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선언 이후 남북한관계의 부침과정과 향후 전망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을 중심으로 (1)

강석승 미래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2017.10.12 09:4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강석승 미래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1. 글을 시작하며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일구어낸 ‘10.4선언’1)이 채택된 지도 어언 10년이 가까워오고 있다. 이 기간 동안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주변정황, 그리고 국내 정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특히 이 선언의 서명 당사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은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하였고,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현재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그런가 하면 한반도 주변국에서도 최고 통치자의 교체 등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한반도정책의 주요 입안자들도 크게 바뀌어 ‘10.4선언’의 순조로운 이행과 실천에는 적지 않은 제약과 장애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이 기간 동안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과 수백여 차례에 걸친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의 대북 제재와 압박의 강도가 심화, 확대되고 있어 이 선언이 채택될 당시의 정황과는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서 한반도 주변국의 정책 및 대북 정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고, 현재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제 맛이 난다’는 말처럼 과거의 적폐(積弊) 청산을 위한 일련의 개혁 조치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문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이런 변화된 국내외의 환경과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지난 2007년 채택된 ‘10.4선언’을 중심으로 그동안 남북관계가 어떤 부침(浮沈) 과정을 겪어왔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개괄해 보기로 한다. 다만 시간과 지면의 제약상 그 논의의 주 대상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문제 등에 두기로 한다.

2. ‘10.4선언’의 특징과 그 의미

지난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일구어낸 ‘6.15남북공동선언’이 분단 이후 단절된 남북대화를 재개한 선언적 성격의 남북한 간 합의였다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일구어낸 ‘10.4선언’은 정치·화해, 평화, 경제협력, 사회문화, 인도 분야 등 40여 개의 광범위한 의제를 담고 있는 8개항으로 이루어진 남북한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기 위한 합의이다.2) 이 선언의 특징과 의미는 우선 기존의 경제 및 사회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남북관계를 한 차원 높게 발전시키기 위하여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를 제도화하는 틀을 마련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중에서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3)는 남북정상선언의 핵심 사안으로, 긴장과 갈등의 바다인 서해를 군사적 대치의 관점이 아니라 경제협력의 관점으로 접근하여 평화번영벨트를 만들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선언은 남북 간 본격적인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논의를 위한 발판을 마련4)함으로써 2000년 한 차례 개최된 후 중단되었던 남북 국방장관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는 문제와 관련하여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하여 관련 당사국 간 협의를 시작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선순환을 재확인5)하였다. 이와 함께 이 선언은 남북경협 과정에서 장애로 작용하였던 경협의 추진환경6)을 개선하고, 기존의 경협산업을 확대, 발전7)시키는 가운데 신규사업을 통하여 경협의 동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이밖에도 이 선언에서는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남북 정상이 수시로 만나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였으며, 그동안 장관급으로 운영되어왔던 남북대화 총괄 창구를 ‘총리급’으로 격상하였고, 그 산하에 부총리급 ‘남북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하여 분야별로 장관급 또는 차관급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상시적이고 체계적인 협의틀을 마련하였다.
