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문드 로이어]통합의학 꿈꾸는 ‘파란눈 허준'

한의학은 한국의 문화, 세계화 할 만큼 훌륭한 자산

편승민 기자 2017.03.09 09:3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편집자주더리더는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 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파란 눈의 허준” 사람들이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서양인 최초의 한의사 라이문드 로이어는 지금도 유일무이한 서양인 한의사다. 동양철학이 좋아 한국을 여행했던 그는 침술의 효과와 매력에 빠져 한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꿈을 이뤄냈다. 한국어도, 한자도 몰랐던 그가 한의대를 가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국인도 놀랄 노자다.
그는 한의학이 앞으로 나아갈 길, 한국이 세계화되는 방법은 양의학과 한의학이 합쳐진 통합의학의 시행 이라고 강조했다. 통합의료를 통해 새로운 의학이 발전하고, 비로소 세계적인 경쟁력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한국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한의학의 존폐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최초 서양인 한의사로 유명하다. 한의학을 언제 처음 접하게 됐나
▶1987년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는 88서울올림픽도 열리기 전이어서 한국은 물론 한의학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동양에 대해 막연한 관심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은 너무 비싸 부담이 됐고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라 여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을 택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은 한 두달 정도 있으면서 여러가지를 체험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권도를 배우고 불교 공부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태권도를 하다 발목을 살짝 삐었는데 관장님이 침을 맞아야 효과가 좋고 빨리 낫는다고 했다. 침에 대해서는 들어는 봤는데 본적도 없고 체험하지도 못했을 때였다. 하지만 우선은 아프니까 빨리 치료해야겠단 생각으로 근처 한의원에 가면서 처음으로 알게됐다.

-한의사가 되기를 결심했던 이유는
▶특이하게 생각했던 것이, 발목이 다쳤으면 침을 발목에만 놓는줄 알았는데 다른 부위에 놓더라. 발이 아니라 손에도 놓는 것을 보면서 ‘특이하다. 혹시 내 말을 오해했나?’ 하는 생각도 했고, 침을 놓고나서 일어나 걸어보라고도 해서 ‘내가 이상한데 왔나’했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까 걸어 봤는데 몇 분 지나고 나니까 발목이 정말로 괜찮아 졌다. 너무 신기하고 그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 왜 다른데 바늘을 꽂았는데 발목이 좋아질까 생각했다. 그렇게 한의원을 한 두번 더 가면서 빨리 나았고 분명히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의술에 대해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져서 시작하게 되었다.
먼저 한의대를 알아보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아봤다. 그런데 한의학 공부를 하겠다고 했더니 한 한의대에서 외국인은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외국인이 이전에 다녔는데 2년 동안 1학년 유급을 해서 두 번 하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그래서 외국인은 처음부터 거절하더라.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꼭 하고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외국인은 못 한다니까 더 도전심이 생겼다. 그런 기본적인 출발점을 가지고 다음으로는 사람을 서서히 만나기 시작하게 되면서 인연이 닿아 대구에 가게됐고, 오스트리아 신부님도 만났다. 그 분 아는사람이 대구한의대(구 경산한의대)에 있어 그 학교로 가게 되었다.

-한국어도 잘 못하는 상황에서 한의대에 가기가 정말 어려웠을텐데 입시 에피소드라면
▶한의대를 가겠다고 결심하고, 학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고향에 돌아갔다. 가족들에게 한국가서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이야기 했더니 처음엔 다들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한국이란 나라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그랬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거기 아직 사람 굶어죽지?” 이런 식이었다. 게다가 한의학이 뭔지도 모르니 그런나라 가서 뭘하겠냐고들 했다. 그래도 하고싶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아마도 그때 아버지가 속마음으로는 ‘어차피 포기하고 다시 오겠지.’하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포기하진 않고 아직까지 있게 되었다.(웃음)
그렇게 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우선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배워야 해서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1년정도 공부했다. 그 다음해에는 강릉대 교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교수님이 자기 학교에 와서 한문과 동양철학에 대해 공부해보라고 했다. 한의학 때문에 한자도 배울겸 거기서 또 1년간 공부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에 지금은 대구한의대인 경산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물론 수험생들과 똑같은 수능을 보진 않았고, 외국인전형으로 한의대를 갔다.

