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며 몸으로 배우는 인문학-명옥헌원림(담양후산농원)

역사와 문화, 자연과 정원 활용한 문화체험 및 교육 제시

임윤희 기자 2016.09.21 17:33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명옥헌원림(담양후산농원)
전국 최초 ‘인문학 교육특구’로 선정된 담양군에 위치한 고서면 후산마을은 예로부터 선비마을로 유명하다. 대과 6명을 합격시키고 진사를 10명이나 배출한 명당, 후산마을에 위치한 담양후산농원은 농사체험을 통해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몸으로 배우는 인문학을 제안한다. 머리로만 배우는 공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새로운 모델로 급부상중인 인문학배움터, 담양후산농원에 함께 가보자. 

담양후산농원에서 만난 신선들
명옥헌원림((鳴玉軒苑林: 국가명승 제58호)을 조성한 명곡(明谷) 오희도 선생의 16대손 오병철 대표가 농사체험을 담당하고, 부인 가현정 작가가 인문학 배움을 맡는다. 1만 평에 달하는 단감 농사와 4000평 규모의 블루베리 농사까지 합쳐 도합 1만4000평이 넘는 농사를 짓는 부부의 얼굴은 농부의 고된 일상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밝고 환한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 비밀은 아마도 복숭아꽃과 더불어 무릉도원을 상징하는 꽃, 배롱꽃이 만발한 명옥헌원림 옆 과수원이 일터인 까닭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마치 신선놀음을 하듯 농부와 작가로 살아가는 오병철 대표와 가현정 작가 부부를 만났다.

블루베리와 단감 농사를 짓는 틈틈이 그림을 그리는 농부 오병철 대표는 담양 출생으로 명옥헌원림 옆 과수원, 담양후산농원을 운영 중이다. 명옥헌원림이 국가명승 제58호로 지정됐는데 헌신하신 조부의 뜻을 이어 공동체적 사명을 가지고 후산마을을 지키고 있다. 창평고등학교 재학시절 화가 김용관 선생의 권유로 미대 진학을 고민했으나, 결국 시험성적에 맞춰 취업이 잘 될 것 같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지금 그는 그림을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배부르고 따뜻한 생활을 하고 있다.

뼛속 깊이 서울 출신인 가현정 작가는 초보 농부가 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치료전문가로서, 다양한 강연과 상담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농사체험과 글쓰기 중심의 인문학 아카데미 ‘가문의 영광’과 도서출판 ‘가현정북스’를 운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아픈 사랑, 벗어 던져라’, ‘F1 소망을 생생한 현실로’, ‘더 느림 The Slower The Better’, ‘더 자연 More Natural For Humanity’가 있다.

또 그는 도서출판 가현정북스 대표, 대한상담심리치료학회 특별상임이사 역임, 법무부 인성교육·독서치료 및 국방부 독서코칭 담당, 경기도교육청 공모제 교장 심사위원, 자유학기제 진로체험 작가부문 담당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지만 결국 인문학과 교육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마흔이 넘도록 서울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담양으로 내려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가 작가는 “한 마디로 운명이다. 명곡 오희도 선생님께서 후산마을을 지키는 16대손 오병철 대표를 돕기 위한 적임자를 찾다가 나를 특별채용 하셨기 때문이다. 작가로 활동하며 인문교양서 전문출판사를 운영하는 제가 조선중기 최고 실력자 명곡 선생님께서 찾는 일꾼이었기에 후산마을에 오도록 천상에서 도왔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부인의 대답을 듣던 오병철 대표가 한 마디 거들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가현정 작가가 잘 생긴 내게 반했기 때문에 힘든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고 시골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부부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천상에 계신 오 선생이 서로에게 꽁깍지를 선물로 내려 보내주신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바라보는 대상을 닮기 마련이라는데, 후산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운명을 사명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부부가 꼭 닮았다.
▲명옥헌원림(담양후산농원)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민간정원, 명옥헌원림
담양군 고서면 후산마을에 위치한 명옥헌원림은 주위에 펼쳐진 자연공간을 최대한 살려 만든 정원으로 소쇄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조선시대 민간정원이다. 1300여평의 넓은 뜰을 온통 빨간색으로 채색하는 백일홍은 한 여름철이 절정이다. 마치 신선이 노닐던 무릉도원을 연상할 정도로 배롱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명옥헌원림은 조선중기 성리학자인 오희도(吳希道:1583~1623) 선생이 조성한 별장으로 오직 독서와 배움을 목적으로 지어졌다. 여타 다른 선비들이 누각이나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부분이다.

