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도시, "싱글맘이 당당하고 행복한 나라되길"

[한국 속 글로벌 리더를 만나다]이민자, 다문화 2세들도 같은 국민임을 잊지 말아야

더리더 편승민 기자 2017.07.07 10:56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더리더는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원조 외국인 방송인이자 긍정 에너지 대표주자, 이다도시가 돌아왔다. 1990년대 1세대 외국인 방송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이다도시는 1993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하지만 그는 2009년 결혼 16년 만에 이혼을 결정했다. 이혼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외국 출신 여성이었던 그에게 향한 대중의 잣대는 가혹하기만 했다. 10년이란 세월동안 싱글맘으로서, 여성으로서, 이민자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더 단단해졌다.
그는 아직까지 이혼이나 이민자에 대한 한국 대중들이 보내는 시선은 차갑고 때론 너무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고민은 단지 한 사람의 푸념이 아니다. 현재 200만 명이 넘는 다문화 한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자, 앞으로 국가와 국민 모두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그는 새롭게 출발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기대를 드러냈다.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한 1세대 외국인 방송인으로 알고 있다. 처음 한국에 왔던 건 언제였고, 계기는 무엇이었나
▶한국에서 살게 된지도 벌써 25년이 됐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대학원생이었다. 당시 국제 비즈니스에 대해 공부했는데 아시아 지역 중에서도 나는 세부 전공으로 한국을 택했다. 졸업하기 전에 전공 지역에서 석 달 동안 실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1989년에 실습생으로 처음 한국에 오게 됐다. 부산에 있는 ‘태화’ 신발 공장에서 실습을 했는데, 외국에서 온 학생이라 하숙집에서도 살았다. 그때 한국은 완전히 ‘응답하라 1988’과 똑같은 분위기였다. 너무 재밌게 보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푹 빠졌다.
그렇게 실습이 끝나고 다시 프랑스에 돌아가 대학원을 졸업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국에 1~2년 정도 더 있고 싶었다. 한국에 대해 제대로 알고, 언어도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연세대 시간강사 일을 구하면서 다시 오게 됐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EBS쪽에서 섭외가 와서 우연히 방송 일을 시작했다. 몇 개월 후에 아이 아빠를 만나서 결국 떠나지 않고 이렇게 한국에 살게 됐다.

-아시아 중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을 택한 이유는

▶외가 쪽에 어른들이 몇 세대에 걸쳐 다 해군이었다. 그분들이 아시아에 많이 왔었는데 주로 중국 쪽이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 댁을 가면 항상 아시아적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스무 살 전까지 여행도 많이 했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신비로운 지역이었다.
그때가 1990년대 초기였는데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책도 많이 나와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만 한국, 한국어, 한국 문화는 그때까지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88서울 올림픽 이후에 발달은 아직 많이 안 되어 있었지만, 경제성장률이 상당히 높은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아시아의 떠오르는 용 중에 하나였다. 그런 부분들이 신기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한국을 택했다.

-2007년 ‘한국, 수다로 풀다’라는 책에서는 한국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썼다. 벌써 그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더 지났는데
▶지금 그 책의 후속작을 집필 중인데 거의 마무리 단계다. 2006년 이후 나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담았다. 아시다시피 그 사이에 이혼도 했고, 많은 일이 있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만큼 경험도 더 많이 쌓였고, 교수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겼다. 책 분위기가 2007년에 냈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한국 여성으로, 이혼한 여자로, 아기 엄마로 지내왔다. 세 가지 모두 다 결코 쉬운 위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다 겪어냈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지만, 어려운 일도 있었다. 10년 동안 조금 새로운 각도로 대한민국을 바라봤다.
한국 사회 역시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 한국에서 여성의 역할도 많이 변했고, 이혼 비율도 높아졌고, 국제결혼을 통한 이민자들도 많이 봤다.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해 느낀 점도 많았고, 할 말도 많았다. 책이 빠르면 올해 말, 늦으면 2018년 초에 나올 것 같다.

