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로 ‘58년 개띠’, 황금개띠해 주인공은 나야 나

머니투데이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8.01.01 09:00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2018년은 무술년(戊戌年)이다. 무(戊)는 황을 뜻하기에 황금 개띠해라고 부른다. 60년 전인 1958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환갑을 맞는 해다. 1958년은 우리나라 1차 베이비붐 시대(1955~1963년)로 10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1974년에는 처음으로 고교평준화가 시작되어 이 100만 명의 아이들은 소위 ‘뺑뺑이’로 고등학교를 간 첫 세대가 되었고, 1987년 민주화 운동 역시 몸소 체험했던 세대가 이 ‘58년 개띠’들이다. 이들이 경제활동의 중심에 서며 39세가 됐던 1997년, 우리나라는 유례없던 IMF 경제 위기를 맞았다. 그들은 또 다시 시련을 겪었으며, 극복해 나갔다. 그 유명한 ‘58년 개띠’라는 말은 현대사에서 가장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의미가 남다른 세대라는 말이다. 더리더 1월 신년 특집에서는 20대 국회의원 중 ‘58년 개띠’는 누가 있는지 살펴봤다. 격동의 현대사를 몸소 체험한 ‘58년 개띠’들이 그동안 쌓아온 연륜과 경험을 살려 2018년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1958년 5월 23일생
‘58년 개띠’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릴 만큼 그의 정치적 행보도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2008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서울 강서을에서 내리 3선 승리를 했던 김성태 의원은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난후에는 새누리당을 탈당해 개혁보수신당인 바른정당에 입당하였으나, 19대 대선 직전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그러던 지난 2017년 12월 12일,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에서 김 의원은 108표 중 과반이 넘는 55표를 얻으며 선출됐다. 김 원내대표 체제로 인해 자유한국당의 친홍(친 홍준표)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따르고 있다.
그에게는 탈당과 복당을 반복하며 얻은 ‘대장 철새’라는 오명도 있다. 하지만 그가 출연하고 있는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쥐가 아니라 불사조였다. 대단하다”고 하며 원내대표 당선 축하인사를 남겼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으로 활동한 김성태(우), 하태경(좌) 새누리당 탈당파 의원들이 2016년 12월 27일 분당 및 개혁보수신당 창당 선언에 앞서 피켓을 들 고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이번 김 신임 원내대표 체제로의 전환은 그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 정당으로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리더를 뽑은 자유한국당은 올해 지방선거 전까지 당의 인적·정책적 쇄신을 통해 제1야당 위상을 찾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친박·비박 찾다가 쪽박 찬 집구석인데 또 무슨 염치로 친홍·비홍이냐. 어떤 사당화 계파가 우려되면 앞장서서 깨겠다. 당면과제는 문재인 정권과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정견발표를 통해 ‘대여투쟁’을 선언했다.
그는 과거에 군복무를 마치고 사우디아라비아 파견 건설 노동자로 일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KT에 입사하여 노동조합 간부를 역임했고,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지낸 대표적인 노동계 출신 정치인이다. 2003년에는 노사정위원회 노동계 대표로 나서 ‘주5일 근무제’ 협상을 하기도 했다. 또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대체휴일제도’, ‘정년 60세 연장법’ 등을 발의하는 등 친서민·친노동 정책가로 통한다.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로서 2018년을 시작한 그의 앞에는 계파갈등 수습, 보수대통합 논의 재개, 정부·여당과의 관계 설정, 6월 지방선거 과제가 산적해있다. 그가 ‘58년 개띠’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1958년 10월 23일생
추미애는 대구의 한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외가에서 자랐던 그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관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법대에 진학해 판사가 됐다. 그는 1986년 1,500여 명 학생이 참가한 건국대 점거 농성 사건 당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전환시대의 논리》 등 100여 권의 책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겠다는 검찰 영장을 유일하게 기각시킨 소신 있는 판사였다. 그가 초선에서 내세웠던 슬로건인 “세탁소집 둘째 딸이 부정부패한 정치판을 세탁하러 왔다”는 왜 정치를 시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19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시작해 인천지법, 전주지법,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역임한 판사출신 국회의원이다. 19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 시절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권유로 입당하면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추 대표는 1997년 제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유세단장으로 활동할 당시 고향인 대구에서 선거운동을 했는데, 이때는 지역감정이 심해 영남에서 호남 출신 후보 유세를 하면 돌을 맞는 지경이었다. 이때 그는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 다르크가 되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언론을 통해 이 말이 퍼지면서 그때부터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이후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캠프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고, 지난해 5월 실시된 제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인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정권 교체를 이끌었다. 그가 당대표로 있던 더불어민주당이 문 대통령 당선과 함께 집권여당이 되면서 그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집권당 여성 대표’가 됐다.

2017년 5월 9일 저녁, 19대 대통령 선거 당선자 문재인 후보가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추미애 상임선대위원장과 지지 자들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추 대표는 존경하는 인물로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를 늘 언급한다. 대처 전 총리는 영국의 혁신과 사회 재건을 시도하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약 12년간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영국병이라고 불린 정치·사회·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게 한 ‘철의 여인’이다. 추 대표의 당대표 임기는 2018년 8월까지이고, 6월에는 지방선거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그가 지방선거의 승리를 이끌지, 혹은 직접 선수로 뛰어들지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지만 꿈을 향해 한 발자국 전진하기 위한 내공은 충분히 쌓아온 것 같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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