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 “재원조달 없는 대책은 사기”

‘아동수당세 도입’ 외치는 국민연금의 아버지

대담-더리더 박종국 편집장, 정리-홍세미 기자 2016.10.11 14:29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원조달 없는 대책은 사기”라고 말했다
지난 8월22일 국회 저출산고령화특별위원회 첫 회의장이 발칵 뒤집혔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아동수당제도와 아동수당세의 도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려 노력했지만 오히려 출산율은 낮아졌다. 국가 재난상황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국회에서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아동수당을 도입하자고 주장한 서 전 장관은 복지와 인연이 깊다. 스탠포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후 KDI에 들어갔을 때 대한민국은 경제부흥기였다. 서 전 장관은 빈곤 문제에 눈을 돌렸다. 그는 인구 구조를 보면 고령화가 심해지고 노인 빈곤이 심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래서 마련한 것이 국민연금 보고서다. 혹자는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틀을 만든 서 전 장관을 ‘국민연금의 아버지’라고도 부른다. 그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위원회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더리더가 9일 도산 안창호기념관에서 서 전 장관이 구상하는 저출산 극복 방안을 들었다.

-‘아동수당제 도입’이 크게 화제가 됐다. 주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가 애 키우는데 필요한 최소한 경비는 대줄 수 있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야 한다. 문제는, 특히 이른바 ‘무상복지’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은 ‘정책’만 발표한다는 것이다. 재원 조달대책이 없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별도 재원마련 방안을 가지고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데 대책만 발표하니까 다른 예산이 깎인다. 학교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무상급식을 시행하려면 다른 예산에서 끌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돈 쓰는 것은 발표하는데 재원조달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일종의 ‘사기극’이 되는 것이다.

-저출산을 극복할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아동수당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 일종의 ‘목적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를 보면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을 추진하기 위해 목적세를 걷었다. 1994년엔 우르과이라운드에 대처하기 위해 농촌발전세, 1981년에는 교육세, 70년대에는 국방력을 증강하기 위한 방위세처럼 ‘아동수당세’를 목적세로 신설하자는 것이 내 제안이다. 담배소비세에도 붙이고, 소득세에도 붙이고,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에도 나누어 붙이면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회 상황을 보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국회 저출산위원회 자문위원장 역할을 맡으면서 여야 의원 19명을 만났다. 여야가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내년에 대선이 있기 때문에 정부는 못한다. 국회 특위에서 아동수당제도와 관련하여 회의를 한다고 한다. 국회의원들끼리 협의가 있어야 한다. 국민이 세금을 내야지 정부가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줄 수 있지 않겠나. 정부는 돈 찍어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세금은 못 올려도 아동수당제도 도입에 필요한 추가부담은 각오해야 출산율은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향후 5년이 저출산 극복 ‘골든타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임기 여성 숫자가 5년 후부터는 줄어든다. 이는 5년 이후 저출산 정책을 시행한다고 해도 애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하는 것이다.

-저출산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OECD는 물론 세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이다. 심각한 것은 이 상황이 15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1.2명 수준에서 계속 머물러있는데 빨리 개선되지 않으면 초저출산 추세가 고착될 위험이 있다.

-저출산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50년 동안 한국은 강력한 출산장려 정책과 출산억제 정책을 동시에 추진한 나라다. 세계적으로 5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렇게 출산을 장려했다가 갑자기 억제로 전환한 사례가 별로 없다. 출산 억제 정책은 대성공했다. 가족계획사업을 열심히 전개한 것이 성공 이유지만 일단 시대적으로 경제발전이 이뤄졌고 여성들의 학력이 높아졌다. 경제가 발전하고 여성 학력이 높아지면 어느 나라든 출산율이 낮아진다. 그런데 결혼 초혼 연령이 지난 20년 간 매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초혼 평균연령이 30세를 넘었다. 또 외환위기 겪으면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에 더해 IT혁명이 지속되면서 일자리가 잘 늘지 않고, 또 비정규직 비중이 높아졌다. 비정규직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끝이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있으면 결혼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용이 불안정해져 저출산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정부가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을 10년 전부터 시행했는데 나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동안 정부가 저출산과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은 수백 가지다. 그러나 대책에 ‘선택과 집중’이 없었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는 그 많은 대책에서 우리나라에 맞고 실효성 있는 것을 선택해서 이를 집중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한 나라는 어디인지
여러 나라가 있으나 OECD국가 중에 저출산을 극복한 대표적 사례로 프랑스를 지적할 수 있다. 프랑스는 아동수당제도 등 다양한 정책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해 지금 출산율이 2.1명 정도다. 그런데 프랑스의 경우 출생아의 상당수가 ‘혼외’ 자식이다. 우리나라는 입양특례법이 2013년 제정돼 해외입양을 제한함은 물론 국내입양 절차도 매우 복잡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부모가 확실하지 않은 아이들은 입양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혼모가 애를 버리는 ‘베이비박스’가 흥행하고 있다. 보육원에도 고아들이 넘쳐나고 있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1996년부터 해외입양 금지하는 법안이 있었다. 88올림픽을 하면서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 되었는데 해외입양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에서 이러한 법안이 만들어졌다. 나는 주요 언론사 기자들에게 해외입양자들의 실태를 취재해달라고 부탁했고, 취재 결과 대다수 입양자들이 성공해서 잘 산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정부는 이법을 폐기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장애인은 절대 국내입양이 안 된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남자애도 입양하기를 기피한다. 또한 입양절차 역시 지나치게 까다롭다. 국민들이 입양에 대해 아직도 편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간 사람 중 잘 된 사람이 많다. 그 중에는 장관 자리에 오른 이도 있다. 애 더 낳으라고 하면서 미혼모가 애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러니 버리고 낙태하고 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입양특례법도 대폭 손질하고 미혼모에 대한 지원사업도 크게 확대해야 한다.