이렇듯 남북 양 정상은 ‘10.4선언’이 남북관계 발전의 확고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에 이해를 같이 하고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9)에서 이 선언의 이행에 따르는 엄청난 재원 소요 등 차기 정부에 무리한 부담을 주는 합의를 일구어냈고, 북한 역시 내심으로 남한의 정권 교체를 대비하여 대규모 경협사업에 대한 합의에 임함으로써 이 선언의 구체적 이행, 실천에는 암운(暗雲)이 짙게 드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3. 남북한 관계의 부침(浮沈) 과정
1) 개황

‘10.4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한동안 순조로운 이행, 실천 단계로 진입하는 듯한 양상을 나타냈다. 즉 제62차 유엔총회10)에서는 ‘2007 남북정상선언’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한반도에서의 평화, 안전, 통일’에 대한 결의가 만장일치로 채택11)되었으며, 우리 정부의 초청으로 북한의 통일전선부장 김양건과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승철,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실장 원동연 등 일행 7명이 우리나라를 공식방문12)하면서 ‘10.4선언’의 이행을 중간평가하고 향후 추진방향을 협의하는 가운데 남북 협력사업 분야의 현장을 시찰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0.4선언’을 보다 체계적으로 이행, 실천하기 위한 일련의 회담도 대선(大選) 전까지는 비교적 활발하게 연이어 열리게 되었다. 즉 남북관계의 총괄적인 조정협의체였던 쌍방 총리급 회담을 위한 제1차 예비접촉(2007.10.26, 개성) 및 제2차 예비접촉(11.9), 제3차 예비접촉(11.11) 등을 통해 제1차 남북총리회담(2007.11.14.-16, 서울)이 열리게 되었다. 이 회담에서는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에 관한 제1차 남북총리회담 합의서’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구성-운영에 관한 합의서’ 등 2건의 부속합의서를 채택하였다.
이어 군사분야 회담으로는 ‘10.4선언’에 따른 후속 조치로 사전 준비를 위한 군사실무회담을 3차례 열어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11.27-29, 평양)이 열렸으며, 이와 함께 제7차 ‘남북장성급군사회담’(12.12-14, 판문점 평화의 집)과 제32차-35차 ’남북군사실무회담‘(11.12, 11.20, 12.5)이 열렸다. 또한 경제분야 회담으로는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12.4-6, 서울)를 비롯하여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추진위원회’ 제1차 예비접촉(12.4, 서울) 및 제1차 회의(12.28-29,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남북농수산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12.14-15, 개성), ‘개성공단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12.20-21,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남북보건의료-환경보호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12.20-21, 개성), ‘남북조선 및 해운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회의(12.25-28, 부산), ‘남북철도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실무접촉(11.20-21, 개성) 및 ‘남북철도운영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12.1, 개성), ‘남북도로협력분과위원회’ 제1차 실무접촉(11.28-29, 개성), ‘남북농업협력 실무접촉’ 제1-2차회의(11.5 & 12.18, 개성 자남산여관), ‘금강산관광 활성화를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접촉’(12.25,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등이 각각 열렸다.
이어 사회문화분야 회담으로는 ‘남북기상협력 실무접촉’(12.17-18, 개성), ‘2008 베이징올림픽 남북응원단 관련 실무접촉’(12.28, 개성) 등이 각각 열렸으며, 인도분야 회담으로는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11.28-30, 금강산)이 열렸으나, 우리나라 대선의 결과 제17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 상황에서 이 모든 회담들에서 남북이 합의한 사항은 남북관계 담당 주요 직위자의 교체 및 과중한 예산 부담 등으로 인해 실제적으로 이행, 실천되기가 어려웠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동안 대남 관망세를 견지하던 북한이 같은 해 3월 말부터 대남 비난과 함께 연이은 강경조치13)를 취하면서 남북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같은 해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초병에 의해 피격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남북관계는 교착 국면에 봉착하게 되었다.14)
