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춘 서당골 훈장 농원 대표, 예술로 ‘주렁주렁’ 열매 맺다

[농어촌은 지금, Jump-up]“타성에 젖은 농사 아닌 명장의 확고한 신념 가져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 2017.12.29 14:4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오영춘 서당골 훈장 농원 대표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네 번째 주인공은 명품 유기농 감을 생산하여 농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명장 농부 오영춘 ‘서당골 훈장 농원’ 대표다. 과수 농가에서 유기농 인증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도 귀농을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 길,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고집해왔다. 지금이야 친환경농산물과 유기농산물을 인정해주고 그에 따른 합당한 가격을 보장해주는 시대지만 그가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을 때는 많은 어려움과 손해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유기농업에 열정을 다한 결과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의 명작 감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농업 후계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서 오 대표가 늘 강조하는 부분은 ‘타성에 젖지 말라,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했지만, 농사일과 후계자 양성을 위한 교수 활동은 물론 마을 일꾼으로서 중책을 맡고 있어 시간 내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었다. 드디어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으로 모시게 되어 그 어느 때보다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장 농부의 명품 감 농사 성공 비결은 무엇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값진 시간이었다. 오영춘 대표의 비결을 본지에서 전격 공개한다.

-오영춘 대표 소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에서 성장했지만, 처음부터 농부가 될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도시에서 사업을 하다 1998년 IMF 때 경제 위기를 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만 해도 사실 농업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농업에서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장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곤궁한 형편에서 땅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쌀 한 톨 없어 밥을 못해 먹을 지경에 이르러서는 뒷산에 올라, 고사리와 쑥을 캐서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에게 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갖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많은 후배 농부들을 교육하는 위치에 있고, 성공한 농부의 대표로 자리하고 있지만 오늘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교육을 처음 시작한 때에는 제가 고생한 이야기보다는 잘 된 일을 더 많이 부각시키고는 했는데, 교육 경력이 쌓인 뒤에는 오히려 ‘이러면 망한다’에 더 많은 교육생들이 호응해주고, 진정한 배움을 얻게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6차 산업의 성공 모델인 서당골 훈장 농원이 되기까지
▶“6차 산업으로 가야하는 현대 농업의 특성상, 많은 농가들이 가공업과 체험 서비스 분야를 넓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무엇이든 기본이 튼실해야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임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서 명작을 탄생시키는 예술가의 심정으로 1차 생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가공을 하고 다양한 체험 서비스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진정한 6차 산업으로 수익 또한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 보면, 맛도 없고 품질도 좋지 않은 감을 원료로 해서 만든 가공품이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요? 가공하는 일과 프로그램 개발로 바쁜 나머지 농사에 소홀히 한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농산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은 그저 단순한 레토릭(rhetoric, 수식어)이 아닙니다. 농부가 되고 난 뒤 변하지 않는 자연 법칙임을 경험했습니다. 6차 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1차 생산인 농사에 가장 큰 중점을 두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교급식에 상당량을 납품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단감과 대봉 홍시 감을 생산하여 수확한 후 품질별로 6단계 선별을 거쳐 학교급식에 상당량 납품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돌이 지나면서부터 어린이집을 다니며 급식을 제공받는 환경에서 자랍니다. 단체 급식 메뉴에 나오는 과일이 대부분 수입 과일이라는 현실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이들의 영양 측면과 건강에도 좋지 않고 대한민국 미래 산업인 농업에 위협이 되는 요소입니다.
어릴 때부터 안전하고 맛 좋은 과일을 먹어야 어른이 돼서도 우리 농산물을 찾기 마련입니다. 각급 기관 및 단체와 학교에서 국산 농산물을 재료로 식단을 구성토록 국가 차원에서 장려하고 지원토록 해야 합니다. 예전에 비해 학교 급식을 기준으로 많이 개선되었지만 더욱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서당골 훈장 농원의 대표 제품을 소개해주세요
▶“신선한 과일을 먹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쉽게 누릴 수 없는 소수의 특권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쁜 일상에 쫓긴 나머지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일과가 끝난 후 가족이 한 자리 모여 저녁을 먹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누던 저녁 일상을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미래 세대에게 신선한 과일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수확한 감의 상당량을 친환경 학교급식을 위한 납품으로 공급하고, 가공품으로 저온건조기법을 활용하여 ‘단감말랭이’와 ‘대봉말랭이’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신선한 과일을 먹는 것이 여의치 않은 현대인들에게 제공하여 간편하게 유기농 감의 영양성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지나친 가공을 거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감을 오랜 시간 저온으로 위생적으로 건조합니다. 농협 로컬푸드 매장과 개인 택배 주문으로 인기가 좋습니다.”
▲오영춘 서당골 훈장 농원 대표

