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복권 당첨’ 같아…생사 확인 하는 통일엽서 시급”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

홍세미 기자 2016.09.13 09:37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
‘내일 당장 가족과 헤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대한민국은 한(恨)이 있는 국가다. ‘분단’이라는 고통스러운 역사 때문이다. 13만850명. 이산가족 상봉을 요청한 사람이다. 요청한 인원만 13만 명이다. 가족과 생이별을 겪은 사람은 더 많다. 13만 명 중에서 상봉을 이룬 사람은 4천명이다. 2000부터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은 1년에 100명, 많으면 200명 안팎으로 진행됐다. 단 3%다. 나머지 97%는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현재 남북 관계가 악화돼 그마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해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기대하기 어렵다.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돕는 민간단체가 있다. 이 민간단체에서 한 때는 정부 주도보다 많은 상봉을 이루기도 했다. 대표적인 단체는 남북 이산가족협회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을 위해 편지를 보내고, 전화 연결을 도와준다. 가능하면 중국이나 일본 등 제3국에서 상봉을 이룰 수 있다.

이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도 이산가족이다. 이산가족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쓰라린 아픔을 가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어루만지기 위해 고령의 나이에도 고군분투 중이다. 더리더가 지난달 9일 심 대표를 만나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듣기 위해 중구에 위치한 사무실에 찾았을 때도, 그는 바빴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얼어붙어 당분간 이산가족 상복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가지 문제로 남북관계 경직돼 있다. 만일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져 진행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박정희 정부 시대에 7.4 공동성명은 갑자기 이뤄졌다. 그런 일은 기대고 희망이다. 현재 상태로 본다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없는 한 남북관계가 악화돼 상봉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악화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을 어떤 무력으로 정복하려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동족끼리 같이 살 방법을 모색하고 통일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북한이 우리를 정복하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경직됐다고 본다.

-냉전 관계는 남북이산가족 교류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
▶김정은 체제 이후 교류가 어려워졌다. 예전엔 중국 통해서 탈북자도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탈북자가 못 나오고 있다. 국경지대 감시가 심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서도 남한에 대한 경계가 심해졌다. 그런 여파로 중국을 통해 북한에 있는 이산가족과 연락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아예 문을 닫진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북한에 의학품 같은 물품을 보낸다. 우리가 중국, 일본 등 제3국을 통해 물건을 보내면 가는데 두 달 정도 걸린다. 두 달 뒤에 보낸 물품을 정확하게 받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예 관계를 끊은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조금 문을 열어뒀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민간단체에선 어떻게 상봉을 진행하나
▶중국에서 상봉한다.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사람이 건너오지 못한다. 중국에서도 두만강이나 압록강으로 가야 한다. 상봉은 최근에 잘 되지 않고 있다. 점점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 같은 민간단체에서 20년 전부터 이산가족 상봉이나 소식을 전하는 일을 했다. 한 때는 당국에서 상봉한 숫자보다 더 많이 민간단체를 통해 상봉이 이뤄졌다. 당국서 상봉하는 숫자보다 더 많았던 적도 있다. 민간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킨 사람이 3천 명 정도 될 것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 딱 끊어졌다.

-어려워진 이유가 무엇인지
▶북한에서 감시 통제가 심한 게 첫 번째다. 또 우리가 분단된 지 71년이 지났다. 이산가족 나이가 많이 먹었다. 생존자 6만 3천명 중 70세 이상이 80%이상이다. 80세 이상은 40%이상이고, 90세 이상은 16%다. 건강도 그렇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그 돈을 충당하려면 자식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다.

-정부에서 이뤄지는 이산가족 상봉은 어떻게 이뤄지나
▶국가 간 상봉이 이뤄지는 당국 간 상봉은 이제까지 2000년부터 20차례 열렸다. 남북 당국 간 행사를 통해 만난 이산가족은 한국에 4185명이다. 이산가족을 신청한 사람이 13만명이 넘는데, 만난 명수는 고작 3%만 만난 것이다. 이걸 보고 혹자는 ‘복권에 당첨됐다’고도 표현한다. 지금은 그마저도 중단됐다. 이산가족 신청자 중 생존자가 6만 명이다. 1년에 100명씩 만난다고 해도 이 사람들이 어느 세월에 다 만날 것이냐. 나이도 고령인데. 1년에 100명, 200명씩 만나는 것은 정치적 쇼다. 이산가족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에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어떤 지원을 해주는지
▶이산가족이 제3지대에서 만날 때 500만원을 지원한다. 북한에 연락해 편지로 생사확인 할 때는 200만원, 왕래하거나 상봉한 다음에 서신 보낼 때 처음 50만원 지원해준다. 왕래 비용이 들어가니 그것은 지원해준다.