그러나 북한은 ‘명승지개발지도총국’의 담화를 통해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우리측에 책임을 전가하였고, ‘금강산지구 군부대 특별담화’(8.3)를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에 체류하고 있는 불필요한 우리측 인원을 추방하고, 동해지구 MDL 통과를 제한하면서 사소한 적대 행위에도 군사적 대응을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에도 북한은 ‘동해지구 남북관리구역 군사실무 책임자’ 명의의 전화통지문(8.9)을 통해 한국관광공사 및 이산가족면회소 등 당국 관계자를 추방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였고, 남북군사실무회담(10.2)에서는 일부 민간단체들이 행하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하면서 전단 살포가 계속될 경우 우리측 인원과 물자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제한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 남한체류 인원에 제한을 둘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급기야 북한 당국은 12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제한, 경제협력협의사무소 폐쇄, 개성관광 중단, 남북화물열차 운행중단,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의 상주체류인원 절반 감축 등 조치를 일방적으로 취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2009년에 들어서자마자 북한은 ‘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1.17)을 통해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대남 강경정책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1.30)에서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한다”고 밝혔으며, 이후에는 한-미가 연례적으로 진행해 온 ‘키 리졸브 훈련’을 비난하면서 3차례15)에 걸쳐 남북 육로통행 제한 조치를 취하였다.16) 이어 2010년 3월에는 북한군이 우리측 초계함인 천안함을 공격하여 장병 46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저질렀는 바, 우리 정부에서는 이 사건 발생 후 2달 동안 민-군-해외합동조사단을 조직하여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잠수함정으로부터 발사된 북한제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인해 침몰했다”는 공식발표(5.20)를 하였고, 이에 따른 대응으로 ‘5.24조치’17)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 조치를 실효적으로 관리, 집행하기 위해 ‘반출-반입 승인대상품목 및 승인절차에 관한 고시’를 개정하여 원칙적으로 모든 반·출입 물품, 거래형태, 대금결제 방법 등에 대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가운데 남북 교류가 중단되면서 야기된 남북교역 및 경협기업들의 어려움에 대해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였다.18)
이런 가운데서도 남북은 군사실무회담(9.30) 및 적십자회담(10.26-27)을 열었으나, 북한측이 ‘연평도포격도발’(11.23)을 일으킴에 따라 남북 간의 관계 진전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못한 채 답보(踏步) 상태로 빠져갔다. 2011년에 들어서는 민간 차원에서 ‘백두산 화산 관련 남북전문가회의’(3.29, 문산 남북출입사무소) 등이 이루어졌으나 그 어떤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종결되었고, 2013년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도 남북관계는 좀처럼 개선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였다. 즉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입각하여 한편으로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 간 대화를 통해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 성과는 전무(全無)한 형편에 처해 있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19)
2014년에 접어들면서 남북고위급접촉(2.12 & 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 계기 남북고위급회담(10.4), 남북군사당국자접촉(10.15),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제5차 회의(6.26), 개성공단 통행-통신-통관분과위원회(2014.1.24) 등이 잇따라 열렸으나, 남북 간의 현격한 입장차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남북관계는 평행선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광복 70주년에 즈음하여 정부에서는 외교안보 부처 업무보고(1.19)를 통해“허심탄회한 남북한 간 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북한은 ‘국방위 정책국 성명’(5.24) 및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성명’(6.15) 등을 통해 “남북대화에 앞서 5.24조치를 해제할 것”과 “남북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대북전단 살포 중단,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제도통일-체제대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책임적 입장 표명”을 요구하기만 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남북고위당국자접촉’(8.22-24)와 제1차 남북당국회담(12.11-12), 개성공단 공동위원회 제6차 회의(7.16), 남북적십자실무접촉(9.7-8) 등 총 5회의 남북회담이 열렸으나,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상봉행사(10.20-26, 금강산)20)만이 성사되었을 뿐이었다.