-대학에 진학하고도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한의대 문화는 보수적인 편인지
▶우선은 내가 대구에 가지 않았는가? 대구라는 지역자체가 유독 더 보수적인 편이긴 하다. 그리고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옛것을 많이 가지고 있고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대는 생명을 다루는 의술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엄격하고 잘 모르면 잘릴 수밖에 없다. 의학은 작은 것 하나라도 알고 넘어가야 하는 학문이다. 보수적이라고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엄격한 편이다.

-한의학은 서양에는 잘 알려지지 않아있다. 서양에서 한의학, 동양의학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아직까지 한의학은 세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동양의학 중에 중의학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있고, 그 중에서도 침은 어느 정도 세계화 되어 있다. 그래서 침은 서양의서에도 많이 나온다. 독일에는 침 놓는 양의사의 수가 3~5만명 정도 된다는 통계가 있다. 한국의 한의사는 2만 2~3천 명 정도 되니 독일의 침놓는 양의사가 한국한의사보다 수가 많은 것이다. 이런 침술에 대해 독일에는 여러 과학적 통계나 데이터가 많이 나와있다. 의료보험 쪽에서도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큰 연구가 있었다. 결론은 침이 효과가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침은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인정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의학에는 침 외에도 뜸, 부황이란 의술도 있고, 한약도 있다. 한약을 나도 매일 처방하고 쓰는데 효과가 아주 좋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편화 되어있지는 않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법적 규제가 아주 강력한 약의 범위안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한 한의학은 과학적인 데이터 만들기도 상당히 어렵다. 이런 여러 이유로 보편화가 안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야기하면 아직은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침은 이미 중국의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반드시 의술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 큰 매력이 없다. 하지만 한약은 다르다. 여러 데이터가 입증되면 처방하거나 약국에서 팔 수 있다. 한약을 잘 개발하고 좋은 방법을 소개한다면 훨씬 더 큰 시장을 차지할 것이다. 앞으로 한의학을 잘 연구·개발하고 제품화 한다면 한국을 알릴 수 있고, 세계인의 의학 상식에 들어간다면 엄청 큰 사업이 될 것이다.

-방금 이야기했듯이, 한의학의 세계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한의학이 세계화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세계화에 대해 한의사들도 필요성을 실감하지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우선은 한의학이라는 학문이 다양한 경험이 쌓여야 하는 의술이다. 몸을 이해하는 것도 그렇고 진맥을 읽는 미묘한 차이도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준이 있으려면 최소한 10년의 경험은 있어야 한다.
한 명의 한의사를 만들려면 한의대 6년, 경험만 10년해서 최소한 16년은 거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의학을 세계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언어도 통해야하고, 환자들을 이해하고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의사가 외국에 나가는 방법은 어떤가? 예를 들어 한의사가 미국에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 의사 면허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의사협회에 컨텍을 하면 한의사는 등록이 안되어 있어 면허 인정을 못 받는다. 미국에서는 단순 침술사 밖에 못하는 것이다. 그런 한계점들이 있고,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기술이 좋아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참 어렵다. 하지만 어쨌든 과학적으로 가야하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한의학도 양학처럼 과학적인 증거를 기본으로(evidence based) 나아가야한다. 약침은 한의학이 현대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약도 요즘은 그냥 다리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진다. 이제는 전통한의학에 현대의술을 결합시키는 통합의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한의학과 양의학 수준이 모두 높기 때문에 통합하면 아주 경쟁력 있는 통합의학이 탄생할 것이다.

