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龍虎閣·두만강 철교 그리고 북방 경제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2017.05.17 17:4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중국 도문 조중국경지대에서 두만강이 보이고 있다. ⓒ 머니투데이 DB
하산, 용호각, 두만강 철교는 북·중·러 경제협력과 북방 경제를 상징하는 고유명사다. 하산(XACAN)은 러시아 극동지역 최남단 도시로서 두만강 철교를 건너 북한지역으로 가는 최종 관문이다. 龍虎閣은 러시아 국경과 맞닥뜨린 곳인 防川(팡촨)지역에 중국이 건립한 전망대이자 감시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전통적인 중국식 건축양식을 살려 성루처럼 우뚝 서있다. 황량하고 민가도 거의 없는 3국 국경지역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이다. 두만강 철교는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가냘픈 다리다. 중국 훈춘시(권하세관쪽)와 나진항을 연결하는 신두만강대교가 완공되었으나, 나진특별시로 연결하는 북한 측 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아 통행하지 못하는 반신불수 다리이다. 두만강 철교만이 북한과 러시아 간의 물류와 러시아로 일하러 가는 북한 근로자들을 수송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필자는 지난 4월 중순, 몸담고 있는 <포럼> 회원들과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선열들의 한이 맺히고 피어린 자취가 묻어있는 연해주 항일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스탈린 정권의 소수민족 탄압 조치로 1937년 고려인 17만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떠났던 기차역(케도르브스키)도 둘러보았다. 노인을 중심으로 한 2만 명이 가는 도중 숨졌다는 전언은 일행 모두의 가슴을 멍하게 했다.

일반인 접근이 거의 금지된 북·중·러 3국이 마주치는 국경지역을 거닐면서, 남북관계와 북방 경제를 다시 생각해 보는 귀중한 기회를 가졌다. 보일 듯 말 듯 수풀 속에 묻혀있는 낡은 철책선과 간혹 오가는 경비 군인들이 없다면, 국경인지도 실감나지 않았다. 우리의 DMZ과 같은 삼엄함은 없다. 작은 표지석 만이 여기가 국경임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북·중·러 3국 국경 지역은 변화의 기운이 태동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이 一帶一路 정책을 공세적으로 펴고 있음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연계성(connectivity)과 5通이 핵심 키워드이다. 개방 협력, 화해 포용, 시장 운용, 공동 이익 등 4가지를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고, 중점 협력사항을 5가지로 설정하고 있다. 이른바 5通이다. 정부 또는 다자간 협력을 추진하는 政策胸痛, 교통·에너지·통신 인프라를 건설하는 設施聯通, 무역 자유화 등을 목표로 하는 貿易暢通, 금융협력을 강화하는 資金融通, 교육과 관광 협력 등을 강화하는 民心相通이 그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처지에서 볼 때 一帶一路 정책이 동북 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 발전 전략 즉, 신동북아 진흥정책과 연결되면서, 두만강 유역개발이 미진하지만 조금씩 진척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산역과 두만강 기차역을 주축으로 북·중·러 3국의 국경지역이 두만강 하류지역과 발해만을 그 대상으로 삼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가고 있다. 그래서 나진항이 주요 포스트 지역으로서의 가치가 더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3개 부두 밖에 안 되는 나진항 부두 중에서 1부두를, 2009년 2차 핵 실험에 따른 중국의 제재에 반발하여 그 운영권을 러시아에 넘겨주었고, 이에 중국 정부가 화들짝 놀라 당시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하여 2개 선석운영권을 약속받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나진항을 중국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었다.

여기에다 지린성은 대북 투자의 거점으로 나선지역을 선정하고, 2010년부터 투자를 늘려 지린성 투자 79개사 중 54.4%인 43개사가 나선지역에 집중하고 있다. 2013년 1월에는 훈춘과 나선 간 송전선로(66KV)의 총 길이 92.5km(중국 구간 52km, 북한 구간 40.5km)에 대한 투자액(2.88억 위안)도 확정한 바 있다.
 
중국 상무부도 2013.4 지린 경제합작개발투자유한공사의 투자기업인 <나선경제무역개발투자유한공사>의 북한 진출을 비준하기도 했다. 1860년 베이징 조약(2차 아편전쟁 후 러시아가 중재 대가로 요구)에 의해 동해를 불과 15.5km를 앞두고 동해 출구가 막힌 동북 3성으로서는 나진과 두만강 유역이 중요할 수밖에 없고(借港出海), 이는 북방 경제의 부활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북한의 잇따른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 등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러시아의 은근한 중국 견제(중국 자본을 받되, 시설 공사는 독일에 요청하는 방법 등), 그리고 북한 및 관련국 간의 개발협력에 대한 인식 부족과 개발 및 통제가 교차하는 북한의 내부의 불안정성 등과 같은 복합요인으로 인해 두만강 유역개발은 전반적으로 부진하다. 그러나 두만강을 끼고 발해만을 경유하는 관광 코스 즉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크라이에서 출발하여 두만강 하류지역 지역으로 들어오는 중·러 관광 라인과 북·중 관광 라인 개설 문제가 조용히 추진되고 있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중국은 훈춘 팡촨의 유람선 및 土字脾(토자비, 중국 측 영토 끝) 개발 이외에도 장구봉 전투기념관(1938.7.29-8.11, 일본과 러시아가 장구봉과 사초봉을 둘러싸고 벌인 전투를 의미)을 포함한 다양한 관광 상품을 위한 건설작업도 진행하고 있거나 완료했다. 용호각이 세워지기 전에 중국의 국경 관문 역할을 했던 망해각에 수십 명의 중국 관광객이 벌써 눈에 띈 점은 중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실증해 주었다. 푸틴 대통령도 2015년 9월 극동 개발을 위해 대규모 포럼인 <동방경제포럼>을 발족시켜 아태지역에 전략적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여 정책 자원을 집중하는 등 중국의 신동북아 진흥정책에 맞서고 있었다.

남북관계는 이중성이 불가피하고, 남주홍 경기대 교수가 설파하듯 ‘통일은 대장정이고, 빠른 통일보다 ’바른‘통일을 위한 여건 구축 차원에서라도 외곽을 두드려 중앙(평양)을 공략하는 전략도 병행할 필요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 기조를 ’최대한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로 설정한 만큼, 남북 경제교류와 협력의 길은 더욱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는 결국 우리의 존망이 달린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①변화하는 국제정세와 연동한 초국경 협력을 도모하면서 ② 중국 등 주변지역을 활용한 간접경협 방식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접경 지역인 단동, 연길, 훈춘 등에 거점을 마련하고 다자간 협력 방식으로 북한의 개방을 견인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제약으로 세밀하게 현장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긴 했으나, 한때 우리 선조들이 피땀으로 일구어 살기도 했던 연해주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도 밀려왔다. 우스리스크는 이미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고려인은 주변화 되고 있는 점은 연해주를 새롭게 주시해야할 당위성 중의 하나다.

 ‘북·중·러 국경이 무너지고 있으므로 환황해 경제권과 환동해 경제권을 두 날개로 삼는 한반도 물류네트워크를 디자인하자’고 강조한 이창주 상하이 푸단대학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안보는 경제이고, 경제는 곧 안보’라는 말을 북·중·러 3국 국경지역에서 떠올렸다. 차기 정부의 백년 앞을 내다보는 창의적인 동북아 전략을 기대해 본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前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
한국국가정보학회 이사
한국가버넌스혁신포럼 이사
미래예측포럼 부회장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