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문화강국이 될 수 있을까?

[언론과 문화]

머니투데이 더리더 신성호 ㈜옴니스이앤엠 대표이사 2017.11.01 15:5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신성호 ㈜옴니스이앤엠 대표이사
대한민국의 영화와 TV 드라마의 수많은 히트 작품들이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또한 기획사와 대형 제작사들을 통해 배출되는 아이돌 가수나 배우들은 이제 자신의 전문 영역을 뛰어넘어 연기자로 가수로 활동하며 외국의 대형 무대에서도 극찬받을 만큼 끼와 실력을 뽐내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제작사들이 힘을 합해 이룬 결실이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문화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영어 기반의 문화강국을 원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얼마 전 텔레비전 보도에 서울 학원가에서 유치원생을 상대로 한 영어 조기교육 프로그램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현장을 보도했다.

외국인 강사에 학원 내부를 미국의 가정으로 꾸며 놓고, 아이들의 이름도 앨리스, 리처드 등의 외국 이름으로 바꿔 학원 안에서는 국어를 전혀 쓰지 못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사실조차 잊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한 달에 몇십 만원의 과외비는 논외로 하더라도 앞으로는 지방까지 그런 식으로 교육하지 않고는 학원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논리를 거침없이 토로하며 인터뷰하는 학원장이나 학생, 학부모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자랑스러움을 느꼈을까 서글픔을 느꼈을까.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어느 선진국도 자기 나라 국어를 소홀히 하면서 외국어 교육을 하는 나라는 없다. 오히려 자국어 세계화를 위해 세계 유수의 대학에 엄청난 기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국민 전체를 위한 자국어 방송 제작이 원칙이고, 자막 방송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쓰일 분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막 방송이 강세인 나라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추세는 국적 없는 영어몰입식 교육 정책과 우리 방송사들의 공공성 원칙마저 망각하게 하는 경제논리와 맞물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어떤 명분으로도 외국어 교육은 한국어 교육 다음이라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6.25전쟁과 4.19, 5.16 등의 사회적 혼란을 겪으며 이로 인해 유입된 서양의 문화로 인해 기본적인 의식주 등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외국의 참전용사들은 80~90세 고령의 나이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여 우리의 발전된 모습과 문화, 그 엄청난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그렇게 발전된 모습의 이면에는 우리 고유의 문화가 서양문화에 조금씩 잠식되면서 한때는 전통문화 라고 하면 부정적이고 옛것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위상이 비교적 높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화 사대주의는 우리 주위에 너무 만연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가 7월에 기고한 ‘언어와 문화의 상관관계’에서 밝혔듯 한국의 언어 정책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미, 한-EU FTA 발효 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케이블PP와 종편채널이 수입하는 외국, 특히 일본의 콘텐츠들은 한국어를 지킨다는 명분은 아예 실종된 듯 무차별하게 방송되고 있고 심지어 이를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변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 발전에 관심 있는 분들은 미국, 일본, 프랑스, 스웨덴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자신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책들을 발효하고 지키고 있는지 살펴보길 권한다. 실제로 미국은 언어정책기관으로 응용어학센터(Center for Applied Linguistics)를 운영하고 있다.

CAL은 언어학습을 증진시키고 언어의 기술과 평가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또 일본의 문부성(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산하 문화청의 사업들은 주 내용이 거의 자국어를 얼마나 훌륭하게 말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이 대부분이다.

일본에서 수입한 한국 콘텐츠(드라마, 영화)는 예외 없이 일본어로 방송하고 있다. 시청자가 한국 배우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해도 아무리 유명하고 인기 있는 외국의 콘텐츠도 모국어 사용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한 나라의 언어는 다른 언어의 어휘를 받아들임으로써 풍부해질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여 자국의 언어를 지켜야지 외국어의 침입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의 언어 정책의 책임자는 국무총리가 맡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듯 자국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지켜온 민족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또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진국들의 언어 정책과 비교해 볼 때 대한민국은 과연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성장하고 그것을 오래도록 지킬 힘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만약 문제가 있다면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 과감하게 수술해야 할 부분은 없을까?

KBS 프로듀서로서 콘텐츠 제작의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하인성 국장이 쓴 《입 좀 맞춥시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등장한다.

“모든 분야가 세계화 국제화를 향해 치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텔레비전 방송에서조차 우리말을 글자로 바뀌어 보조 기능을 하고 외국말이 우리말의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세계와 국제화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고정관념에 젖은 개념주의자들의 위태로운 발상이다.” 그는 이렇게 우리말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필자는 이런 우리말과 문화를 보존하고 강화하고자 지난 약 6년 여 동안 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직을 맡으면서 몇 가지 사업을 추진하여 결실을 맺은 바 있다.

그중 하나가 수입 영상물 우리말 제작 기금의 조성이고, 지금도 크게 관심을 두고 있는 ‘더빙의 법제화’이다.
문화 사대주의에 잠식되어 문화강국의 꿈은 요원하며 설사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강국의 타이틀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제논리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우리말 방송이지만, 밀려들어오는 외국의 콘텐츠와 대형 제작, 배급사들은 콘텐츠 전달의 강화를 위해 로컬라이징(한글화), 즉 더빙이 매우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에 대해 인식을 함께 하고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이러한 로컬라이징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필자는 다시 역설한다. 한류의 이 뜨거움이, 이 열정과 꺾이지 않는 대한민국 문화의 힘이, 지금까지 이끌어온 선배와 앞선 세대가 만들어놓은 결과였다면 그 뒤를 이어가는 한류문화의 주역들은 더욱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단단히 딛고 서서 힘차게 나가라고 감히 부탁을 드려본다! 물론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도 기대하면서…. 

신성호 ㈜옴니스이앤엠 대표이사
서울예술대학교 졸업
(사)한국성우협회 부이사장
現 ㈜옴니스이앤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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