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정치화'와 지도자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2017.04.17 13:45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보의 정치화는 정책 결정자들의 선호에 맞춰 정보 평가를 조작하는 행위를 말한다. 정책 결정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정보를 생산하는 기관을 상대로 자신들의 선호 경향에 맞추어 정보를 가공해주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정보의 정치화는 대체로 나쁘게 보는 경우가 많다. 정보 조작으로 이어져 사안에 대한 판단을 부정확하게 하거나, 장기적으론 정보기관과 정책 집단 간의 관계에도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때때로 정보 관리들은 고민에 빠진다. 정책 결정자들이 자신들의 선호에 맞춰주도록 신호를 보낼 때이다. 명시적으로 요구했을 때 자칫 이 같은 요구가 새어나갈 것이 염려되어 간접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정보 종사자들은 이를 ‘우회적인 압력’으로 인식하고 곤혹스러워 하지만, 정책 결정자들은 적절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건설적 비판’과 ‘부적절한 간섭’의 대립선과 같다. 이 때문에 권력을 잡은 집단은 자신들과 생각이 비슷하고 공감대 형성이 가능한 사람을 선호한다. 정권이 바뀌면 정보 기관장은 물론 실무 부서 책임자까지 대대적으로 교체하는 이유다. 자신들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을 필요한 부서에 앉히는 것이다. 이를 manipulation-by-appointment라고 한다.

랜섬(H.Ransom)은 정보의 정치화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당파적 정치화이다. 이 유형은 정보활동이나 정보기관이 정당 등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논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곤혹스러워 하는 ‘러시아 게이트’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대중적 정치화이다. 정보활동 수단과 목적을 둘러싸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 공론이 야기되는 경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쟁점화 되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셋째, 정책적 정치화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입장에 정보 엘리트들이 영합하는 경우를 말한다. 문화계에 대한 ‘블랙리스트’ 사건이 적절한 예가 된다.

‘정보의 정치화’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를 ‘소프트(soft) 정치화’라고 하는데, 정책 결정자와 정보 엘리트들이 심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함으로서 시의적절한 정보 생산에 도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례를 보면 긍정적 영향 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컸다.

한국전쟁이 그 한 사례다. 맥아더는 동북아시아에서 확전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과 갈등이 심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압록강까지 북진하고 싶어 했다. 이를 위해 정보를 정치화 시킨다. 자신이 신임하는 찰스 윌로비(Charles Willoughby) 장군을 극동군 사령부 정보 책임자로 임명한다. 윌로비 장군은 맥아더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축소해서 밑에서 올라오는 정보 보고서를 마사지한다. 맥아더를 기쁘게 하는 정보(intellgence to please)를 생산하기 위해 중공군 개입 가능성을 시사 하는 첩보는 무시하거나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고한다. 워싱턴에도 인민해방군 개입에 관한 정보 보고를 윤색해서 보고한다. 당시만 해도 CIA가 허약했고, 정보기관 간 상호 검증 체계도 미비하여 전적으로 맥아더가 보내오는 정보 판단 보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미군이 압록강을 넘어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했음에도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간주했을 정도다.

두 번째 사례는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CIA 국장이었던 조지 태닛(George Tanet)의 처신이다. 태닛 국장은 부시가 이라크전을 결심하자 거의 모든 정보를 부시 행정부의 선호에 맞추었다.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개발에 대한 증거가 희박했음에도 ‘후세인이 뭔가를 개발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강화해 나갔다. 태닛 국장은 9•11 테러 예측 실패에 대한 비판을 만회하려 했던 것도 ‘정보의 정치화’로 나아가는 원인이 되었다. 결과 역시 참담했다. 2003년 이라크전을 치렀지만, 대량살상 무기는 어디에도 없었고, 미국은 수렁에 빠져들었으며, 명성을 회복하려 했던 태닛 국장의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정보의 정치화’ 문제가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트럼프의 수석전략가이자 극우 인물로 분류되는 스티브 배넌을 NSC 고정 멤버에 포함시키고, DNI(국가정보국) 국장과 합참의장을 상설 멤버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과거 미 행정부는 국가안보 문제와 정치적 아젠다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정보의 정치화’ 폐해를 막는 노력을 해왔다. 부시는 최측근 참모였던 칼 로브(Karl Rove)를 고심 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트럼프는 그러나 균형 감각도 결여되고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 전문성도 떨어지는 배넌을 포함시킴으로서 ‘정보의 정치화’의 길로 들어섰다. 이미 트럼프는 ‘러시아 게이트’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미국 대선에 개입한 러시아를 비난하기보다 러시아의 개입을 실증한 정보기관을 공격하는 등 ‘정보의 정치화’ 우려를 높인 전력이 있는데다, 고위직 인선의 기준을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에 두고 있어 안보 전문가들의 염려는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드 배치도 ‘정보의 정치화’ 의 한 단면이다. 2016년 7월 19일 국회대정부 질문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답변했다. “한•중 관계가 고도화되어 있어 사드를 배치하더라도 중국 측의 보복 조치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청와대의 정책 방향에 맞춰 중국의 보복 시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정보의 정치화’의 부끄러운 사례다. 차기대선이 끝나면 누군가 국가안보를 다루는 직책에 임명될 것이다. ‘정보의 정치화’에 앞장섰던 김대중 정부 시절 임동원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김만복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과학 철학자 칼 포퍼는 말했다. “비판은 이성적 사고를 하는데 피와 살이다” 정책결정 집단 내에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난상토론 해야 한다. 국민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아랫사람들이 결론 형태로 써주는 ‘낭독 대통령’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리더는 ‘기쁘지 않은 정보’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부는 인간의 필수적인 생존 기술이다. 아부라도 해서 꿀이 넘치는 자리를 탐내는 행위는 본능이다. <素書>에는 親讒遠忠者는 亡이라 했다. 새 정부도 ‘정보의 정치화’라는 단어를 금과옥조로 명심해야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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