-최근 방송을 통해 외국 출신 싱글맘으로서 느끼는 한국 사회의 시선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 했다
▶실제로 상당히 따가운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이혼을 하고 아이를 혼자 키운다고 해도 결코 불쌍한 존재는 아니다. 내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공부도 잘하고, 충분히 훌륭하게 키워냈다. 사람들의 비판적인 시선이 한국 사회에서 이혼녀라는 존재가 왠지 반가운 존재가 아닌 것 같고,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얼마 전 MBC 다큐멘터리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서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방송 후에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다만 늘 20% 정도는 악성 댓글을 받는다. 내 인생에 대해 모르면서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하니 상처가 됐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이혼하면 좋은 직장도 못 얻고 허드렛일 해야 하는데, 외국인이라서 교수 자리를 줬다”는 말까지 하더라. 그러나 나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이력서 내고, 여러 차례 면접도 봐서 지금의 일자리를 어렵게 땄다. 이혼에 대한 시선이 과거에 비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안티나 나쁜 시선들도 만만치 않게 많다.

-이제는 한국 생활 26년차의 베테랑 엄마가 됐다. 둘째 아들과의 생활을 방송에서 공개하기도 했는데, 요즘 엄마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첫째 유진이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현재 프랑스 대학에 유학 중이다. 둘째 태진이와 지내고 있는데 지금 중3이다. 유진이 만큼 잘 했으면 좋겠다. 꼭 똑같은 길이 아니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로 갔으면 좋겠다. 요즘 고민이라면 태진이가 한국어를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 어렸을 때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했는데 내가 이혼했을 때 태진이가 6살이었다.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아이가 한참동안 한국어를 거부해서 1년 동안 수업을 못했다. 하지만 다시 생활이 안정되고 주변에 한국 친구들도 많다보니 이제는 받아들이려고 한다. 엄마와 아빠의 이혼이지 대한민국과의 이혼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 같다. 조금 시기가 늦어져서 이번 여름 방학에는 특별 수업을 하려고 한다.

-두 아들을 키우는 데 있어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교육관이라면
▶먼저 무엇인가 시작하면 끝을 보라고 한다. 둘째로 국적, 나이, 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노력을 강조한다. 공부에 실패해서 안 좋은 점수는 당연히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이해 못한 부분을 바로 알고 다시 열심히 복습하고 공부하면 된다. 실패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살면서 실패의 맛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다문화 가정의 엄마로서는 아이들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냥 아주 자연스러운 가족일 뿐이다. 오히려 언어에 대해서는 남들보다 2배의 보물을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두개의 언어, 두개의 문화를 모두 배우고 습득할 수 있다. 모든 일에 대해 얼마나 넓은 각도와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장점들을 자주 이야기 해준다.

-5년 전부터 숙명여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전임교수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 교단에서의 삶은 어떤가
▶방송을 했던 때와 아주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오히려 방송인이라서 다들 갖고 있는 기대치가 높았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훌륭한 수업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내가 원어민이고 방송인이어서 대하기를 아예 두려워 하기도 했다. 처음 교수를 시작하고 1년 정도 리듬을 잡으면서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서로 잘 이해하고, 학생들도 더 이상 날 어려워하지 않는다. 수업이나 학업 관련 활동 외에 학교 연극 동아리도 내가 맡고 있다.

-학기가 끝나고 학생 수업 만족도 평가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어떤 노하우와 수업방식을 갖고 있나
▶열정적으로 수업한다는 것이 가장 큰 노하우다. 금요일이 수업이 가장 많아 제일 바쁜데, 다 끝나고 나면 수다쟁이인 나조차도 말 한마디 안 나올 정도로 지친다. 그리고 학생들의 기대에 맞춰 다양하고 앞으로도 유용할 만한 수업을 하고자 한다. 문법은 기본적으로 되어 있어서 대학 수업에서는 일상생활, 업무 관련 언어 등을 배운다. 내가 한불상공회의소 이사로도 있어서 불어권에 있는 여러 분야 전문가나 CEO 들을 특강 강사로 모시기도 한다. 멀티미디어 관련 수업도 하는데 원래는 뉴스를 이용해서 했다. 이번 학기에는 중급 학생들이 많이 있어서 아예 교과서를 이용해 수업을 준비했다. 환경이나 요즘 재밌는 이슈 등 다양하게 나중에도 써먹을 수 있는 주제들을 선정하고자 한다.

-프랑스와 한국을 잇는 다리 역할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음식, 문화, 와인 등 예전에 비해 프랑스 문화도 한국에 많이 들어왔다고 느끼나
▶정말 이제는 없는 게 거의 없을 정도로 프랑스 문화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다. 단 한 가지 문제라면 여전히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와인도 분명 한불 FTA덕분에 더 저렴한 가격에 책정될 수 있을 텐데, 내리긴 내려도 아주 많이 내리진 않았다. 그런 부분만 좀 아쉽다. 더구나 이제는 한국 젊은 세대들도 외국으로 많이 다니기 때문에 문화를 들여오면 정말 제대로 한다. 예전에는 다른 나라의 것을 론칭하거나 했을 때 조금 어색한 분위기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이 없다.