▲대담하는 (왼)박종국 더리더 편집장과 (오른)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에선 고령화 문제도 다룬다.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데 문제는 무엇인가

노인빈곤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 45% 이상이 빈곤계층에 속한다. OECD평균 노인빈곤율이 13%인데 이의 세 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공적연금제도가 늦게 도입돼서 그렇다. 내가 전두환 정부 때 국민연금 안을 만들어 어렵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1986년 말 국회에서 국민연금법이 통과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도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었기 때문에 65세 인구 중 상당수가 국민연금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기에 노인 빈곤율이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 역시 세계 1위다.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생활고 때문이다. 따라서 노인의 기초생계비를 정부가 보장해줘야 한다. 노인을 위한 기초연금이 있으나 연금수준이 낮고 저소득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노인빈곤 해소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빈곤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는 방향으로 기초연금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개편해야 할 것이다.

-노인빈곤 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여러 가지 개선책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65세 이상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을 통합하여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는 최저생계비를 정부가 보장하는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다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 특위 차원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노인이 더 많아질텐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노인도 일하게 해야 한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60세가 된다. 따라서 앞으로 5년 후부터는 베이비 붐 세대가 공식적으로 노인층이 될 것이다. 이들 세대는 학력이 높고 직장 경험도 많다. 예전처럼 65세가 노인이라고 집에서 쉬게 해서는 안 되며, 이들도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은 보다 창의적인 일을 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을 서포트하는 일을 하면 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원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다.

-앞으로 국회 저출산고령회특별위원회 자문위원장으로 어떻게 일을 한 생각인가
기본적으로 국회 특위의 주인은 국회의원들이다. 자문위원의 역할은 국회의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것이다. 현재 특위위원은 여야 국회의원 19명이고 자문위원은 각계 전문가 2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정도의 인력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문위원장으로써 국회의원과 자문위원 간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한다. 특위 국회의원들과 자문위원들이 힘을 합치면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도산 안창호 선생이 들려주는 ‘인성 교육’

서 전 장관은 도산기념사업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는 도산의 리더십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100년 전 도산의 ‘서로 정을 나누는 것을 갈고 닦는다’는 의미의 ‘정의돈수(情誼敦修)’는 어떻게 지금 실현될 수 있을까.

-도산 선생의 가르침이 많이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도산 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와 강남구청, 강남교육청 셋이 MOU를 맺어 중학생을 대상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회가 된다면 고등학교까지 확대하려고 한다.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각급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도산공원이 강남에 있기 때문에 도산 선생의 리더십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인성교육을 강남지역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앞으로 이를 점점 전국적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리더십이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도산 선생의 리더십에 대해 언급한다면
도산 선생의 정신으로 인성 교육이나 시민 교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도산 선생은 평생 리더를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도산 선생이 1913년에 세운 흥사단도 오늘날로 치면 리더 양성 전문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1910년대에 세계적으로 리더십분야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을 때인데도 도산 선생은 ‘리더십’에 관한 이론을 전개했고 이를 흥사단 등을 통해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도산 선생이 ‘정의돈수’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는 서로 정을 나누기를 갈고 닦자는 의미이다. 요즘은 사우스웨스트 같은 글로벌 기업들도 경영자는 아래 직원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직원들은 고객을 사랑으로 섬기는 ‘사랑리더십’을 새로운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또 도산은 ‘무실역행(務實力行)’으로 요약되는 성실함과 솔선수범을 강조하였다. 이는 아직도 리더의 첫 번째 요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더해 도산은 ‘주인의식(主人意識)’을 강조했는데, 이는 요즘 세계적으로 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오너십(ownership)’과 같은 개념이다. IT혁명이 급속히 진행되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느 조직이나 성공하려면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필수요건이 조직원들의 ‘주인의식’인 것이다.

그런 도산의 리더십 사상은 현재의 기준으로 매우 놀라운 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국제 학술대회 때 내가 도산의 리더십 사상에 대해 발표했더니 참석자들이 지금부터 1세기 전에 그렇게 수준급의 리더십 사상을 전개하고 실천한 분이 한국에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도산 리더십에 관한 나의 책을 영문으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지
도산 선생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도 쓰고 도산 리더십 정신을 교육 등을 통해 널리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남을 사랑한다는 의미인 도산의 애기애타(愛己愛他) 리더십 정신이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리더십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애기애타 정신으로 무장되면 저절로 애국(愛國) 정신으로 발전할 것이다. 도산의 조국을 위한 헌신과 희생은 결국 그의 애기애타 그리고 애국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정신자세라고 생각한다.


서상목 전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고 졸업
앰허스트대 졸업
스탠퍼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
민정당 정책조정부실 실장
보건복지부 장관
제13, 14, 15대 국회의원
명지대 정보통신경영대학원 원장
現 인제대학교 석좌교수
現 도산기념사업회장

정치/사회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