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정신의 정치적 실천과제

[박상철교수의 정치클리닉]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2016.12.01 15:34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박상철 경기대 교수
‘한국정치는 살아있는 화산’임을 광화문의 촛불집회가 다시한번 입증했다. 짧은 근현대사를 잠깐만 보더라도, 고종황제의 승하 직후 일제 압박 속에서 3ㆍ1 항일 운동이 분출되면서 1919년 4월 13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켰다. 한참을 국제질서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국가를 맡겨두고, 오래 참다가 1960년 4ㆍ19 혁명은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를 퇴출시켰다. 지금의 한국 민주시스템을 틀지어준 1980년 5ㆍ18 광주항쟁과 1987년 6ㆍ10 항쟁의 정신들이 2016년 광화문 촛불에 재집결했다.

‘지배받는 주체’로 전락했던 국민혁명
불행하게도 한국정치에서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지배받는 주체’로 되어 가버리곤 했다. 일제 독립운동사를 연구할수록 빛나는 독립운동사가 크게 들어나지만 광복 후 정부를 지배하고 담당하는 자는 대부분 독립운동과 거리가 멀고 부일협력자가 다수였다. 피를 흘렸던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은 보통 국민으로 전락해버렸다.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은 ‘지배받는 주체’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대학시절 데모를 할 때마다, 부모님이 일단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해서 무엇을 해야지, 데모해봤자 너만 힘들어진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들이 기억난다. 어쩌면 역사적 목격과 증언일 수도 있다. 제1공화국을 붕괴시킨 4ㆍ19 혁명의 주역들은 극소수만 역사와 현대정치의 주체가 되었을 뿐 약 30년, 1987년 체제가 탄생할 때까지 많은 고생을 하였다. ‘지배받는 주체’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87체제의 출범도 역사적 심판의 대상들이 오히려 6ㆍ29 선언과 야권의 분열로 새로운 체제의 첫 장을 열었고, 소위 ‘투쟁하는 주체’들은 정치적으로 지배받는 피치자가 되고 말았다. 재주는 곰이 피우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 꼴이 된 것이다.

작금의 광화문 촛불의 함성이 실제의 정치에서 어떻게 결합되고 모양새를 갖춰야 할 지 많은 걱정과 고민이 앞선다. 거창하게 이야기 하자면 역사적으로 혁명에는 분명히 주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혁대상들이 새로운 시대의 주체가 되면서 혁명정신이 좌절될 때가 참으로 많았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혁명주체가 중심이 되어 모든 것을 담당하면 최고이겠지만 현실의 정치세계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혁명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세력들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광화문 촛불정신은 아주 간명하다. 첫째 지역주의정치를 버릴 때가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남남갈등 수준의 이념갈등을 종결하라는 것이며, 셋째 다시는 정경유착 같은 것은 발본색원하여 청산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전제된 새로운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 ‘광화문 촛불’ 함성의 구체적 메시지라고 본다.

새로운 정치의 출발지로서 광화문 촛불정신
차기 정치는 광화문 촛불정신(탈지역ㆍ탈이념ㆍ탈부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국정운영 시스템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내각의 협치(協治)였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 할 때 어느 기자 왈, “고구마 줄기를 잡은 줄 알았는데, 대형 냉장고를 발견한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드러나는 한국정치권력의 추악한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와 좌절을 넘어선 국가적 위기감에 촛불을 들었다. 돌이켜 보건대 한국정치를 3류 이하라고 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비판했지만, 이것은 한국정치의 몸통인 대통령의 추락을 못보고 꼬리에 집착해왔던 샘이다. 일상의 정치도구인 의회, 정부, 정당으로는 사지(死地)에 빠져있는 한국정치를 건져낼 수 없기에 ‘초일상의 정치’라고 명명할 수 있는 광화문 촛불이 등장한 것이다.

어쩌면 이번 기회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마지막 성장통일수도 있다. 기존 정치권, 특히 집권권력층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한국헌정사를 돌이켜볼 때 집권세력과 정경유착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각성은 전혀 없었다. 지금의 새누리당 정권은 생존의 정치를 버리고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제대로 된 보수정치’의 깃발을 들어야 할 때다. 당내 분열 속에서, 탄핵ㆍ개헌ㆍ특검ㆍ국정조사 등 속에서 서바이벌의 양지를 쫓을게 아니라 그동안 은폐되고 왜곡되어 왔던 보수정치의 속살과 가치를 과감하게 보여줄 때다. 이 경우에 한하여 한국에서의 보수정치가 생존의 정치를 넘어서서 재기와 부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야당 또한 ‘만년야당’이 아닌 언제든지 집권할 수 있는 준비된 대안정당의 체질로 바꿔져야 한다. 겉은 투쟁하는 야당이지만 속을 들여다봤을 때 새누리당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 있는가. 좋은 야당이 있는 국가가 진정한 민주국가이며 집권여당만 잘하면 독재로 흐르기 쉽다. 국민 마음속의 진정한 야당은 국가적 위기와 전장 속에서 등장하는 구세주와 같은 정치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이다.

야당은 언제든지 집권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지금의 광화문 촛불의 주인공은 일반국민이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을 대변ㆍ대리ㆍ대표하는 주체는 야당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야권들은 광화문 촛불 이후의 정치를 생각해야할 때다. 어떠한 경우에도 지역주의 정치가 되살아나고, 이념대결의 정치가 부활하며, 정경유착의 구조가 복원될 조짐을 완전히 일소시킬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미 국민들이 내어놓은 답이다. 앞으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ㆍ기득권 세력의 무수한 항변과 대응에 대한 야권의 해결능력과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요컨대, 광화문 촛불이 대한민국 민주역사의 마지막 성장통이 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다. 절망적이고 힘든 정국에서 국민의 힘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이것은 대한민국의 큰 소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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