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의 주권재민(主權在民)?’

[북한 이야기]

강석승 강 석 승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진흥원 원장 2016.09.12 09:38 카카오톡 네이버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강 석 승 사단법인 동북아교육문화진흥원 원장
북한은 김정은의 집권 이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회의(2012.4.13)를 개최하여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또 다시 개정하였다. 이 헌법에서 북한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임을 서문(序文)에 밝히는 가운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은 조선로동당의 령도밑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주석으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공화국의 영원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높이 모시며,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사상과 업적을 옹호고수하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시켜 나갈 것임”을 강변하였다.

이런 헌법상의 규정을 통해 우리가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이라는 정치체제가 우리의 건전한 상식과 이성만으로는 좀처럼 이해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대변되는 ‘현대판 김가 왕조(王朝)’라는 점인데, 이번 호에서는 이런 북한에도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현대국가의 근본적 통치원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점, 그리고 이런 폭압적이고 반인민적인 김정은정권의 붕괴가능성을 진단해 보기로 한다.

북한의 헌법 제1조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인민의 리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라 명정(明定)하면서 제4조에서는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규정대로 과연 북한의 근로인민들은 ‘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5월 무려 36년만에 열렸던 제7차 당대회에서는 ‘주권’을 가진 절대다수의 인민은 안중에도 없이 김정은이 ‘당 위원장’ 등 요직(要職)을 독차지하는 가운데 그를 에워싸고 있는 당-정-군의 친위세력들만이 호의호식하는, 그런 체제임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즉 김정은과 이들 친위세력들은 “하늘처럼 섬기고 떠받들어야 할 존재인 인민들”을 개나 돼지, 종과 머슴, 아니 노예처럼 부리는 가운데 날이 갈수록 그 수탈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어 인민들의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당대회 이전에는 이른바 ‘70일전투’라는미명하에 인민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더니, 이 대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200일전투’라는 또 다른 강제적 노력동원책을 펼쳐, 인민들이 잠시라도 허리 한번 크게 펴고, 단 한 순간도 발을 뻗고 편히 잘 수 없을 정도로 들볶고 있다.

우리 인류 역사상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종국적으로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는 고금동서(古今東西)를 통털어 무지막지한 절대권력을 행사하던 저 고대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진시황제, 그리고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나 리비아의 카다피 등의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독재자들은 인민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등위에 올라타고 앉아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모두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역사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저 신라나 고려, 그리고 조선조의 왕정체제 역시 인민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가운데 그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다가 독재자들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비명횡사하였는가 하면, 왕조자체가 몰락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지난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선거를 통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대통령은 한때 그 누구보다 우리나라 국민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러나 이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이기붕과 최인규 등 최측근세력들은 ‘권력의 단맛’을 영구적으로 지속시키려는 음흉한 기도를 가지고 이대통령을 앞세워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위해 온갖 부정부패와 폭력동원 등 반인민적인 독재정치를 사주하였다.

즉 이들은 다른 어떤 지도자들보다 두터운 국민들의 지지와 신망을 얻고 있던 이승만대통령을 내세워 자신들의 추악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국회의사당에 무장경찰을 배치하여 ‘자유당’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완력으로 제압하여 의결을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들은 야당계 언론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여 몇 차례의 필화사건으로 기자를 구속시켰으며, 당시 정부를 비판하던 ‘경향신문’을 강제로 폐간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순리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관권을 동원하여 부정하게 선거를 치루기 위해 유권자에 대한 위협,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의 조작발표 등을 통해 ‘선거’라는 미명아래 국민주권을 엄중하게 유린하였다.

이렇듯 집권당인 ‘자유당’이 영구집권을 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부정선거행위를 하자 이에 격분한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청년학생들이 “우리만이 진정한 민주역사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다”고 강변하면서 총궐기해 나서게 된 것이 이 민주혁명의 단초였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가 동원한 경찰병력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진주하여 학생들과 격렬한 몸싸움 등 대치를 하는 가운데 꽃다운 학생 100여명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450여명이 발생하였다.