-와인 애호가이자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 와인을 제일 좋아한다. 지금 살고 있는 프랑스마을인 서래마을에는 재미있는 와인바도 많이 있어서 잘 간다. 그리고 한국에서 수입하는 다양한 와인들도 그 동안 많이 접했다. 칠레, 캐나다 와인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됐다. 또한, 남아프리카 와인과 같이 특이한 것들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나도 아직 모르는 와인들이 많다. 세계적으로 기후가 변화 하면서 예전에 재배되지 않던 곳에서도 하다보니까 많이 달라지고 있다. 기대 없이 먹었는데 재밌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집에 한국 친구들을 초대하면 간단하게 전을 한 판 준비해서 가벼운 하우스 와인이나 로제 와인을 함께 먹으면 아주 잘 어울린다. 로제 와인과 삼겹살도 잘 맞고, 특별히 내가 추천하고 싶은 한국 음식과 와인 궁합은 유황오리와 보르도 와인이다.

-프랑스와 한국 모두 최근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통합과 변화를 향한 국민들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도 느껴진다. 국민으로서 새로운 정부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물론 새로운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나는 여성이면서 이민자이고 싱글맘 이기도 하다. 나 같은 사람에 대해 정부가 생각할까 고민이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3% 이상이 외국인이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내 아이들 역시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자라고 있다. 1990년대는 한국에서 국제결혼이 피크였던 때다. 그 당시 국제결혼이 전체 결혼의 13%를 차지했다. 지금은 8% 정도다. 다문화 가정 2세 아이들도 엄청 많이 태어났다. 내 아이만 해도 벌써 스무 살이 됐다. 이렇게 다문화 인구는 늘었는데 정부나 한국문화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가 않다.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점이 많고 이민자들에겐 어려움이나 문제가 많다. 새 정부가 그런 준비를 이제는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아이들도 한국인이다. 똑같이 한국사회에서 자랄 것이고 군대도 갈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건의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내가 2개월 전에 남산터널을 지나간 적이 있다. 그때 현금이나 교통카드가 없었는데 요금소 직원이 계좌번호를 주면서 3일 이내로 통행료 2천 원을 이체하면 된다고 했다. 그걸 깜빡 잊고 있다가 4일이 지나서 냈다. 그랬더니 집으로 전화가 와서 3일을 넘겼으니 과태료를 통행료 4배로 부담하라고 하더라. 나는 이혼하고 나서 아이들 아빠한테 받아야 하는 양육비가 지금 7년이나 미납돼 있다. 재판을 통해 양육비를 부담하라는 판결까지 났는데도 강제력이 없어 여전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경제적 부담을 나 혼자 다 떠안아야 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대신 양육비를 부담하고 그 부분은 따로 나라와 개인의 부채 문제로 넘어간다. 앞서 통행료 과태료는 이렇게 칼처럼 하면서 한 가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문제에서는 그런 강제력이 왜 없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이혼율도 점차 증가하고 있어서 한 두 명이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에서 이런 부분을 생각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보다 더 활발한 방송과 저술 활동을 기대하는 대중들도 많은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우선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책을 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방송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관심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수로서도 계속 활동할 생각이고, 못 다한 박사 과정도 끝까지 해보려고 한다.
방송도 예능은 더 이상 하지 않지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한 계속할 것이다. 내 생각에 앞으로 방송에서 더욱 크게 클 사람은 다문화 2세 아이들 일 것 같다. 대표적인 예가 전소미 양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외모는 이국적이지만 한국 사람과 똑같이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면 새로운 한 주류가 될 것 같다. 그런 친구들의 활동도 기대하고 응원한다.

△ 이다도시(Ida Daussy) 방송인, 교수
– 1969년 7월 17일생(프랑스)
– 르아브르대학교 언어학, 학사
– 르아브르대학교대학원 경영학 석사
– 연세대학교대학원 한국어학 석사
– 연세대학교 불문학과 강사
– EBS 교육방송 프랑스어 회화 강사
– 인권 마라톤대회 홍보대사
– 現 한불상공회의소 이사
– 現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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