정정하신데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만, 건강하실 때 농사 노하우도 전수하고 함께 하고 싶으신 마음이시리라 이해했습니다.
제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부담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귀농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기에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5:1의 경쟁을 뚫고 선착순으로 선정이 된 거죠. 동생들은 대부분 20대 나이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농사를 짓는 것에 두려움이 더욱 컸을 테고요. 13년 전 아버지의 제안으로 아내와 함께 귀농을 결심하고 아버지 농사일을 도우면서 농사의 기초를 배웠습니다.
귀농 첫 해부터 농사에 전념한 것은 아니고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벼농사를 도와드렸습니다. 처음 귀농했을 때는 할머니도 살아계셔서 일손이 꽤 많았습니다. 벼농사만 하다가 딸기 농사를 시작한 지는 5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벼농사만 하다가 딸기 농사를 겸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평생 논에서 벼농사만 지으시는 부모님이셨기에 처음에는 벼농사 이외의 다른 농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농해서 5년 이상 시간이 지나자 대한민국 미래 농업에 대한 예측과 전망을 할 실력이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을 생각해볼 때 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고, 정부에서 아무리 지원을 해준다한들 쌀값의 폭락은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요가 없는데 공급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을 개간하여 다른 작물을 재배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엇이 좋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수입 농산물의 영향을 덜 받고, 시설비도 많이 들지 않아야 하며, 우리 가족의 인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농사가 무얼까 생각했습니다.
한 겨울에 일이 없는 벼농사와 함께 병행할 수 있는 딸기 농사가 제격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의 인력으로 해낼 수 있는 범위로 3개 동의 비닐하우스 딸기 밭을 조성했습니다. 대규모로 농사 짓다보면 상승하는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를 봤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족농 규모를 고집했습니다.”

-딸기가 정말 크고 맛있어요. 특별한 농사 비법을 공개해주세요
▶“주변에 딸기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토경재배를 할 것이냐 수경재배를 할 것이냐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렇지만 농사의 기본은 어떤 환경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토경재배를 하고 있지만 각자의 형편에 맞게 선택을 하면 됩니다. 농사의 기본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성실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첨단 설비시설과 효과 좋은 약제를 활용하여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님을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제 곧 다섯 아이의 부모가 되지만, 자식을 농사에 비유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양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듯 농작물을 그저 소득원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마치 자식처럼 대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딸기는 간식으로 먹는 과채류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맛이 중요합니다. 크고 빛깔이 고운 딸기여도 맛이 없으면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농사지었는가는 오직 딸기의 맛과 향으로 평가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고 맛있는 딸기를 수확하겠다는 생각에 비싼 영양제를 과도하게 시비하면 오히려 문제가 됩니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딸기 농사에 꼭 들어맞는 말입니다. 조금 부족한 듯 영양을 주어야 딸기가 열심히 영양성분을 흡수하면서 알차게 성장하는 법입니다. 자녀에게도 지나친 관심과 애정은 좋지 않은 결과를 내듯이 딸기 농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벌을 통한 수정은 딸기 맛을 좋게 하기 때문에 필수입니다.
겨울에는 벌이 없기 때문에 비닐하우스 안에 벌통을 놓아두어야 합니다. 맛있는 딸기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 부부가 쉬지 않고 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며 늘 배움의 자세로 일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귀농하여 다섯 자녀를 두기까지 시골 생활의 장점과 단점
▶“도시에서 생활했다면 지금처럼 다섯 자녀를 두기까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도시에서는 자녀 한 명 낳아 양육하기에도 벅찬 환경입니다. 자연에서 맘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가 오히려 부모의 양육 스트레스를 덜어줍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받겠다며 도시로 이주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잘 하기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재능과 적성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공부만을 강요하는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둘째는 글을 굉장히 잘 쓰고, 앉은 자리에서 시 한편 뚝딱 지어내는 실력이 있습니다. 시인에게는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보다 자연에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더 필요한 공부가 아닐까요?
도시 생활의 편리함을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시골 생활의 불편함 또한 단점이 되지 않습니다. 큰 아이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해서 방과 후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학교에서 학원까지 버스로 10분이면 갈 수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우리 어릴 적과 다르게 요즘 농촌은 교통도 편리하고, 문화 서비스 환경 또한 훌륭합니다. 우리 아이들도 시골 생활에 만족하고 잘 자라고 있으니 부모로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월산시루봉 딸기영농조합에서 생산되고 있는 딸기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이것만은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우리 부부가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에 올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습니다. 힘들고 수익도 안 나는 농사를 왜 하냐고 말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시골이나 농촌 출신들이 농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더 큰데, 우리 부부는 이해 못할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외롭고 쓸쓸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든든한 부모님과 아내의 격려가 아니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귀농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의 응원과 지지입니다. 귀농을 하고 싶은데 부인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준비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덜컥 농지부터 구입하는 것이야말로 귀농 실패의 첫 걸음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기 때문에 일손을 도우면서 농사를 배워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은퇴 후 귀농을 생각하신다면 은퇴 전에 미리미리 귀농 준비를 해두어야 합니다. 귀농 준비의 가장 첫 단계는 농사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분은 은퇴하기 3년 전부터 주말마다 우리 마을에 오셔서 일손을 돕고, 주민들과 교류를 하시면서 시골 생활 적응력을 키우셨습니다. 어디가 농사짓기 좋은 땅인지 안목이 생긴 후에야 땅을 사셨습니다. 딸기를 작목으로 결정하신 것도 딸기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딸기 농장에서 일하신 뒤에 확신이 생겨서라고 합니다.”

-귀농을 장려하는 시대에 꼭 필요한 정책 방안에 대하여
▶“귀농을 장려하는 시대가 된 것처럼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서 귀농찬가가 들려옵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여전히 농업을 생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많습니다. 청년에게 지원해주는 제도가 많은 것 같지만 막상 현실을 들여다보면 무척 다릅니다. 농지를 보유하여 담보 능력이 큰 장년층에 비하여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땅을 사야하고 시설 확충도 해야 하기 때문에 목돈이 들어갑니다. 한 달에 얼마씩 생활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것보다는 투자에 필요한 비용을 장기간 저리로 융자해주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 귀농했을 때만해도 10년 융자 기간이던 것이 7년으로 줄어들었고, 대부분 2~3년 안에 상환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농업 소득만으로 단기간에 투자액 전부를 상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지원책이 되려면 융자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줘야 합니다. 또한 농산물을 물가관리 대상으로 보는 정부의 관점을 타파해야 합니다. 말로만 농업은 미래 산업이자 생명 산업이라고 하지 말고, 진정 생명과 미래를 지켜주는 농산물로 대접해야 합니다. 농업의 가치가 보장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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