-이산가족 상봉 체제를 어떻게 바꿔야하나
▶이산가족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생사확인이다. 상봉도 중요하지만 일단 살았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다. 이산가족이 생사확인도 못한 채 눈을 감는 경우가 있다. 일단 북한에 있는 가족이 살아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 다음 여유가 있으면 편지로 교류도 하고, 발전해서 상봉도 해야 한다. 정부에서 상봉하는 사람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생사확인조차 안 된다. 몇 명만 상봉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이산가족 가족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편지 교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북한에선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검열이 심하면 엽서라도 좋지 않겠느냐. 명칭을 ‘통일 엽서’로 해서 칼라 사진도 들어갈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남북한이 서로 합의해 판문점에서 엽서를 서로 교환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 옛날에 전쟁나기 전에는 개성에서 편지를 주고 받았다. 옛날에는 됐는데 지금(처럼 발전한 시대에) 왜 안 되느냐. 북한에선 민간에서 상봉을 도와주는 단체가 없다. 형식상 민족 화합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와 이산가족협회를 통해 엽서로 생사 확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

-후속 대책이 이뤄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언급했는데
▶당국 간 상봉으로 4천명 만났다. 이 사람들은 한 번 만난 걸로 끝났다. 만나게 한 것도 중요한데 그 후에 수신 확인이라든지 왕래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금강산에서 만나고 헤어진 다음에 10년이 가도 소식을 모른다. 한번 만나고 생이별 겪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이러면 안 된다. 이산가족상봉을 주최하는 대한적십자사와 회의를 할 때 몇 번 이야기했다.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단계라 다행이긴 하다.

▲심구섭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
-재단이 만들어진 지 얼마나 됐나. 이 협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는지

▶4년 됐다. 1994년도에 중국에서 동생하고 만났다. 중국하고 한국이 국교 막 틀 때라 중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민간을 통해 만났다. 그 후에 통일부에서 이 사업을 해달라고 나에게 요청했다. 처음에 거절하다가, 1998년도에 개인적으로 하던 사업을 접고 통일부에 갔는데, 남북이산가족협의회 대표 명함을 주더라. 통일부 허가로 민간단체 대표로 활동했다. 그 땐 이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18단체 정도 있었다. 한 단체에서 상봉 많이 해야 1년에 5~6건이다. 나는 당시에 1년에 100건 성사시켰다. 경험이 많으니 통일부 회의 때 이야기 할 게 많았다. 통일부에서 2013년에 사단법인으로 만들고 활동하라고 제안해서 지금 남북이산가족협회 대표를 맡고 있다.

-지금은 상봉을 돕는 민간단체가 얼마나 있나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활동하는 사람이 없다.

-정부에서 지원은 얼마나 나오는지
▶사무실 임대료, 통신비, 인건비 등 준다. 이 지원금은 단체 유지비용 정도다. 그 이상의 수익은 기대할 수 없다.

-기억에 남는 가족이 있다면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 내가 사진으로도 간직하고 있는데, 상봉하기 전에 진정제를 먹는다. 너무 충격이 클 수 있으니. 그런데 어머니가 아들을 보더니 약을 먹었는데도 졸도했다. 현장에서 그렇게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둔다. 사진도 있지만, 두 번째 어머니가 북한에 아들을 만났다. 만날 때 진정제를 투약해야 한다. 여자들 투약했다. 약을 먹였다. 아들 보자마자 졸도하는 것이다. 내가 현장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언제 가장 보람찬가
▶이산가족 상봉시키는 일은 언제나 보람차다. 기억에 남는 특이한 일은 대한민국 국군포로 15명 북한에서 데려온 것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북한에 잡혀간 포로를 데려온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서해에서 고기 잡다가 북한에 잡혀간 사람 세 명도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남북이산가족협회가 없어지는 것이다. 남북이산가족 협회 존재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해결되면 이 단체가 없어질 것 아니냐. 자유롭게 편지왕래도 되고 소식전달도 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커피 한 잔 값이면 세계 어디든 전화 연결할 수 있다. 400원짜리 엽서면 어디든 다 간다. 한 나라만 안 된다. 바로 우리나라다. 가족끼리 생이별을 겪고 전화나 편지 한 통 할 수 없는 게 말이 되느냐. 서로 왕래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돼야 진정한 평화의 나라다.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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