꽃이 만발한 정원도 좋지만 탁 트인 명옥헌에 앉으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욱 좋다. 한 여름 무더위로 공부하기 힘들다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맑은 공기와 바람으로 머릿속까지 맑아지고 온몸에 좋은 기운이 번지는 덕에 무엇이든 저절로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기에도 참 좋은 공간이지만 무엇보다도 독서하며 사색하는 공간으로 최적화된 것이 분명해보였다. 후산마을이 선비마을로 불리게 된 데는 명곡 선생의 역할이 가장 컸음을 반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명옥헌은 앞면 3칸, 옆면 2칸, 뒷면 1칸의 사방툇마루가 놓인 팔작지붕의 전형적인 우리나라 정자 형태를 띠고 있다. 담장을 두르지 않아 마을공동체 구성원들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돋보인다. 유홍준은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연못 주위에 소나무와 배롱나무를 장엄하게 포치하고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시야를 끌어들임으로써 더없이 시원한 공간을 창출한 뛰어난 원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명옥(鳴玉)'은 옥구슬 소리라는 뜻으로, 정자의 서쪽 계곡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마치 옥구슬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명옥헌원림은 관광지가 아닌 국가문화재임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마을 끝자락에 있는 배롱나무의 꽃대궐을 찾기 위해 주민들의 터전을 헤집고 다닌다. 명옥헌원림은 후산마을을 대표하는 선비 오희도가 노모를 모시고 살며 공부하던 삶과 배움의 터전임을 아는 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후산마을 대표 선비 명곡 오희도 선생
 명곡 오희도 선생은 밝고 온화한 성품에 부모를 극진히 모셨던 효자이자 선비였다. 또 후진 양성을 통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려 했던 참 스승이기도 했다. 공부하기에 적절한 공간인  은행나무와 오동나무 그늘 아래에서 강학을 펼치고 학문에 매진하는 오희도를 눈여겨 본 이가 있었으니, 호남 창의군의 맹장 제봉 고경명의 손자 월봉 고부천이었다. 바로 인접한 창평읍에 살았던 고부천은 심지가 곧고 학문이 가득하며 명징한 오희도를 늘 마음에 새겨 뒀다. 

  어느 날 새로운 세상을 도모하는 능양군(인조)이 고부천의 집에 들렀다. 능양군과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군왕의 꿈을 꾸고 있음을 안 고부천, 하지만 그는 거사에 나설 여건이 되지 않았다. 대신에 후산마을의 오희도를 천거했다. 능양군은 말고삐를 잡고 후산마을로 오희도를 찾았지만 오희도에게도 나서지 못하는 사정이 있었다. 바로 노모를 봉양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차마 집을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능양군은 이런 오희도의 극진한 효심을 알면서도 은행나무에 말을 걸어놓고 오희도를 찾았다. 후산리 은행나무와 명옥헌 정자에 걸린 ‘삼고(三顧)’라는 현판이 그 증거로 남아있다. 제갈공명을 찾아 유비가 세번을 방문했던 고사가 후산마을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난세에는 벌레처럼, 뜻을 펼칠 땐 대붕처럼
 왕이 된 능양군은 그가 만났던 선비 오희도를 잊지 못했다. 세상을 두루 꿰뚫는 안목과 맑고 깨끗한 심성을 갖춘 그를 조정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다. 난세에는 벌레처럼 움츠리고 때를 만나 뜻을 펼칠 때면 대붕처럼 큰 날개를 펼 줄 아는 선비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망제를 짓고 후진을 양성 중이던 오희도는 결국 왕의 전갈을 받고 행장을 꾸려 도성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무너지고 말았다. 몸에 병이 도진 것이다. 결국 치세의 꿈을 펼치지 못하고 그렇게 스러져 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의 유업을 잇는 길은 오희도의 삶 전체를 담고 있는 명옥헌원림을 통해 인문학 공동체였던 후산마을을 복원하는 것이다.

떠났던 이들이 후산마을에 다시 모이다
"인문학 공동체였던 후산마을을 복원하고자 평생을 헌신하신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자 담양후산농원을 단순한 농사체험학습장이 아닌 인문학배움터로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담양후산농원 오병철 대표가 조부이신 명곡 오희도 선생의 14대 종손 고 오만종 옹의 뜻을 잘 받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명곡 선생의 심성을 엿볼 수 있었다.

