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시대와 정보의 역할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2017.01.13 10:01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포스트(post)’는 사고의 변화상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脫(탈)’로 번역되는 ‘포스트’는 변화를 내재한다. 타이완에서 변화를 의미하는 ‘變이란 한 글자를 2016년의 한자어로 선정할 정도로 ’변화‘는 2017년에도 옷처럼 항상 입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 변화 중 뚜렷한 변화가 ’포스트 트루스(post truth)‘이다. ’포스트 트루스‘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애매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잘 먹혀드는 사회상을 의미하는데, 2004년 Ralph Keyes란 저술가가 처음 사용했다. ’말‘이 불신 받는 사회이자, 정보가 불신 받는 사회임을 상징한다. 지난 2016년 12월 초 트럼프 당선자의 대리인 격으로 CNN에 자주 출연했던 Scottie Nell Huges(여)는 라디오 방송인 The Diane Rehm쇼에서 “ 불행히도 사실이란 것은 더 이상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거짓을 얘기했다기 보다 트럼프 자신이 특정한 시점에 경험했던 내용을 감정을 섞어, 또 함축적인 암시를 포함시켜 말한 것 뿐”이라고 변명했다. 이는 ’포스트 트루스‘가 트럼프진영을 상징하는 용어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예증해준다.

‘포스트 트루스’는 또 ‘포스트 메메(post meme)’를 만들어내고 있다. meme는 1976년 진화생물학자인 리차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유명한 책에서 처음 제시했다. 그리스어 mimema(모방한 것)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도킨스는 이 단어를 문화적으로 세대를 걸쳐 배우는 것이나, 영화 등과 같은 미디어로부터 획득되어지는 후천적인 습득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도킨스의 관점은 meme가 유전자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개인 간 또는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신념의 속성은 문화전승을 통해 전해진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meme는 비디오, 텍스트, 트위터 등에 폭넓게 적용되어 왔으며, 소셜미디어가 이를 만개시키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시민의 정치참여도 증가와 정보 유통속도를 가속화시켜온 장점이 있는 반면, 정보생태계에서 ‘숨은 행위자’역할을 하며, 특정대상 악마화와 적대감 조장 및 사람들을 분쟁의 참여자로 만드는 그늘진 모습도 보여 왔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사귀고 소통하려는 동성애적인 ‘homophily’ 현상도 심화시키면서, 공공 담론에 있어 진실성·정직성과 같은 가치를 삼키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fake news(거짓뉴스)를 만들어 내고 확산시키는 전위대 역할도 소셜미디어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클린턴 후보에 대한 fake news를 퍼뜨려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고, 2016년 11월 21일 <월드 뉴스데일리 리포트>라는 인터넷 뉴스사이트는 “비틀스의 멤버 였던 존 레논의 아내이자 전위예술가인 오노 요코가 1970년대에 힐러리 클린턴과 성적인 관계를 했다”는 가짜 인터뷰를 실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도 fake-news가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타임즈> 같은 유력한 전통매체도 소셜미디어에 압도되어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만들어 내는 거짓뉴스를 걸러내기 보다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미디어 생태계가 큰 강 옆에 흐르는 지류들이 저지르는 선과 악의 행태를 외면하는 듯하다. Gab의 CEO인 Andrew Toba 같은 부호가 <뉴욕타임즈>를 “fake-news 발행소”라고 공격하면서 권위적인 매체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행위도 fake news확산에 일조한다. fake-news는 미디어 제도에 대한 점증하는 불신을 의미한다. 언론이 문화적 파워와 신뢰를 잃어왔다는 사실은 fake-news 문제의 원인과 결과이다. 불신의 늪은 상당히 깊다.

이는 비단 언론매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운영의 필수적인 요체인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서도 직면하는 현안이다. 냉전이 끝나고 민주화가 가속화 되면서 정보기관의 영역은 줄어들고, 나아가 정보 위기론까지 형성되어 왔다. 냉전이후 대중은 정보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인식했다. 이 같은 침울한 상황에서 인터넷의 보편화는 공개정보(OSCINT)를 폭증시켜, 무엇이 참된 정보인지를 식별하고 분석하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제로 등장했다. 언론보도 내용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정보를 분석했으나, 언론마저 fake news에 휘둘리는 상황에서 ‘참된 정보’를 추출하여 국가에 도움 되는 정보를 창출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과제가 된 것이다. fake-news는 정보 과부하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는 빅데이터가 뒷받침한다. 100% 사실이라고 믿는 통계도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면서 ‘통계의 조작’ 등 윤리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는 정보와 사실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 그다지 장점이 되지 않는다. 정보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와 사실의 ‘의미’를 함께 알아야 한다. 개별적인 정보와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와 사실 사이의 역사적, 실질적 연관 관계나 논리적, 문화적 연관 ‘가능성’을 함께 알고 있어야만 기존 정보와 사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보의 창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적절하게 ‘활용’ 해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또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능력이다. 끝으로 정보업무 종사자들은 혁신가가 되어야 한다. 사고가 앞서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기관은 그간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 원인과 결과를 따지는 hindsight bias를 보여 왔다. 미래에 대한 끝임없는 학습을 통해 미래를 大觀細察하는 능력을 함양하여 국가라는 배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네비게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참과 거짓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는 단선적 사고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터진다.

조지 오웰의 명저 「1984년」은 어둠 속의 빛을 제공해준다.
“평화부 장관은 전쟁에 대해 걱정하고, 진실부 장관은 거짓에 대해, 사랑부 장관은 拷問에 대해, 풍요부 장관은 배고픔을 걱정한다. 이런 모순은 우연한 것이 아니며, 일상적인 위선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이중사고(doublethink)로 섬세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前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
한국국가정보학회 이사
한국가버넌스혁신포럼 이사
미래예측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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