-통합의학이 시행된다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아직까지도 통합의학에 대해 양의와 한의의 대립과 갈등이 있다. 하지만 둘다 좋은 점이 분명 있기에 통합의학을 하면 양쪽 모두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한약처방을 하게되면 어떤 재밌는 일이 생기느냐? 바로 ‘시장’이 형성된다. 시장이 형성되고 커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으로는 투자가 이루어진다.
시장이 커지고 투자자가 생기면 사업성이 생겨 돈이 돌게 된다. 그렇게 수익이 생기면 의학이 더 발전되고 과학화 되는 것이다. 통합의학이 시행되면 의학의 수준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한의와 양의 모두 아우르는 의사가 되면 외국에서도 인정해줄 것이다. 양방과 한방 둘다 한다면 인기 있고 경쟁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합의학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제도부터 바뀌어야지 이 모든것이 가능하다. 내가 볼때는 기본적인 방향이 바뀌지 않으면 한의학은 세계화는 커녕 한국에서도 쇠퇴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한의학에는 동양 철학이나 사상이 바탕으로 들어가있다. 한국과 한의학의 관계는 어떤가
▶한의학은 사실 일종의 한국 문화다. 한국과 한국음식이 어울리느냐와 같은 맥락이다. 한의학은 물론 의술이지만, 과거부터 내려온 한국 문화의 일부분이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에게는 한의학이 다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한의학 중에 기본적인 키워드라면 ‘기’를 들 수 있다. 한국사람은 ‘기’라고 하면 대부분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 한국어에도 기가 들어간 단어들도 많다. 기운, 분위기 등등. 즉, 한국사람이 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이 오는 것은 이미 문화나 사고방식에 자연스럽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양인에게 기를 이야기하면 무슨 이야기냐고 한다. 번역을 해도 energy? vital energy?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그들에게는 그런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한국의 역사이고 문화이며 한국 사람 개개인에게 모두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문화중에 자신과 가장 잘 맞았고, 가장 잘 안 맞았던 문화를 하나씩 꼽는다면
▶한국사람은 우선 모두 알고 있듯이 정이 많다. 정이 많은 것은 좋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한국 음식문화를 좋아 한다. 한식은 대부분이 건강음식이다. 처음 한국에서 매운것을 잘 못먹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문제없었다.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은 급하게 하는 ‘빨리빨리’ 문화다.
하지만 서양과 동양은 서로 사고방식 자체가 틀리니까 내가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한국사람이 하는 행위나 습관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한국에서 공부 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오픈마인드를 갖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지냈다. 안 맞더라도 기본적인 사고방식이 다르니까 그런 것이지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했다.

-자녀들이 있는지?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들과 딸, 이렇게 두명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접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국제학교도 다니고, 한국 일반학교도 다니게했다. 그래서 다양하게 교육을 받아 이해의 폭도 넓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 불어 다 잘 한다. 내가 한 번씩 TV에 나오는 것도 아이들이 좋아한다.(웃음)
우리 아들은 한의사가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아들을 통합의대로 보내려고 한다. 지금은 1차적으로는 양의학을 배우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한의학은 2차적으로 공부하게 하거나 내가 가르치던지 해서 통합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본인이 우선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지원할 생각이다. 이제 고3이 되어서 준비하고 있다.

-한의사의 꿈은 이루었다. 다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십수년간 한의사로서 걸어왔던 길, 한의학을 국제화 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서 할 것 같다. 한국에서 통합의학대학을 내가 직접 만들 수는 없겠지만 통합의대가 만들어 지는 토대가 마련된다면 그 과정을 나서서 돕고 싶다. 그리고 그곳이 만들어진다면 교수를 하든, 의사로서 일을 하든지 하고 싶다.

-인터뷰 기사가 나가는 3월은 환절기다. 독자들에게 환절기 감기예방에 대해 팁을 준다면
▶환절기는 온도 폭이 넓기 때문에 감기에 많이 걸린다. 생강차를 많이 마시면 감기예방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서서히 따뜻해지면 햇빛을 많이 쬐야 비타민D가 생겨 뼈가 튼튼해지고 면역기능도 강화된다. 봄에는 햇살이 많이 강하지 않으니까 하루에 20분정도 햇빛을 쬐어주면 좋다.
그리고 사실 환절기보다 1년 내내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은 운동이다. 나는 3~4년 정도 걷기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건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시간이 없어서 많이는 못하지만 4~5월 정도부터 10월까지는 맨발걷기를 한다. 이태원에서 남산으로 30 ~40분 정도 이른아침에 운동한다.
그 다음으로 아침에 따뜻한물로 샤워를 하다가 마지막에 꼭 찬물로 샤워한다. 냉온욕과 비슷한 개념인데 굉장히 개운해진다. 찬물샤워를 하고 마지막에 하체는 다시 따뜻한 물로 마무리를 한다. 사람은 발이 항상 따뜻해야하고 머리는 시원해야 한다. 이 목욕법은 예전에 독일에서 많이 했던 방식이다. 이런 냉온욕을 나는 3~4년째 매일 하고 있다. 면역력 증강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나도 예전에는 감기 걸리면 일주일씩 오래갔는데 이걸 하고 나니까 좋아졌다.

△ 라이문드 로이어(Raimund Royer) 한의사
–– 1964년 7월 19일생(오스트리아)
––대구한의대(구 경산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 (서양인 최초)한의사 국가고시 통과
––경원대학교 대학원 한의학 박사
––現 한국한의사협회 국제위원
––現 대한약침학회 국제이사
––現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정회원
––現 자생한방병원 강남본원 대표원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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