 명옥헌에 올라 탁 트인 공간에 앉으면 맺힌 것이 없어지고 뻥 뚫리는 기분이다. 연못의 둔덕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산등성이가 아름답고 서산으로 지는 노을이 아름답다. 가을이면 사각거리는 낙엽 소리, 겨울이면 눈 쌓인 연못이 황홀경을 선사한다. 유일하게 명옥헌원림이 초라해지는 철은 봄이다. 대신 감의 주산지로 유명한 후산마을의 감나무가 터뜨리는 미색의 꽃망울과 연초록 잎사귀는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하는 신선함을 선물한다. 명곡 선생의 분신과도 같은 배롱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꽃의 정열에 취한다 정신이 들면 정자의 주련과 현판에 새겨진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고’라는 편액에 눈길이 닿자 행여 자신을 부를까 줄서느라 안달이 난 오늘이 부끄러워 살며시 고개를 돌린다.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히는 농사체험 인문학배움터
오병철 담양후산농원 대표는 자연 속에서 땀 흘리며 배우는 공부가 진짜라는 철학을 가지고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익히는 배움터를 세웠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정원을 활용한 인문학 문화콘텐츠와 다양한 문화체험 및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운영 중이다. 오 대표는 개인사업자로서의 역할이 아닌 명곡 오희도 선생이 일군 후산마을의 원형을 복원하고 자연, 교육과 어우러진 인문학 공동체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담양후산농원이 운영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1. 배롱나무에 기대어 자연에서 쉼을 얻다
쉼을 의미하는 글자, 휴(休)를 살펴보면 사람이 나무에 기댄 형상이다. 배롱나무에 기대어 느끼는 자연에서 진정한 쉼을 얻는 휴 프로그램이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분주하고 제대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어 만성피로에 시달리곤 한다. 아무런 과제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그저 매끈한 부드러움을 지닌 배롱나무에 기대 쉬는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이다. 무언가를 일러주는 교사의 역할이 아닌 도우미로서 함께 하는 것이 특징이다.

2. 배롱나무 그늘 아래 읽는 책에서 나를 찾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미래의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고자 한다면 인문학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바쁜 생활 가운데 책 한줄 읽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단순한 인문학 기행지에서 벗어나 담양의 가사문학과 인문학적 자원을 바탕으로 구성된 심도 있는 인문학 독서 프로그램이다. 아무리 많은 양의 책을 읽었다 할지라도 진정한 나를 찾고 올바른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가짜 독서다. 단 한줄을 읽더라도 자신에게 적용해 삶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독서를 배울 수 있다.

3. 배롱나무를 팔짱을 끼고 말하며 용기와 자신감 얻다
초중고생이 참여하는 창의인성 인문학 캠프와 성인을 위한 평생 인문학 학교 운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든든한 배롱나무 숲에서 배우는 인문학독서는 독서토론이 아니라 독서하며 대화하는 것을 통해 내면에 꽁꽁 숨겨둔 용기와 자신감을 꺼내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용기와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점점 심각해지는 학교폭력, 가정폭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국방부와 법무부 소속 독서코칭과 인성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가현정 작가의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4. 담양후산농원의 사계절 365일 농사체험 프로그램
“과수농부들에게 농번기는 있어도 농한기가 없음을 진작 알았더다면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웃는 가현정 작가의 말처럼 과수원은 사계절 내내 365일 할 일이 태산이다. 농부에겐 비 오는 날이 유일한 휴일인데 실내 작업장에서 해야 할 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6월 블루베리 수확기, 10월 단감 수확기에 실시하는 체험프로그램은 맛있는 과일을 직접 맛볼 수 있어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오병철, 가현정 부부


배롱나무 꽃처럼 아름답게 어울려 춤추는 공동체
오병철 대표가 어렷을 때 후산마을은 배롱나무 꽃이 만발해 산들바람에 춤을 추는 모습처럼 마을 사람 모두 즐겁고 신나게 사는 마을공동체였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힘든 농사일을 버리고 떠났다. 도시로 나갔던 마을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담양후산농원의 농사체험 인문학배움터를 성공사례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일을 통해 소득증대를 이룰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서 마을 어르신까지 책 읽는 소리, 웃음소리 가득한 후산마을로 복원해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마을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오 대표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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