2016년에 접어들어 정부에서는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한편 원칙 있는 대화와 전략적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견인하는 정책을 펴왔으나, 두 차례의 핵실험을 비롯한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켜 남북관계의 개선과는 역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에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결정(2016.2.10)을 내리게 되었고, 이런 조치에 반발한 북한은 2월 12일부터 판문점 연락채널과 군 통신선 등 남북 간 통신망 운용을 일방적으로 중단한다고 선언하는 가운데 급기야 남북관계의 모든 채널이 경색되게 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조기 퇴진하고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꽉 막혀있던 남북한 관계에도 조금이나마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즉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거 그 어느 정부보다 전향적이고 능동적인 대북 정책 추진과 이에 따른 대화 제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금까지 총 9차례에 걸쳐 매주 1번꼴로 ‘화성-12호, 북극성-2형, 화성-14형’ 등과 같은 중단거리 미사일 발사 및 제6차 핵실험과 같은 도 발행위로 대답하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유진벨재단’ 등 무려 90여 개 민간단체의 대북 접촉과 방북 및 대북 물자반출 신청을 승인하는 등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민간 교류에 매우 유연하고도 능동적인 입장과 자세를 표명하고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 발표 17돌 기념사21) 및 전라도 무주에서 열린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회식 축사22) 및 지난 7월 6일 독일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밝힌 이른바 ‘신 베를린선언’으로 불리는 ‘대북 구상’을 발표23)하였다. 이런 제안을 통해 지난 2010년 북한의 천안함폭침사건 이래 전면적으로 중단되어 있는 남북한 간 접촉과 교류, 협력을 전격적으로 재개하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내고자 힘쓰고 있는 것이다.24)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이런 문 대통령의 언급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것임과 동시에 한국의 동의 없이는 군사적 충돌은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한반도 문제의 한국 주도적 해결 입장을 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북한이 도발을 계속한다면 더 강한 압박과 제재를 가하되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경우에는 체제 보장은 물론이고 남북한 간 경제교류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기조를 강조한 것25) 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남북한 관계 개선의 주된 상대방인 북한의 반응은 문 대통령의 이런 거듭된 제안에 대해 이제껏 각종 선전매체나 구호를 통하여 ‘우리 민족끼리 정신’으로 남북한 관계를 풀어나갈 것을 강조해왔던 것과는 상반되게 ‘언제 그랬느냐’ 하는 식으로 아닌 보살하면서 이런저런 구실과 핑계를 대면서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난 6월 23일,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의 공개질문장이었는데, 여기에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 제의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묵묵부답의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남조선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근본적 원칙적 문제에는 함구무언하면서 자위적 핵무력 강화조치를 걸고드는 대북압박 흉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민족끼리, 민족자주”를 내세우면서 “한미합동군사연습의 중단과 민족대회합을 개최할 것”을 주장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26)
이 때문에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이왕자 씨’의 피살사건 이후 꽉 막혀있던 남북관계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아까운 세월만을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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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한 명칭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노무현 전(前) 대통령과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정일 간에 이루어진 합의(2007.10.4. 평양)임.
2)통일부, 통일백서(2008), 53쪽
3) 이는 해주지역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개발,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한강하구 공동이용, 북한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등 서해 지역에 포괄적인 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는 것임.
4)이 선언을 통해 양 정상은 남북 간의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과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한 협력을 명문화하였음.
5) 6자회담에서의 ‘9.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음.
6) 통행, 통신, 통관 등 개성공단 ‘3통 문제’를 비롯한 장애요인을 해소함.
7) 이를 위해 각종 경협사업의 군사적 보장에 대한 협의가 필요함을 명문화하고 앞으로 경협추진에 제도적 보장 장치를 마련하여 우리 기업이 안심하고 투자하며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남북경협의 추진환경을 개선하기로 하였음.
8) 660만㎡ 규모의 개성공단 2단계 개발착수와 문산-봉동 간 철도를 이용한 화물수송의 개시, 안변과 남포의 조선협력단지 건설, 북한 내 철도-도로 개보수와 공동이용, 농업-보건의료-환경보호 등 다방면의 신규 경협사업 합의 등임.
9)당시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임.
10)2007.11.1.
11) 이 결의는 유엔총회가 10.4선언을 환영, 지지하며 그 충실한 이행을 남북한에 권고하며,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와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도록 남북한간 대화, 화해 및 통일을 위한 과정에 있어 회원국들의 지지와 지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음.
12)2007.11.29-12.1.
13) 북한은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우리측 당국자 철수(2008.3.27), 모든 남북간 당국대화 일방적 중단선언(3.29), 대통령의 실명(實名) 거명비난(4.1) 등을 자행하였음.