-서당골 훈장 농원의 남다른 친환경 농사법 공개
▶1. 흙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법
“흙을 살리고 사람을 살려야 감 생산량 또한 좋아집니다. 당장 편하자고 제초제를 많이 쓰면 흙은 소리 없이 죽어갑니다. 그로 인한 피해는 반드시 사람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무제초제 농법을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호밀이나 헤어리베치 등 녹비 식물을 이용한 자연 제초기법을 사용합니다.
녹비 식물이 자라면서 주변 잡초를 제압한 후 초가을이 되면 자연스레 시들어 죽고 거름의 역할을 하므로 친환경 농법에서 필수입니다. 또한 토착미생물과 주변의 우분, 유박, 쌀겨, 황토 등을 섞어 발효한 후 퇴비로 이용합니다. 이런 방식은 땅의 기력을 강화시켜 스스로 병충해를 물리치는 힘이 살아나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생스럽지만 반드시 보답을 받는 농사 기법입니다.”
2. 화학비료가 아닌 천연재료 영양제 사용
“한방영양제(당귀,감초,계피,생강,마늘,인삼뇌두,봉룡)등으로 효소를 만들어 영양제로 활용합니다. 천혜녹즙(쑥, 미나리, 죽순, 아카시아 꽃, 미역)을 이용해서 감의 색깔과 당도를 높이고, 천연칼슘을 직접 제조해서 감을 단단하게 만듭니다. 또한, 현미식초를 이용해서 병충해를 예방하고, 생선 아미노산으로 영양을 보급합니다.
친환경 재배 유기 농산물이 크기도 작고 맛도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재배한 서당골 훈장 감은 크기와 색깔이 우수하며 당도 또한 높습니다. 땅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둔 농사법이야말로 사람에게도 이롭고 수익을 가져다줌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기를 바랍니다.”
3. 생산성 향상과 작업 능률을 위한 나무의 수형 잡아주기
“시골마을 마다 지능이 조금 모자란 사람이 한 명씩 있기 마련인데, 그 이유가 감나무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다쳐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그만큼 감나무는 수세가 커서 농부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하늘 위로 높이 솟아 감 하나를 따려다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 농부라고 하려면 자연 그대로 나무를 키워선 안 됩니다. 감나무는 가지가 위로 솟으면 열매가 적게 달리므로 아래쪽으로 유인하면서 가지 사이로 햇볕이 잘 들도록 전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위험하지 않게 수확을 편리하게 할 수 있으며, 통풍이 잘 되어 병해충 발생도 훨씬 적어지므로 친환경 농법이 수월해집니다. 나무의 수형만 제대로 잡아주어도 과수 농사의 어려움 대부분이 해결되므로 농사를 시작하는 처음부터 잘 배워두어야 합니다.”
4. 자신의 농작물에게 들려주는 애정 어린 농부의 발자국 소리
“감나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두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농사법보다도 가장 중요합니다. 스마트 팜의 시대에 구태의연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농사에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농부의 농작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만큼은 결코 줄어들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또 보아도 언제든 다시 보고 싶은 존재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농부에게 농작물은 바로 사랑하는 존재 그 자체여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수 활동과 외부 활동에 아무리 바빠도 우선순위를 두는 존재는 언제나 서당골 훈장 농원의 감나무입니다.”

-농업과 경영은 하나입니다
▶“타성에 젖어 그저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끊임없이 농사 기술과 소비자를 연구하는 경영 마인드를 가진 농부가 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농사꾼이지 장사꾼은 아니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농사와 장사는 이미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자신이 열정을 다해 키운 농작물을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고 팔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과거에는 그저 고된 농사일을 하는 일꾼으로만 여겨졌는데, 이제는 자신이 운영하는 농원의 대표 자격으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OO농원 대표님’이라는 호칭에만 익숙해질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영자로서 갖춰야할 태도와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감을 사주는 고객이 아니라, 함께 농사짓는 가족이라 생각하며 해마다 감사 연하장을 손수 써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맛있고 품질 좋은 감을 농사짓는 일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소중한 일과라 생각하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감 사 주시는 분께 감사드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며 매년 쉬지 않고 연하장을 작성합니다.”

-인증제를 이기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입니다
▶“계속되는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인증제가 아닙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 어떤 인증보다도 확실한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농사 초기에 실제로 겪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단골 고객이 갑자기 농원에 찾아오셨다가 감나무에 영양제를 주고 있던 제 모습을 보고, 그동안 유기농으로 알고 사 먹었는데 속았다며 고소를 하겠다며 화를 내셨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한방 영양제를 해로운 농약으로 잘못 아신 듯 했습니다. 고소하고 싶으면 하시라며 농약으로 오해하는 영양제를 그 자리에서 마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 분은 우리 농원의 자칭 홍보대사가 되어주셨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인증제를 뛰어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신뢰임을 깨달았습니다.”

-귀농을 생각하거나 계획하는 분들에게 전하는 귀농 성공 비결
▶“11㏊에 달하는 면적에서 친환경 유기재배 인증을 받은 서당골 훈장 감은 당도가 평균 17도로 일반 농가의 가격보다 3배나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귀농 성공사례로 손꼽히지만 초기에는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도시가스 배관 설비 사업을 하다가 1998년 IMF 때 경제위기를 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친환경 감 농사를 시작했지만, 2~3년간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처음 귀농했을 때 감 묘목을 살 돈도 부족해 대출을 신청했으나, 거절을 당했습니다. 학교 선배이자 고향 선배가 담당자인지라 제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도리가 없다는 말에 반드시 보란 듯이 성공하리라 다짐했습니다. 먹을 쌀이 없어 산에서 쑥과 고사리를 뜯어 생계를 유지했던 시절을 함께 견뎌주고 남편을 믿고 지지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없었을 것입니다 귀농의 성공 비결 중 으뜸은 가족의 사랑과 믿음입니다. 세상에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단 한사람만 있더라도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관행농법이 아닌 친환경 농사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몇 번의 실패가 오히려 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실패에 집중하기 보다는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 방법을 찾는데 몰두했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을 고된 육체노동으로만 인식한 채 해야 할 일에 묶여있지 않고, 자신의 농산물을 예술 작품이라 생각하며 명품을 만들기 위한 명장의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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