이를 지켜본 대학교수와 국민들이 대거 투쟁과정에 합류하는 가운데 서울 등 대도시는 한때 무정부상태로 되었다. 요컨대,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학생들이 불의에 항거한 피와 희생이 바탕이 된 의분(義憤)이 집단행동을 취하는 과정에서 4.19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 이승만대통령은 12년간의 장기독재정치를 버리고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하와이에 망명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 있어 ‘4.19혁명’이란 정치발전사에 하나의 큰 획기적인 전기를 기록한, 역사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혁명은 지금도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있어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위한 불가피한 진통과 자기투쟁, 그리고 공권력의 횡포에 대한 민권(民權)의 승리를 의미하는,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원리를 그대로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민의 지지와 신망을 얻지 못하는 정권은 결코 존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건인 동시에 우리나라 헌정(憲政) 발전사에 있어 영원불멸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는 항쟁(抗爭)이라는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4.19혁명’과 같은 청년학생들의 항쟁이 북한에서는 왜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에 바탕을 둔 인권(人權)과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한 삶을 향유할 기본권”에 대한 인지(認知)가 없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에서는 ‘김정은’이라는 철부지 애송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여 한 줌도 채 안되는 특권층세력들이 김정은의 폭압적인 독재정치에 빌붙어 기생하는 가운데 이중삼중의 감시통제장치를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숨죽이고 지켜보면서 ‘기회’를 엿보는 가운데 자신들에게 주어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고귀한 권리를 유예(猶豫)하고 있을 뿐이다.

즉 대다수의 인민들은 ‘총칼’을 앞세워 위협, 공갈을 서슴치 않고 있는 김정은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지배세력들 때문에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언제 어디서 어떤 명목으로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특별독재대상구역으로 끌려갈 지 안절부절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이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가운데 소돼지처럼 당이나 국가가 시키는 대로 ‘200일전투’와 같은 강제적인 노력동원에 내몰리고 있으나, 이런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독재정치는 어마 지나지 않아 그 종말을 자초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이렇듯 인간다운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한 채 김정은과 그 친위세력에 의해 착취당하고 있는 북한에서 우리나라의 ‘4.19혁명’과 같은 민중항쟁이 일어나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현재까지는 바로 전체 인민들을 ‘우물속의 개구리’처럼 외부정보나 소식으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이중삼중의 감시통제장치의 발동때문이라 보여진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북한의 전체민들이 서로 합심하여 이런 감시통제장치를 허물어뜨린다면, ‘4.19혁명’뿐만 아니라 저 멀리 신라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민중봉기가 언제라도 북한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즉 온갖 감시통제장치의 장막(帳幕)을 거두어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북한인민들이 그토록 바라고 있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낙관적 기대를 이미 3만명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땅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지난 4월 중국의 저장성에 파견되어 있던 북조선 식당종업원 13명이 “감옥과 같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당국의 감시통제망에서 벗어나 뒤늦게나마 우리나라에서 “인간다운 행복한 새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얼마 전 귀순한 영국주재 북한공사 태영호를 비롯한 당 39호실 관계자, 국방위원회 및 조선인민군 장령(將領) 등 고위급 인사의 잇따른 망명, 귀순사례에서도 그 낙관적 신심(信心)과 이에 따른 조심스러운 전망(展望)을 해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옛말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이 있는 것처럼 세계 최악의 폭군이자 독재자인 김정은이 인민들을 수탈하면 할수록 북한 인민들의 “자유와 행복을 향한 의지와 바램”은 더욱더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자 자연의 이치라 생각된다.

이제 국제사회에서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외톨이가 되고 있는 김정은정권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은 애써 외면한 채 세계평화와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발사를 자행하는 김정은의 “독불장군식의 막가파식 행태”는 한동안 맹방(盟邦)임을 자처했던 중국마저 거리를 두게 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인민수탈정책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말처럼 북한인민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앙금을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잡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런 앙금이 쌓이면 쌓일수록, 폭군 김정은에 대한 불평불만, 그리고 분노로 작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며, 이런 북한인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반감(反感)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며, 이는 김정은의 무능한 정치방식과 능력에 대해 의심을 하게 만드는 가운데 회의감을 안겨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의감은 김정은과 당에 대한 책임추궁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멀지 않은 날 폭군 김정은을 타도하기 위한 의기투합의 과정을 거쳐 봉건적인 김가정권을 타도하려는 민중봉기나 항거와 같은 형태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화살 하나는 쉽게 부러지지만, 이 화살이 열 개가 되고 백개가 된다면 부러뜨리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인민들이 하나둘 힘을 모아 단결한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상 일어났던 수많은 민중봉기와 항거가 멀지 않아 북한땅에서도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처럼 빠른 것은 없다”는 말처럼 지금 북한인민들이 김정은과 당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정권의 몰락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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