14) 당시 정부에서는 이 사건에 관해 즉각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가운데 진상규명을 위한 조치 및 이에 대한 북한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하면서 진상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금강산관광을 잠정적으로 중단한다는 발표(7.12)를 하였음.
15)2009.3.9. &3.13-15 & 3.20.
16) 이런 가운데서도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國葬)’ 당시 북한조문단의 방문(8.21-23)을 계기로 남북 간 첫 고위급 접촉과 개성공단 문제 협의를 위한 ‘4.21접촉’과 ‘해외공단 남북합동시찰 평가회의’(2010.1.19-21,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임진강수해방지관련 남북실무회담(2009.10.14, 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금강산-개성관광관련 남북당국간 실무회담(2010.2.8,개성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남북적십자회담(2009.8.26-28, 금강산) 등이 진행되었음.
17) 이 조치의 주요 내용으로는 1) 북한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을 전면 불허하며 제주해협을 포함해 우리측 북한선박의 운항과 입항을 금지 2) 남북 간 일반교역은 물론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물품의 반출과 반입 등 모든 교역을 중단 3)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북한지역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며 북한주민과의 접촉도 제한 4) 현재 진행중인 사업의 투자확대 금지 등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의 불허 5)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대북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으로 되어 있음.
18)이에 관해서는 통일부 통일백서(2010)을 참조
19) 2013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정치분야 1회, 경제분야 22회, 인도분야 1회 등 총24회의 남북회담과 개성공단문제 협의를 위한 상설대화 채널을 구축하였으나, 북한측의 일방적인 판문점 직통전화와 군통신선 차단, 개성공단 근로자의 일방적 철수조치 등으로 인해 교착국면을 벗어나지 못하였음.
20)남북의 이산가족 186명의 가족 972명이 상봉하는데 그쳤음.
21)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도발을 중단하면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것”을 천명.
22)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선수단이 참여한다면, 인류화합과 세계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면서 북한측의 호응을 강하게 촉구하였음.
23) 이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오는 10월 4일 민족 최대의 민속명절인 추석이자 ‘10.4선언’ 채택 10주년인 추석을 기해 남북한 간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그리고 정전협정 기념일인 7월 27일을 기해 휴전선 일대에서의 남북한 간 적대행위를 중지할 것” 등을 북한에 제안하였으며, 이런 대북 구상의 구체적 후속조치로 지난 7월 17일 북한에 대해 “21일 남북군사당국회담과 내달 1일에 남북적십자회담을 판문점에서 각각 열자”는 제안을 하였다.
24) 이 제안과 관련하여 주무부처인 통일부에서는 직접 조명균 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회담의 형식과 관련하여 북한측에 아무런 조건 없이 개방함으로써 한미군사훈련과 같이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여기는 문제도 폭넓게 협의할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였고, 남북 군사회담의 주무부처인 국방부에서는 서주석 차관이 “현재 단절되어 있는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북측이 복원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였으며, 대한적십자사 김선향 회장 직무대행도 “현재 남북에는 많은 고령의 이산가족이 가족 상봉을 고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어떤 정치적 고려보다 최우선되어야 할 문제임”을 적시하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25) 이는 “한반도에 평화가 없으면 동북아에 평화가 없고, 동북아에 평화가 없으면 세계의 평화가 깨진다”는 현실인식을 토대로 한 것으로,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의 이른바 ‘한반도 평화구상’에서 밝힌 여러 가지의 대북 제안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임.
26) 그런가 하면, 6월 25일에는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 등 매체를 통해 “남조선당국이 무작정 핵문제 해결을 북남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외세와 공조하여 반공화국 제재압박에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 비난하였으며, 특히 무주 태권도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국제올림픽위원회 장웅 위원은 문대통령의 남북단일팀 제안에 대해 “실무적으로 정치에 올림픽을 도용하면 안된다”면서 “정치적 환경과 단일팀 구성을 위한 실무적 난관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거절의사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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